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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대학 졸업장이나 거창한 자격증은 없지만 송파영업본부의 26개 지점을 이끄는 사령탑이 된 황의선(53) 영업본부장이 우리은행에서 발휘해온 발자취는 실력의 중요성을 대변한다. 그는 1970년 숙명여고 졸업 후 행원이 아니라 승진시험 자격도 없는 여행원으로 은행에 첫발을 내딛었다. 선배들이 승진시험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항의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여행원에서 행원이 되는 시험인 전직고시에서 대졸여성들과 어깨를 겨뤄 합격을 했다. 승진고시에서는 1년에 한 과목씩 합격하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한꺼번에 5과목 모두 합격, 과장 승진대상에 올랐다. 대졸여성들과 겨뤄 당당하게 합격했기 때문에 그에게 대학 입학은 의미가 없었다. 1979년 최초 여성심사역으로 발탁, 심사부서에서 5년 간 일한 그는 1996년 출장소장에 이어 1999년 은행의 꽃인 지점장을 달았다. 은행의 신상품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가입, 직접 고객이 되어 확신을 갖고 판매에 나선 그는 가는 지점마다 영업실적을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2003년 방카슈랑스가 시작되면서 지점장으로 있던 학동역 지점을 우리은행 전국 지점 중 최상위권으로 올려놓았으며 6개월마다 평가하는 영업성과에서도 늘 우수점포가 됐다. 이 같은 영업실적의 비결을 그는 업무지식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성으로서의 섬세함이나 조직융화는 프리미엄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여성 스스로 차별의식 잘못...자신과의 싸움 승부” "은행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성적 차별을 극복한 데에는 세계여성의 해가 선포되고 여성운동이 본격화되는 등 사회적인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호봉제가 철폐되고 제도적으로 남녀차별이 사라진 지금은 여성 스스로 차별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는 “결혼하면 관둬야 하고 승진시험에는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과거와는 달리 제도적인 걸림돌이 사라진 요즘에는 여성들 스스로가 차별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후배들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주길 희망했다. “여성들이 스스로 차별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심사역부터 영업본부장인 지금까지 늘 홍일점이었던 자신처럼 아직도 은행의 관리직에 오른 여성은 소수이기 때문에 겪는 불편함도 문제”라는 그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자연스럽게 50대50이 되어 여성영업본부장이 나왔다고 전화가 오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지점마다 거래처와 자금의 성격이 달라 본부의 성격을 파악하고 분석한 후 영업전략을 세워 송파영업본부 산하 지점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전하는 그는 “자기 일을 즐거워하고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열리기 마련”이라며 “소수자일 때에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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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0 오후 5:44 ⓒ 200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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