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몰래 찍은 부끄러운 사진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3. 20:06

본문

728x90
몰래 찍은 부끄러운 사진들
<포토에세이>언젠가는 그들의 땀방울을 찍고 싶습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민수(dach) 기자   
ⓒ2004 김민수
자그마하고 구부정한 등에 놓인 짐의 무게는 인생의 무게, 고난의 무게는 아닌지 참으로 아릿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오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 손에 들린 카메라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할머니, 제가 들어다 드릴게요."
"됐쑤다. 다 왔수다."
"그래도 들어다 드릴게요."
"아니우다."

끝내 사양하시고는 고맙다 인사를 하고는 터벅터벅 가시던 길을 걸어가시는 할망을 보면서 삶의 무게, 고난의 무게를 느껴봅니다.

ⓒ2004 김민수
저 모습이 바로 어머니의 모습이었고, 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새벽이면 밤새 다듬은 채소를 첫 차에 싣고는 혜화동 어딘가로 가셔서 집집마다 돌아다니시면서 채소를 팔고 돌아오시는 어머님은 가볍게 돌아오시지 못했습니다. 돼지에게 먹일 비지를 가득 이고 오셨습니다. 리어카를 끌고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가면 20kg짜리 비료부대에 그 이상의 비지를 담아 서너 개씩 내리셨습니다.

차장의 찌푸린 눈길에도 아랑곳 않고 새벽이면 첫 차에 배추며 달랑무, 파, 아웃, 깻잎 등등 밭에서 기르는 채소를 바리바리 정리해서는 첫차를 타시던 어머님은 차장에게 미안하다며 껌을 두 통 사서는 버스기사와 차장에게 뇌물(?)로 주었습니다.

그렇게 가져온 비지 중에서 일부는 비지국으로 끓여 허기를 달래기도 했습니다. 간혹 고깃기름이라도 동동 뜨는 날이면 너무도 맛나게 먹었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배고픈 시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된 여름 어느날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너무 더운 날씨에 '아이스께기'가 유혹을 하였고, 공책을 사야 한다면서 거짓말로 어머님에게 타냈던 돈으로 그것을 샀습니다. 그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길 건너편에 버스가 서고 건너편에서 버스 바퀴 아래로 무거운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짐을 보았습니다.

어머님이 가져오시는 비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른 친구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고 버스정류장으로 달려 갔습니다.

"엄마!"

훗날 그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친구는 자기는 횡재했다면서 왜 그랬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버스정류장 근처에 세워놓았던 리어카에 비지를 싣고 아들과 함께 리어카를 끌고, 밀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구멍가게를 지날 때 어머니는 "아이스께기 하나 사주랴?"하셨지만 저는 끝내 거절을 했습니다.

어머님의 그 고단한 삶을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바꿔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한 동안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았습니다.

ⓒ2004 김민수
사진전문가는 아니지만 꽃에 미쳐 들판을 쏘다니며 지난 일 년여 동안 렌즈에 담은 꽃들을 세어보니 이젠 세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장된 사진의 용량이 많아 컴퓨터 속도가 느려지는 통에 외장형 하드디스크를 별도로 구입을 했습니다만 늘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자연 앞에 서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아쉬운 것 중 하나가 가장 좋은 사진의 소재인 사람을 찍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망원렌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망원렌즈가 있다한들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 본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 찍은 사진은 개인 용도로 사용하기에도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주로 뒷모습, 적당히 포즈를 취해 주었을 때 순간적으로 렌즈에 담고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기에 바쁩니다. 사람을 담으려면 먼저 그들과 진한 삶의 교류가 있어야 할 터인데 그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마음의 준비도 아직 덜 되었고, 사진도 잘 담을 수가 없어서 미루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 그들의 땀방울을 찍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2004 김민수
오일장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납니다.
잘 정리정돈 되어있는 현대식 매장이 주지 못하는 매력을 오일장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코드 표시가 아닌 삐뚤빼뚤한 글씨가 오히려 정겹습니다.

중국산도 있고 국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망은 장사를 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인지 중국산에 눈길을 주는 이들에게 "그건 못 쓴다이"하며 국산을 사용하라고 합니다. 어찌되었건 팔아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상술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조금은 촌스러운 것이 아름다운 것인데 언제부터 그렇게 세련된 것만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주름진 이마, 쪼글쪼글한 손이 아름다운 것인데 그런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요, 또 그런 사회의 기류를 좇아가는 사람도 건강한 사람은 아니겠지요.

ⓒ2004 김민수
바다에서 따온 미역이겠지요.
다 팔면 얼마가 되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많아야 만 원 정도 될 것입니다. 그 만 원을 벌기 위해 저렇게 발품을 팔며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사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사진들은 몰래 찍은 부끄러운 사진들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들의 땀방울을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 찍듯이 찍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2004/05/03 오전 10:40
ⓒ 2004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