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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전부인 사람들의 작은 희망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2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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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짜리 밥집'엔 사람 사는 맛이 있다
밥이 소중한 사람들, 밥이 전부인 사람들의 작은 희망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송성영(sosuyong) 기자   
'천 원짜리 밥집'에 가면 천 원짜리 밥만 있는 게 아니다. 아름다운 얼굴이 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의 주인공은 최금순(60)·백용기(62) 부부. 이들 부부는 연산 장터 한복판에서 '대한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천 원 짜리 밥집'을 꾸려나가고 있다. 비록 천 원짜리 밥이지만 나올 건 다 나온다. 국을 포함해 반찬이 열 가지나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문을 남기기에는 택도 없어 보이는 '천 원짜리 밥'.

이곳에 가면 '밥' 한 끼에 목을 메야 하는 가난한 서민들(특히 독거노인들)의 숟가락이 놓여져 있다. 하루 종일 오일장에 쪼그려 앉아 이런저런 물건들을 팔고 있는 장꾼들의 힘겨움과 정겨움이 있다. 몇 백 원짜리 잔술을 아껴 마시는 독거 노인들의 탄식이 있다. 더러는 멀리에서부터 단돈 '천 원 짜리' 소문에 들떠 찾아오는 호기심 어린 눈빛들도 있다. 이들 모두를 보듬어주는 밥 집 주인의 푸짐한 손길이 있다.

10년 전, 최금순·백용기씨 부부가 20여년 동안 운영해온 자장면 집을 그만두고 시작한 천 원짜리 밥집. 최씨가 자장면집을 접어두고 2년여를 쉬고 있을 때였다.

"자식새끼들 공부시키고 키울 만큼 다 키웠다고 생각했을 때 자장면 집을 그만뒀지유. 그때 갑자기 일손을 놓은 탓인지 우울증이 생긴 거유. 방바닥에 걸레질을 하다가 벽에 등을 기대거나 의자에 등을 기대기라도 하면 한두 시간이고 하염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으니께유."

전화벨 소리나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어 놓지 않는 이상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러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고질병이었다. 자식들 성화에 못 이겨 병원에 가보았다. 병원에서는 우울증이라고 했다.

"그때 자장면 집을 그만두고 우리 집 양반이 직장에 다녔을 땐데, 우울증이 심해져서 고양이처럼 손발톱을 세우고 퇴근길에 돌아오는 남편을 괴롭히기도 했지유. 하루종일 직장 일로 힘들어 돌아오는 남편에게 그랬으니..."

그렇게 2년여를 우울증에 시달리며 병원신세를 지던 어느 겨울, 최씨는 우연히 연산 오일 장터, 한가운데 연탄불 주위에 모여 있는 장꾼들의 써늘한 도시락을 보았다.

"다 찌그러지고 누렇게 색이 바랜 도시락을 까먹구들 있는디, 연탄불 위에 올려져 있는 주전자 있잖아유, 그 얼어터진 도시락에 주전자에서 끓는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드라구유, 장터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말유, 그걸 보니께 속이 얼마나 아프던지...'

그 힘겹고 가슴 아린 장면들을 본 순간, 최씨의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병원에 돈을 갖다 바치는 것 대신 저들 가난한 노인들에게 아주 싼값으로 밥을 해주겠다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일하는 동안만큼은 우울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천 원짜리 밥집에는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살 만한 세상이라 하지만 아직도 밥이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밥이 전부인 사람들이 있었다.

천 원짜리 밥이 절실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사람들이 몰리고 일손이 바빠지자 최씨는 매일 밤이면 녹초가 되다시피했다. 보다못해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최씨의 일을 거들었다.

최씨는 지금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수십 명분의 밥을 준비한다고 한다. 이른 새벽부터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논산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중간 지점인 이곳 밥집에 들러 아침밥을 챙겨먹는 사람들도 있고 한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천 원짜리 밥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좋은 일에는 좋은 일이 따르기 마련이다. 주변 사람들은 천 원짜리 밥을 먹고 최씨 부부에게 사랑을 되돌려준다.

시장 사람들은 천 원짜리 밥상에 올려질 채소를 헐값에 넘겨주고, 어떤 노인은 물고기를 잡아오기도 한다. 자식에게 받은 소중한 용돈을 쪼개 그 비싼 맥주를 사주는 노인들도 있다. 다들 최씨의 건강을 걱정해준다.

최씨는 대처에 나가 사는 자식들 집을 찾아도 자고 오는 법이 없다고 한다. 다음날 새벽밥을 준비해야 한다. 그들, 천 원짜리 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간혹 특별한 일이 있어 밥집을 열 수 없으면 미리 예고를 한다.

"언젠가 대전에 딸네 집에 갔는디, 사위가 하두 자구 가라구 하는 바람에 늘어지게 쉬고 왔다가 몸이 아퍼 죽는 줄 알았슈..."

천원짜리 밥집을 시작한 지 올해로 8년째, 자식들은 그 힘든 일을 왜 하십니까, 걱정하지만 최씨는 이제 밥집을 그만둘 수 없다. 천 원짜리 밥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밥집을 하지 않으면 다시 예전처럼 우울증이 도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씨에게 있어서는 밥집은 그냥 단순히 봉사 차원의 밥집이 아니다. 밥집은 최씨를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했고, 무엇보다도 사는 보람을 안겨주었다. 이제 최씨는 천 원짜리 밥으로 살아가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천 원짜리 밥집은 그냥 밥값이 싸다는 의미만이 있는 게 아니다. 천 원짜리 밥 사이에는 보이지 않게 오고가는 온정의 손길이 있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던져주는 소중한 메시지가 있다.
'천 원짜리 밥집'은 얼마 전 모방송국에서 다큐멘타리로 제작하기 위해 사전에 취재했던 내용입니다. '천 원짜리 밥집'의 주인공 최금순 아줌마는 끝내 방송 나가길 거절했습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올립니다.

글을 올리기 전에 최씨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컴퓨터 신문에 올리려구 하는데요. 그건 괜찮지유?"
"방송은 싫지만, 그건 괜찮아유..."
"좋은 일 하시는 거 사람덜이 알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이구 좋은 일이긴유,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디유, 그 일 하면 건강에 좋고,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유..."
7년 전 가족과 함께 계룡산 갑사 부근에 빈집을 얻어 텃밭을 일구며 생활하고 있는 송성영 기자는 틈틈이 다큐멘타리 방송 원고를 써 오면서 공주에서 ‘동학농민전쟁 우금티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적게 벌어 적게 먹고사는 가족 이야기를 담은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라는 책을 냈다.

2003/06/21 오후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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