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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온 집 역시 전세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조건이 좀 나아졌을 뿐 결국 남한산성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이 집에서 살아야 하는 데 말입니다. 사실 비교적 집이 많다는 서울 사당동, 숭실대 입구 일대를 몇 일 동안 뒤져도 봤지만, 5000만원으로 원하는 집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스무 군데가 넘는 집을 살펴봤지만 교통이나 주차 등 조건이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돈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겠지요. 서울에서 오죽잖은 집을 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성남에서 좀 괜찮은 집을 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구한 집은 전에 살던 곳에서 정확히 300미터 떨어진 곳으로 지하철역과(남한산성입구 역)는 약간 가까워졌지만 가파른 언덕은 결코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이번에는 남한산 중턱이 보다 더 산 속 깊숙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3년 전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지금의 아내와 저는 전셋집을 마련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을 찾았습니다. 이곳이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역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우리 부부는 인터넷으로 가격을 미리 알아본 후 해당 부동산을 찾았습니다. 한바퀴 동네를 돌아보니 마을은 완벽하게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기가 말로만 듣던 남한산성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공인중개사의 뒤를 따라 산중턱으로 올라가는데 어찌나 힘이 들던지 숨이 턱까지 차 올랐습니다. 바둑판처럼 보이는 빌라 사이 간격은 10센티미터 정도이고 손수레나 들어갈 만한 좁은 골목에는 경승용차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환경에서도 사람이 살고 주차도 하며 다 살아가는구나" 하는 경이로운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마치 낭떠러지처럼 깎아지른 절벽에 서 있는 빌라, 그 주변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자동차, 어떻게 해서 그 턱지고 좁은 골목에 차가 들어가 앉을 수 있는지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우리 부부의 신접살림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주차 문제는 제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차 빼달라"는 요구에 잠을 설쳐 다음날 업무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당시 저희 동네의 주차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오마이뉴스>에 올리면서 제목을 '주차는 내 생활의 절반'이라고 했겠습니까?
이들 공원에는 운동이나 놀이기구보다는 '자연'이 주를 이룹니다. 한마디로 꽃과 나무가 많다는 것이지요. 사시사철 맑은 공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2년 넘게 이곳에 사는 동안 저는 동네 공원들의 가을과 겨울 풍경을 담아 여러 차례 <오마이뉴스>에 올렸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공원 가는 길을 물어왔고 그때마다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밖에 골목의 주차 전쟁, 불법 방치 차량, 은행 시장 사람들의 삶, 골목길에 버려지는 재활용품, 심지어 옥상 위에서 보이는 다양한 풍경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며 살아가는 지역인 만큼 여러 가지 풍경을 담아 <오마이뉴스>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올 1월 중순 전세 계약이 만기됐지만 좀처럼 집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부동산에 중개를 의뢰한 지 5개월이 넘도록 집을 보겠다는 세입자가 한 번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꼭대기까지 올라오긴 싫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던 중 3월 말 차를 소유하지 않은 세입자가 나타났고, 평소 아내가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해놨던 탓인지 세입자가 마음에 든다며 곧바로 계약을 한 것입니다. 사실 저희 부부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철도 지났고 아래 평지에 있는 집들도 안 나가는 추세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1년 더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터였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내용 증명을 보내고 법적 대응까지도 생각했지만 세상일이 모두 법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세입자가 나타나면 집을 내주고, 그 돈을 받아 저도 새로운 집을 구해야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입자가 늦게 나타난 덕분(?)에 저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전세금을 보태주시기로 했던 1월 만해도 소 값이 제법 나갔는데, 석 달 후인 지금은 마리 당 100만 원이나 내린 것입니다. 설 대목이 끝났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아버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소 네 마리를 팔아 전세금을 보태주셨습니다.
새로 이사온 이 빌라는 집주인이 약 7년 동안 살았던 곳입니다. 방안에서 개와 토끼를 길렀다고 합니다. 집주인이 이사를 가는 날, 장롱을 들어내니 구석에 토끼 똥과 함께 토끼가 장판을 심하게 갉아먹은 흔적이 보였습니다. 청소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게다가 이 집에는 아주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안 계셔서 집안 청소가 제대로 안 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2년 내내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해왔던 아내 입장에서는 일이 엄청 늘어나게 된 셈이지요. 주인이 이사간 후 일주일 동안 저와 처제는 막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방 문짝의 찌든 때를 비롯해 개수대 속에 녹아든 굵은 기름때까지. 그 정도가 어찌나 심하던지 집안의 세월이 피부로 느껴지더군요. 퇴근 후, 청소할 시간이 저녁 밖에 없었던 아내는 청소하느라 곧잘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살 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남의 집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저희 부부와 처제가 새 집을 만들어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새로 온 집은 산 속 한가운데 위치해 있습니다. 현관문을 나가 30미터 위로 올라가면 '노루목 공원'이 나옵니다. 산을 평지처럼 다져 조그만 공원을 만든 것입니다. 결국 집 앞에서 30미터 떨어진 곳부터가 산이라는 말입니다. 이 공원 앞에는 작은 주차장도 있습니다. 마땅히 임자는 없지만 이 주차장에는 승용차만 간신히 들어올 수 있습니다. 비록 비탈지고 노면이 거칠긴 하지만 7대까지 차를 댈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제 차는 경차라 이곳 임자 없는 주차장에 수월하게 주차를 하고 있습니다. 집 주위 50미터 반경에는 등산로와 함께 오솔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산이 너무 가까이 있어 혹여 장마철에 산사태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돼 옆집 사람에게 물어보니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워낙 산림이 울창하기 때문에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큰 물이 지나가지는 않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창문을 열면 5미터 앞에 밭이 펼쳐집니다. 저희 집이 1층임에도 불구하고 밭 경사가 높아 상대적으로 반지하 같은 느낌도 듭니다. 문을 열자마자 풋풋한 밭 풍경이 펼쳐져 정서적으로 좋기는 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 바람 부는 날이면 먼지와 흙이 날아오고, 모기 등 벌레들이 많아진다는 게 흠이라면 흠입니다. 이도 바람 부는 날엔 문을 열지 않고, 모기장을 치고 생활하면 그리 문제 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대자연의 상쾌함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기사 중간 중간에 사진 자료를 올렸지만, 적은 돈으로 자연 속에서의 삶을 꿈꾸는 독자라면 이곳 성남 남한산성으로 이사를 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다만, 자동차를 운행하지 않는다는 각오가 있어야 마음 편하게 자연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널찍하고 깔끔한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아파트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면, 이곳 남한산성 부근 빌라에서는 푸름의 상쾌함을 사시사철 느낄 수 있습니다. 강남역까지 승용차로는 30분(평일 낮 시간 기준, 출근 때는 약 50분) 정도 걸리며, 8호선 남한산성 입구 역을 이용하면 약 30분이 소요됩니다. 사실 집이 좀 허름하고 교통이 안 좋아도 서울 입성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으로 제가 시골 출신인 게 이 집을 선택하는데 크게 좌우한 것 같습니다. 집안에 앉아서도 창 밖을 통해 고향 마을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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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7 오후 2:45 ⓒ 200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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