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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연산 = 노무현 대통령?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6. 1. 2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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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연산 = 노무현 대통령?
[네티즌께 묻습니다] 한나라당의 <왕의 남자> 패러디 논란
텍스트만보기   김병기(minifat) 기자   
폭군 연산군과 노무현은 닮은꼴일까요?

한나라당의 패러디 홍보물... 한나라당은 영화 <왕의 남자> 포스터를 이용해 노 대통령을 연산군에 비유한 패러디물을 배포했다.
최근 우리 영화계에서 <왕의 남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정치인들의 '영화평'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전여옥 한나라당 전 대변인의 영화평에 이어 이계진 현 대변인도 노 대통령을 연산군에 빗댄 영화평을 내보냈습니다. 한나라당은 한발 더 나아가 패러디 홍보물을 만들어 당원들에게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계진 대변인은 25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홍록수'의 아양에 눈 먼 노산군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연산군→노산군', '장록수→홍록수(국정홍보처)', '광대 각인→조·중·동 등 언론'으로 빗대 노무현 정부와 언론과의 관계를 성토했습니다.

이 대변인은 특히 "노산군은 꽉 막힌 언로로 하여 청궁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자기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있었다"면서 "더더군다나 홍록수의 교태와 아양으로 바깥 세상이 태평성세인 줄 알고 있는 것"이라고 현 세태를 분석했습니다.

그는 또 "홍록수는 노산군의 귀와 눈을 흐리게 하기 위하여 아부투성이의 소문들을 귀에 대고 속삭였을 것"이라면서 "이때 장안에는 정신나간(?) 조씨, 중씨, 동씨, 문씨 등 광대(언론)들이 목숨을 걸고(죽기 아니면 살기로) 노산군 앞에서 죽음의 공연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앞서 24일 전여옥 전 대변인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영화(왕의 남자)를 보는 내내 '연산군과 노무현 대통령 진짜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세상에 대해 한을 품고 있는 연산의 캐릭터는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지난 3년여 동안 수도 없이 확인했던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 의원은 특히 연산군과 노 대통령의 닮은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내가 왕이 맞긴 맞냐?'는 연산, 재신임해 달라고 어깃장을 부리던 노무현 대통령. 생모의 죽음에 한을 품고 칼부림을 하는 연산, 친구의 근사한 가방을 면도칼로 그어버린 어린 시절 노무현 대통령. 광대 공길을 총애하며 종4품으로 임명하는 연산군,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장관을 시키려고 열린우리당까지 우격다짐으로 눌러버린 노무현 대통령…."

최근 한나라당이 당원들에게 배포하고 있는 영화포스터 형식의 패러디 홍보물에도 의자에 앉아 있는 연산군과 양 옆으로 서있는 두 광대 장생, 공길이 각각 노 대통령과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 이상수 노동부장관 내정자로 뒤바뀌었습니다. '1.21 개각'을 비판하기 위한 패러디물인 셈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는 현재 650만명의 관객이 보았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여기 이계진 대변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영화평 전문과 한나라당 당원 홍보용 패러디물을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한나라당의 '영화평'에 공감하십니까?

▲ <왕의 남자>의 한 장면.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영화상의 연산군 캐릭터를 노 대통령에, 장녹수를 국정홍보처에 비유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 씨네월드
여 "한나라당은 화병환자"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영화평과 패러디물에 대해 "한나라당은 분노에 휩싸인 화병환자"라고 맹비난했다. 박근혜 대표의 공식 사과도 요구했다.

서영교 부대변인은 25일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 당보에 '왕의 남자' 포스터를 패러디해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사진과 글을 싣고, 전여옥 의원은 대통령을 연산군에 비유하며 차마 입에 담아서는 안될 온갖 언어폭력을 자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과 전여옥 의원은 마치 대통령에 대한 분노로 화병이나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면서 "그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 틈만 나면 대통령을 이리 헐뜯고 저리 헐뜯고 ,그것도 안되면 이런저런 거짓말까지 만들어내서 소문을 퍼뜨리고, 그리고 혼자서 좋아하고, 남들이 비판하는 소리는 듣지도 못하는 지독한 '화병환자'"라고 비난했다.
'홍록수'의 아양에 눈 먼 노산군 이야기 - 왕의 남자 -

안녕하세요? 해바라기 피는 마을의 촌장 이계진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를 봤습니다. 노 대통령이 보셨다기에, 보좌관들과 일과 직후 함께 감상했지요.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봤고, 보좌관들에게 '내가 보기엔 잘 만들었다'는 말을 대여섯번쯤 했습니다. 왕의 남자를 노 대통령은 어떻게 무슨 생각을 하며 봤을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연산군을 '노산군'으로 여기고 본 나의 생각과는 어떨지도......

