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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대신 살사!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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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대신 살사!

누구에게도 지탄받지 않는 원초적인 낙원, 라틴댄스 바가 좋다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대한민국 최초, 최고의 춤 영화!’라고 광고하는 영화가 있어서 시사회장에도 갔다. 시종일관 웃으며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춤 그 자체가 내 마음을 뒤흔들지는 못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까지 제비족이 설치나? 사교댄스의 진짜 매력을 보고 싶다면 서울 홍익대 앞의 ‘ㅂ’이나 압구정동의 ‘ㅁ’ 같은 라틴댄스 바에 가서 1~2시간만 앉아 있어 봐라. 아무도 해치지 않고 누구에게도 지탄받지 않는 원초적인 낙원이 거기 있었다.


어느 날 후배에게 듣자하니 살사라는 춤은 고단한 연애 감정을 대신할 수 있는 아주 쿨한 대용품 같았다. 후배는 말했다. “어떤 면에서 이건 5분간의 짧은 연애예요. 두 사람이 춤을 추는 동안 온 몸과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받죠. 그런데 그 한곡이 끝나는 순간 모든 감정을 제로화시키는 거예요. 아주 쿨하잖아요.”

어느 날 홍대 앞 ‘ㅂ’에서 춤과 짧은 연애 감정의 그 기막힌 메커니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살사댄스 중에서도 스킨십이 가장 딥하기로 유명한 바차타로 시작한 스테이지는 금세 달아올랐다. 그들의 눈빛, 손놀림, 몸동작은 모두 파트너에게 꽂혀 있었다. 누구나 애타는 눈빛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사랑스러운 혹은 친밀감 넘치는 눈빛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현란한 스텝과 함께 연신 상대방의 얼굴을 쓰다듬는 듯한 꽤 에로틱한 손동작을 반복하는 커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야릇한 긴장감은 절대로 ‘도’를 지나치는 법이 없었고, 그 감정이 쉬는 시간까지 연속되지 않아 담백한 느낌이 들었다.

“글쎄요. 춤추다가 만나서 실제로 사귀는 커플도 많고 반대로 질투심 때문에 헤어지는 사람도 많지만 나이트하고는 확실히 다르죠. 춤추면서 작업 들어가는 녀석들은 금방 블랙 리스트에 올라가 춤꾼들 사이에서 배척의 대상이 되기 쉽거든요. 5분간의 짧은 연애 감정이라? 뭐 그런 게 없진 않지만 실제로는 춤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예요. 저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사인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어요.” 굉장한 춤 실력과 결코 느끼하지 않은 다정다감한 매너가 돋보였던 남자 N(광고회사에 다닌다는 20대 후반의 남자)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N과 꽤 로맨틱한 춤을 추긴 했지만 그다지 유혹적인 몸매는 아니었던 여자 L은 더 솔직했다. “일상에서는 결코 아니지만 플로어에서는 제가 꽤 인기가 있는 편이죠. 여기서는 예쁜 여자 못지않게 춤 잘 추는 여자를 선호하거든요. 확실히 어떤 대리만족이 있긴 해요.” 그날 바에서 여러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지만 가장 파격적인 대답을 한 건 증권회사에 다니며 댄스 강사로도 활동하는 남자 K였다. “잘 춘 한곡은 정말로 웬만한 섹스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손바닥만한 검정 톱에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검정 스판 팬츠(이런 식의 섹시한 댄스복을 이들은 ‘땡큐복’이라고 부른다)를 입고 현란하지는 않지만 꽤 유혹적인 춤을 췄던 미모의 20대 여자 K는 그날 저녁 내가 만난 춤꾼 중에서 가장 도발적이었다. 작은 방송사에서 아나운서로 있다는 그녀는 살사가 좋은 건 무엇보다 자신의 성적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애든 섹스든 별로 관심 없어요. 플로어 위에는 나의 감정을 뒤흔들어놓을 만한 것들이 많거든요.”

난 춤이 좋다. 연애나 섹스의 훌륭한 대용품이 될 수 있건 없건 간에 나에겐 적어도 움직임에의 욕구가 있다. 배우지 않아도 그 본능으로 오늘도 혼자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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