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자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23. 16:55

본문

728x9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자
[무명씨 이야기] 상처와 배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위창남(cfhit) 기자   
원고를 들고 만화 잡지사에 갔다. 이번엔 잘 돼야 할 텐데 하는 생각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출판사 문을 열기 전이 제일 두렵고 떨린다.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문을 열었다.

전화로 미리 약속한 기자와 얘기를 나누었다. 늘 기자의 표정을 살피는 게 버릇 아닌 버릇이 돼버렸다.

"맘에 안드세요? 지적해 주시면 고쳐 오겠습니다."

그러나 기자의 대답은 날 당황하게 했다.

"됐어요. 다시 올 필요 없어요."

난 무척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그래도…."

마지못한 표정으로 그 기자는 이런 저런 지적을 했다. 다시 올 필요 없다는 말만 귓전을 맴돌 뿐, 그 기자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가 않았다. 뭘 잘못했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 속은 혼란스러웠다.

출판사 문을 나서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다. 툭 내뱉는 말도 약자에겐 큰 상처다. 나라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텐데….

거절당하고 돌아갈 때의 발걸음은 처음과 달리 무척 더디게 걸어진다. 어느덧 노을이 졌다. 기분 탓일까…. 아름답지 않다. 자신 있다고 다음 번엔 틀림없이 잘될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디선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아주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르고 있었다. 리어카 뒤에는 남매로 보이는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도와준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리어카를 밀고 있었다.

ⓒ2004 위창남
"엄마 내가 더 잘 밀지?"
"아니야, 남자인 내가 더 잘 미는 거야!"
"아니야, 나야!!"

리어카가, 그것도 경사진 길을 오르는데 어린 남매가 얼마나 보탬이 될까! 아주머니의 힘이었을 것이다.

"아유~ 다 올라왔네. 내 새끼들 덕분에 하나도 힘들지 않게 올라왔다!"

아주머니는 남매를 꼭 껴안았다. 자신들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했는지 아이들의 표정은 뿌듯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세 모자 뒤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자였다. 다시 내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2004/04/23 오후 12:33
ⓒ 2004 Ohmynews
◀ 원래기사로

'세상사는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라톤이 선물한 신바람 인생  (0) 2004.04.23
힘들어도 이 일이 제 길입니다  (0) 2004.04.23
연애 대신 살사!  (0) 2004.04.22
위풍당당 황혼재혼!  (0) 2004.04.22
위풍당당 황혼재혼!  (0) 2004.04.2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