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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글밭이나 갈겠다고 앉아 있는데 옆집 김경희 여사가 또 산에 가자고 전화해왔다. 써야 할 원고가 있었지만 나는 김 여사의 산행 요청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콩 농사만 짓는 무늬만 농사꾼인 우리와 이제는 연로해 농사일에서 은퇴한 김 여사는 산행의 파트너가 되어 사이좋게 숨은 고사리 찾기에 나섰다. 휘파람새가 나직하게 울고 우리의 기척에 꿩이 놀라서 푸드덕 날아오르는 산에 도착하자마자 김경희 여사와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김 여사와 나 사이는 모녀지간처럼 끈끈하지만 고사리 찾기에 나서면 달라진다. 서로 고사리를 더 많이 꺾기 위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사리밥이 많이 있는 곳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70평생을 시골에서 살며 해마다 고사리를 찾아다니며 내공이 쌓인 김 여사와 고사리는 음지 식물이며 포자로 번식하며 하는 등등의 교과서 지식으로 똘똘 뭉친 이제 시골살이 5년 차인 나의 숨은 고사리 찾기 게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난해 고사리 잎이 무성했다가 겨우내 말라죽은 덤불 사이를 잘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먹을 쥔 아기 손 같은 고사리가 불쑥 솟아 있기 마련이었다. 벌써 여러 꾼들이 다녀간 듯 고사리가 있을 만한 곳에는 줄기가 꺾인 고사리 밑둥에 눈물 방울 같은 수액이 매달려 있었다. “이것 좀 봐. 벌써 다 꺾어 갔네. 어쩐다. 그러니께 새벽 이슬 있을 때 와야 하는디….”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 등원시키랴, 밤 도깨비 체질 탓에 아침형 인간을 부러워만 해야 하는 내 처지를 알면서도 김 여사는 기어코 나를 향해 투덜거렸다.
고사리는 산 아래쪽에서 위를 쳐다보며 찾아야 한다. 고사리는 땅 속 뿌리에서 새순이 싹 터서 줄기부터 자라서 잎이 펴지기 때문에 그 전에는 산 속의 수많은 잎들 사이에 가려 찾아내기 힘들다. 그리고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생물시간에 고사리는 음지 식물이라고 배운 것 같은데 막상 현장을 경험해보니 음지보다는 양지쪽에 줄기가 굵으면서도 시커먼 잔털이 보송보송한 꽃미남 같은 고사리들이 많았다. 이렇게 시골살이를 하다보면 이론에 매인 교육에 회의를 품게 되는 경우를 종종 만난다. 시골살이 1, 2년차 때에는 고사리의 서식 환경과 조건을 몰라서 김 여사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고사리를 줍는 수준이었지만 이제 나도 고사리에 관한한 꾼의 경지가 멀지 않았다. 이러니 해가 바뀔수록 고사리 꺾는 수준이 올라가는 나에 비해서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른 체력의 김 여사가 라이벌 의식을 느낄 수밖에.
그런 고사리의 위장술에 넘어가지 않고 기어이 찾아내서 바구니에 담을 때는 미안한 마음도 생기지만 그런 감정에 오래 빠질 필요는 없다. 고사리는 생명력이 강해서 새순이 꺾이고 나면 바로 옆에서 또 새순이 나와 종족을 보존해 간다. 그 힘찬 생명력이 담긴 쌉쌀하고 쫄깃한 진짜 햇고사리의 맛에 길들여지게 되면서 나는 봄에는 김 여사를 앞세우고 틈만 나면 우리 동네 온 산을 헤매고 다닌다. 그렇게 꺾어 온 햇고사리를 삶아서 말려서 시아버님 기제사에 올릴 때 느끼는 보람과 도시에 사는 친지들에게 내가 직접 꺾은 고사리라며 뻐기며 보내주는 재미에 산다. 그러나 그렇게 온 동네 산을 들쑤시고 다녀도 아직 나는 고사리 꺾기에 있어서 김 여사와는 게임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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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9 오전 10:18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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