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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패션으로 멋을 낸 우리 아이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1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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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패션으로 멋을 낸 우리 아이
길표 청색 베레모와 국방색 스타킹, 실밥 터진 흰 구두의 조화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조경국(kyungkug) 기자   
ⓒ2004 조경국
“여보세요. 어머니 시내에 몇 시에 나오십니꺼.”
“1시쯤 나간다. 목욕탕에 있을 테니 데불러 온나.”
“예. 알았습니더.”

어머니와의 대화입니다. 토요일이 되면 아이와 어머니는 시내 목욕탕에서 제 일이 마치길 기다립니다. 시내에 나와서 목욕하고, 주말에는 저희 집에서 지냅니다. 예전에는 하동에 계신 부모님께 들어가서 하룻밤을 자고 왔지만 지금은 반대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일주일에 한번 때 빼고 광내는 목욕 문제도 있고,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갔다 왔다 하는 것보다 주말 동안이라도 데리고 있다 헤어지는 것이 좀더 낫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아직 네 살이지만 이제는 엄마 아빠 일하러 간다 하면 조금은 이해가 되는가 봅니다. “엄마는 학교 가고, 아빠는 일하러 간다.” “아빠, 우유 사가꼬 와.” 이 정도의 대화가 되고, 예전처럼 울거나 떼 쓰지 않으니 많이 컸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일요일 저녁 부모님 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아이를 두고 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내년이라도 데리고 와야겠다는 공개적인 다짐을 합니다. ‘시골에서 크는 것도 괜찮다’는 저의 평소 신념에 일침을 가하기 위한 작전인 줄 알지만 묵묵히 듣고 있는수 밖에요.

할머니 따라 밭에서 호미질(아이의 호미가 따로 있습니다)하느라 봄볕에 새까맣게 탄 아이의 손등을 보고 저는 내심 흐뭇하지만, 목욕을 하고 나와도 표가 나지 않는 것이 아내가 보기엔 마음이 아픈 모양입니다.

ⓒ2004 조경국
주말마다 빈티지 패션(?)으로 멋을 낸 아이와 외출을 하려면 또 아내의 한숨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얻어서 입히는 것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아이 옷을 입히다 보면 단번에 맵시가 나는 옷은 별로 없고 이것저것 입어봐야 어떤 조합(?)이 가장 좋은지 알 수 있기 때문에 힘듭니다. 그렇다고 일주일에 한번 시내 외출을 하는데 그냥 나갈 수는 없습니다.

동네 언니가 입던 옷, 친척 언니가 입던 옷, 아예 얼굴도 모르는 언니가 입던 옷을 어머니께서 얻어 오시고, 옷 물려 입기에 적극 찬성하는 저나 아내도 “혹시 아이 옷 버리지 말고 물려 주이소”란 말을 부끄럼 없이 하게 된 덕에 저절로 아이의 차림새가 뭔가 어색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을 풍깁니다.

한 벌 쫙 빼 입히고 예쁜 공주처럼 해서 나갈 수도 있는데 아이에게 이거 너무 한 거 아니냐는 자책감도 들긴 하지만, 예쁜 것으로 입히기보단 아이 옷을 챙겨준 분들의 정성을 입히는 게 낫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하동 처녀, 진주성에도 가고 시내에 새로 생긴 백화점에도 놀러 갔지만 아무리 봐도 촌티는 나지 않고, 세련된 패션모델 같습니다.

오늘 옷 입기 컨셉은 ‘혼돈의 봄’. 너무 거창한가요. 길표 청색 베레모와 국방색 스타킹, 실밥 터진 흰 구두, 조금 크다 싶은 바둑판 무늬 원피스, 그리고 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2년 만에 햇빛을 본 분홍색 외투를 입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손수건으로 포인트를 줬습니다.

2004/04/12 오전 12:33
ⓒ 2004 Ohmy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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