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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뻔한 우리 텃밭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2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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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뻔한 우리 텃밭
텃밭 이야기(3) 뿌린 씨에서 싹이 돋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소영(4blank) 기자   
▲ 싹을 보며 열심히 물을 주고 있는 아들의 모습
ⓒ2004 박소영
4월 초순이 씨 뿌리기에 가장 좋다는 밭 주인 아저씨의 말에 무엇을 심을까 적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참에 마늘농사를 확실히 지어 보자는 남편의 의견과 여러 가지 잎 채소들을 길러 따먹는 즐거움을 맛보자는 나의 의견, 거기에 해바라기, 옥수수를 심어야 한다는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가진 아들 녀석의 의견까지 추가되면서 텃밭 성장기(?)를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농사, 아무나 한다고?"

가까운 친지들에게 수확할 유기농을 선사하겠다고 벌써 장담을 하고 보니 처음에 단출한 마음으로 하자던 농사가 점점 확실한 소출을 얻기 위한 작업으로 변질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텃밭 가꾸기가 은근히 부담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씨를 뿌리기로 하고 아이와 함께 밭으로 향했다. 고추 모종, 딸기 모종, 깻잎, 상추. 배추의 씨들을 들고서. 우선 골을 내기 시작했다. 너무 깊이 파면 씨가 나지 않는다는 주위의 말이 있었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어 내 나름대로 골을 내었다.

씨 뿌리는 일은 금방이라더니 골을 파는 과정부터가 더디고 힘들다. 처음엔 뭘 모르고 큰 삽을 가지고 골을 팠다. 허리 아프다는 내 투정에 아이가, 호미로 밭을 일구고 있는 아저씨를 가리켰다. "맞다, 호미로 했어야지…" 그제서야 호미로 바꾸니 훨씬 일이 수월했다.

씨 봉투를 따서 아이에게 씨를 뿌리게 했다. 씨가 밭에 '줄줄줄' 샌다. 씨가 겹쳐서는 안 된다며 살살 뿌리라는 엄마의 핀잔을 들어가며 씨를 뿌리던 아이가 얼마 뿌리지도 않아 다 뿌렸다고 말한다.

'이런!…' 40%는 휑하게 비워둔 채 앞쪽에만 몰아서 심은 것이다. 나는 또다시 흙을 파내어 보이는 씨들을 들춰 뒤쪽 골에다 다시 묻었다.

▲ 다른 밭에도 가족 모두가 동원돼 밭을 가꾸고 있다.
ⓒ2004 박소영
한편, 저쪽에서 열심히 흙을 일구고 있는 또 다른 밭의 사람들은 가족 모두가 동원돼 열심히 밭을 가꾸고 있었다. 나는 얼른 아이에게 "저기도 친구가 있네. 저 친구들도 밭에 오는 걸 좋아하나 봐"라고 말했다. 흙장난을 그리도 좋아하는 아이가 이상하게도 밭에 오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아서다.

아들 녀석은 공원에서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것은 좋아하면서 밭에 가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결국 엄마를 좇아오긴 했지만 아이는 빨리 이 곳을 떠나자고 조른다.

이제 6살 된 아이가 벌써부터 도시화, 문명화되어 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컴퓨터 게임, 레고 닥터, 수많은 장난감 속에 파묻혀 인간이 가장 친해야 할 흙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엄마, 난 밭에 오기 싫어욧!"

아이와 집으로 돌아와 씨가 흙을 뚫고 나올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지내는 동안 훌쩍 2주가 지나갔다. 어느 날 밭 주인 아저씨가 전화를 걸어 왔다. "아니, 씨 안 뿌릴 거요? 모종 안 심을 거요?"

내가 뿌렸다고 하자 "밭에 아무 것도 없는데…" 했다. 우리의 씨 뿌리기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말?! 나는 크게 실망했다. 텃밭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는 아들 녀석과, 직장 생활로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는 좀 쉬고 쉽다는 남편의 얼굴이 겹쳐지자 나는 그만 '중도 포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비싸게 사 심은 딸기 모종이라도 거둬 오기 위해 마지막으로 밭으로 향했다. 그런데 우리 밭에 이른 순간, 손톱 만한 잎들이 서로를 붙들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머리에 핀을 꽂은 듯 예쁘게 흙에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찌 내가 밭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생명 앞에 느끼는 경외감

아들 녀석 역시 동그란 눈이 되어 싹을 만져 보았다. '그래, 이렇게 피어올라 왔잖아. 다시 해 보자….'

싹이 올라 온 곳은 배추씨를 뿌린 곳이었다. 다른 곳은 전혀 기미가 없지만 이것만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아이에게 물을 주자고 했다. 커다란 물 조리개에 물을 한가득 받아 아이에게 건네니 씩씩대면서도 아주 즐거운 표정이다.

이렇게 우리의 밭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시행착오는 당연한 것임에도 쉽게 포기하려던 내 의지가 부끄럽다. 앞으로 소출의 기쁨을 얻기까지 오늘에 대한 기억은 힘든 과정을 이겨내는 단단한 버팀목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 며칠 전 열심히 씨를 뿌렸던 아들의 모습
ⓒ2004 박소영

2004/04/27 오후 5:52
ⓒ 2004 Ohmy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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