내가 영화를 예술적으로 평론해 봐야 본분에 어울리지도 않고...... 해서 나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평해보겠습니다. 흥분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왕과 공길과 장생, 세 사람이 등장하는 동성애 삼각관계의 특이한 '애정영화'로도 볼 수 있겠고, 신하(관료)의 올바른 길을 그렸다고도 볼 수 있고, 고독한 통치자의 고뇌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정치인이 되어 대한민국 제1야당의 대변인의 마음으로 <왕의 남자>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주안점은 '통치자와 언론'이 되겠습니다. <왕의 남자>에는 지금의 정치중심과 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언론이 따로 없던 조선시대에 광대의 '놀음내용'은 집권자를 조롱하고 세태를 풍자해서 그것을 세상에 퍼뜨리는 언론의 역할이었고 광대 각인은 뛰어난 '언론의 주체(언론사, 언론인)'였지요.

광대놀음의 내용은 인구에 회자되고 민심따라 퍼져서 결국 나랏님(왕)께 전해지고 그것에 따라서 민심을 느끼며, 고언을 듣고(풍자는 비판이므로 대개 고언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요?) 고칠 것은 고쳐서 선정을 했겠지요.

물론 '고언'에 발작하는 어두운 통치자들은 욕하고 흥분하며 그 광대를 찾아내어 잡아죽였을 것입니다. '독재자'들이 그렇게 하지요.

오늘날의 통치자와 언론, 언론주체, 언론인들과의 관계로 해석할 때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실제로 언론관계 서적에는 우리나라의 초기 신문이 발행되던 시기의 상황을 '유수배들'이 참여해 신문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자, 배역을 풀이해 보겠습니다.

연산군 → 노산군
장록수 → 홍록수(국정홍보처)
광대패의 장생이 공길이 육갑이 칠득이 팔복이 → 조씨, 중씨, 동씨, 문씨, 경씨, 서씨, 한씨, 매씨, 국씨, 세씨, 내씨, 지씨, K씨, M씨, S씨, C씨, Y씨, 오씨, 인씨 등......
처선 → 글쎄올시다...... 적합한 인물을 찾아볼 수가......

이런 배역들을 연상해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산군은 꽉 막힌 언로로 하여 청궁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자기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더더군다나 홍록수의 교태와 아양으로 바깥 세상이 태평성세인 줄 알고 있는 거지요.

홍록수는 노산군의 귀와 눈을 흐리게하기 위하여 아부투성이의 소문들을 귀에 대고 속삭였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옳은 소리는 막아버렸겠지요.

이때 장안에는 정신나간(?) 조씨, 중씨, 동씨, 문씨 등 광대패들이 무엄하게도 왕을 놀려먹는 광대놀음으로 민심을 사로잡고 있었으니 처선(장항선)이라는 '방울없는(가족없는)' 충신이 이를 왕 앞으로 끌어들인 겁니다.

죽을 각오로 왕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느냐며 광대들을 유인한 거였지요.

광대들은 목숨을 걸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노산군 앞에서 죽음의 공연을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의 연산군은 광대들의 진실에 눈을 떴지만, 현실 속의 노산군은 광대들을 끝까지 응징하고 싶은 것이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왜냐하면 영화 속의 장록수는 연산의 눈과 귀를 막기에 역부족이었으나, 청궁대의 홍록수는 아주 세련되게 광대들을 윽박지르고 노산군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기량이 출중하기 때문입니다.

광대 패거리에도 문제는 없지 않습니다. 광대패 모집에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풍물잡이들이 응시했고 이럭저럭 한 패거리기 됐으나 그 기량과 습성에 편차가 많았던 겁니다.

그뿐 아니라 현실에서의 상황은, 광대의 진면목을 보이던 '공길이 같은' 광대마저도 노산군의 부름에 따라 청궁대를 드나들며 노산군의 총애를 경험해 보고는 변질의 배신을 보이기 시작했고, 장생같은 몇몇 광대패의 분노를 샀던 것입니다.

결국...... 장생은 공길이를 뺏기는 그 답답한 상황을 분개하며 노산군에 맞서서 목숨걸고 대항했으나 참담한 꼴을 당하지요.

노산군 : 잃을 게 없다고? 내 다시는 니놈이 광대짓을 못하게 해주지. 여봐라! 저놈의 눈을 불로 지져라.

두 눈을 잃은 장생의 용기로 공길은 다시 광대의 고향, 밧줄 위로 올라섭니다.

조선의 광대들도 두 눈을 잃고 목숨을 걸며 왕을 바로 일깨우려고 했는데, 오늘날의 광대들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광대놀음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죽음의 외줄을 타고 두 눈을 지짐당한 채, 마지막 외치던 말은 결국은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고 사랑하는 청궁대에 들어간 한 패거리의 광대를 구해서, 궁궐을 떠나 다시 민중 속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광대는 홍록수의 감언이설과 채찍과 당근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고 환호하는 저잣거리의 광대 놀음판에서 본래의 모습대로 놀아야 합니다. 배가 고프더라도......

다시 돌아온 공길의 마지막 말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그래! 징한 놈의 이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광대로 다시 만나 제대로 한 번 맞춰보자!"

※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처선'이 같은 인물을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는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초한지에 나오는 범증을 떠올리면서 만족해야 합니다.
2006-01-25 17:25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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