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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이 일이 제 길입니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2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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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이 일이 제 길입니다"
[인터뷰]알코올 중독자 치료공동체 '라파 공동체' 운영자 윤성모씨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권윤영(hooko) 기자   
▲ 윤성모씨
ⓒ2004 권윤영
"'알코올 중독자를 위해 살다가다', 언젠가 내가 하나님 곁으로 간다면 내 묘비명은 이렇게 해주시오."

이는 지난 2001년부터 알코올 중독자 치료공동체인 '라파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윤성모(45)씨의 삶을 함축적으로 정리해본 말이다.

"지난 99년 알코올 중독자에 대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알코올 중독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정신병원의 폐쇄병동밖에 없었죠. 그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전무한 상황에서 당사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평범한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던 그의 인생은 성경 구절 하나 하나가 깊은 인생의 진리로 다가온 그날부터 180도 달라졌다. 그는 10년 전 아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 궁금한 마음에 성경책을 펼쳐 든 것이 그를 독실한 신앙인으로 만든 계기가 됐다.

직장을 그만두고 척추장애인 선교단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신앙을 알게 된 후부터는 돈과 이윤을 좇는 삶이 무의미해진 탓도 있었다.

얼마 후 지인의 제안으로 대전으로 내려와 실직 노숙자 쉼터 소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노숙자 중 상당수가 알코올 중독자임을 알았고, 다시금 이들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곧 알코올 중독치유상담실을 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역부족이었다. 노숙자와 알코올 중독자 양쪽 모두 돌보는 일도 힘에 부쳤다.

기어코 그는 전문적으로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라파 공동체'의 문을 열었다. 사비를 들여 그들이 거처할 가정집을 구했고 개인상담, 재활방지훈련, 의사소통훈련, 단주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알코올 중독자의 치유를 돕고 있다. 그 당시부터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를 도와 침례신학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이창민(28)씨가 라파 공동체 일을 도와주고 있다.

▲ 라파 공동체 일을 도와 주는 이창민(28)씨와 윤성모씨
ⓒ2004 권윤영
이곳에는 머무는 사람의 연령은 보통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그동안 많지는 않지만 10여 명의 알코올 중독자가 이곳을 거쳐갔다. 알코올 중독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수개월 단주를 하더라도 끊기가 쉽지 않다.

"치료하는 일 자체도 힘들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힘들었습니다. 1년 동안 단주를 했다가도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일이었죠. 보람의 열매가 너무 작으니까 좌절하고 실망을 겪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한 달에 10만 원씩 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월세와 생활비에 지출하고 나면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비용이다. 정작 그를 힘들게 한 것은 금전적인 부분보다 동네 주민들과 알코올 중독자 가족들의 냉대적인 시선과 무관심이었다.

가족들에게 이들의 단주 소식을 전해주면 "다행이네요. 더 이상 우리는 찾지 말고, 저만 잘 살아주어도 바랄 것이 없겠다"는 말을 듣곤 했다고. 이어 그는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인데,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마음이 참 아파요"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지난 2002년은 그에게 큰 깨달음을 준 사건이 있었던 해이다. 2년 3개월 동안 '라파 공동체'에 머물며 단주를 하던 한 남자가 있었는데, 툭하면 술을 먹고 다시 나타나, 이에 시달리다 못한 윤씨가 그를 윽박지르고 내쫓았던 것.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술을 마신 그 남자가 윤씨의 집을 넘다가, 대문 위 난간에 매달려 사망하고 말았다.

사망 직후 찾아온 그 남자의 누나는 "사망 사유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동생의 죽음을 타살로 의심했고,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라며 윤씨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윤씨는 그 남자의 장례를 치르며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찬송가를 불렀다. 순간 그의 누나는 "이 찬송가는 우리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가장 좋아하던 찬송가였어요. 그때 내 나이가 아홉 살이었고 내 동생은 한 살이었는데…. 엄마가 좋아하던 찬송가를 동생도 좋아했다니…"라고 흐느껴 울었다.

"저는 제 인생을 다해 그 사람에게 봉사하고 헌신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이 제 말을 잘 따르고, 술을 마시지 않을 때만 사랑했던 반면, 그분은 한결같이 저를 사랑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왜 굳이 대문을 넘어서 이곳에 들어오려고 했을까요.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일을 계기로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삶을 제 사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분을 생각하면서 제가 죽는 그날까지 공동체를 운영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러나 그의 다부진 의지와 현실과의 괴리는 여전하다. 현재 기거하는 곳도 재개발로 인해 4월 말까지 비워줘야 한다. 그래도 윤씨는 어려운 내색보다 또 다른 곳에서 교회공동체를 개척할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고,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을 위한 쉼터도 운영할 계획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길은 있으니까요. 과거보다 힘들긴 하지만 삶의 가치가 다르기에, 저에게 선택의 기회가 또 다시 주어진다면 전 주저 없이 이 길을 선택할 겁니다."
문의 : (042)625-3180
이메일 : rapha2002@hanmail.net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2004/04/23 오전 9:26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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