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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 운동회의 추억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1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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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딸아이의 밋밋한 운동회와 어릴 적 시골 운동회의 추억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순희(sinchoon07) 기자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많은 행사가 줄줄이 있습니다. 어린이날도 있었고, 어버이날도 있었습니다. 또 얼마 있지 않으면 스승의 날도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행사들이 많아 괜히 설레고 분주한 달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딸아이의 '소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일년에 한 번 하는 운동회인데 잠깐 하고 마는 것 같았지요. 그러니 소운동회라고 명칭을 붙인 것이 아닐까요?

아침부터 체육복을 차려입은 딸아이와 잠깐의 실랑이를 했습니다. 책가방을 들고 가야하나 아니면 그냥 빈손으로 가야하는지 딸아이도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책가방은 들고 가지 않기로 했지만 이번엔 시원한 물 한 통을 가져가야 한다고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라는 딸아이의 말에 화가 나서 직접 친구에게 전화도 못 거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바쁜 아침시간이라 어찌하지 못하고 결국 제가 딸아이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얼린 물을 준비해 간다고 합니다. 그 친구의 엄마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전해 듣고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딸아이의 뒤에서 한마디했습니다.

“알제, 엄마는 초등학교 때 항상 일등만 했대이.”
“알고 있어요, 나도 뭐 열심히 달릴 거예요.”
“그래, 니가 일등을 해라는 소린 아니고 열심히 달리라는 거다 알았나?”
“예~에.”

씩씩하게 대답하며 가던 길 멈추고 뒤돌아보며 딸아이는 앞니 빠진 모습으로 살짝 웃어 보입니다. 어젯밤에 사실 제 어릴 적 운동회에 대해서 몇 마디 한 게 있었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달리기는 지지 않았고, 항상 일등만 했다고 말입니다.

그걸 강조를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고 부담을 가지란 소리는 아니었는데 딸아이를 보내고 나니 괜히 그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조금 생겼습니다.

아무튼 달리다 혹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창문으로 뛰어 내려가는 딸아이를 한번 더 보았습니다. 체육복을 입고 달려가는 뒷모습이 꼭 저의 어릴 적 모습 같았습니다. 작은 키에 야무진 모습이 말입니다. 하체가 단단해 달리기는 잘하겠다는 소리도 참 많이 들었거든요.

▲ 한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 어릴 적 운동회는 봄과 가을로 나뉘어져 일년에 두 번 했습니다. 봄 운동회보단 가을운동회가 재미있었지요. 봄엔 기본적으로 하는 것 외엔 없었고 좀 간단한 행사를 하고 마쳤지만 가을운동회엔 그 높고 푸른 가을하늘 아래 청군과 백군이 나뉘어 대결을 했지요.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그 소리를 운동장이 떠나갈 정도로 외치고 외쳤습니다.

반에서 홀수번호는 청군을 했고, 반대로 짝수번호는 백군이었습니다. 전 키가 작아 앞쪽에 서다보니 거의 홀수번호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청군 이겨라고 많이 외쳤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운동회에 빠질 수 없었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언제 들어도 그때의 동심으로 그때의 운동회를 하고 있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그 노래가 말입니다.

“이 넓고 넓은 운동장에 청군과 백군이 싸운다. 청군과 백군이 싸우면 틀림없이 청군이 이긴다. 이겨라 우리 청군 따라 씩씩하게 싸워서 이겨라. 오늘의 승리는 청군의 승리. 랄랄랄라 만만세!”

운동장 하늘엔 알록달록한 다른 나라의 만국기들이 펄럭이고 있고, 전 학년이 정해진 경기를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그 모습들이 아른거립니다. 청군은 청군대로 백군은 백군대로 이마에 두른 띠의 승리를 위해 참 열심히 했습니다.

시골학교의 운동회, 어떻게 들으면 참으로 낭만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요즘의 초등학교 운동회와 비교를 해본다면 낭만적인 것, 그 이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고전무용도 재미있었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달리기 대표들이 뛰는 일명 릴레이 달리기는 운동회에 있어 절정과도 같은 흥미진진한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어떤 것을 기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몇 달씩 걸려 준비하고 익혀온 고전무용 역시 색동저고리에 치마를 입고 부채를 들어 춤을 추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방과 후 운동장에 남아 지도 선생님과 얼굴이 빨갛게 익어가도록 열심히 했었던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운동회에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이라면 아마도 부모님의 학교 방문입니다. 거의 선생님 얼굴보기, 학부모 얼굴보기 힘든 시골학교에서의 운동회의 의미는 어쩌면 선생님과 부모님과의 대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시골 환경을 고려해 며칠 전부터 저의 어머니는 운동회에 갈 준비를 하십니다. 이제껏 언니들이나 오빠들의 운동회에 한번도 제대로 참석해보지 않았다던 어머니는 그래도 막내인 저의 운동회에 한번도 빠짐없이 다 참석을 하셨습니다.

언니, 오빠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그때 전 막내가 누릴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다 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좀 얄미웠겠죠? 우선 어머니는 학교에 입고 갈 옷부터 신경을 썼습니다. 처음엔 평소에 잘 입지 않으시던 한복도 입고 오셨습니다. 일할 때 헐렁한 작업복 허리춤에 질끈 묶던 그 끈을 유행이 지난 한복치마 위에 다시 묶은 어머니의 모습,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들에서 일만 하시던 어머니는 그날만큼은 한복에 뽀얀 분을 발라 눈썹도 그리고 빨간 입술도 그리셨습니다. 산에서 주워온 밤과 고구마를 삶았고, 계란 몇 개도 삶으셨습니다. 찬합엔 하얀 쌀밥과 반찬은 제가 좋아하는 오뎅(어묵)에다 굵은 멸치 볶음, 계란프라이, 콩나물무침 그리고 김치를 담아 준비를 해오셨지요.

어머니는 같은 동네 아주머니들과 나무 그늘에 신문지 몇 장을 깔아놓고 제가 찾아와 주길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어머니가 어디에 어떤 사람들과 같이 앉아 있다는 것쯤은 기본이었죠. 그런 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잘 찾잖아요.

달리기든 다른 단체 경기를 마치고 이긴 팀은 공책이나 연필을 상으로 받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상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저 역시 달리기엔 소질(?)이 좀 있었는지 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걸 어머니 앞에 갖다 드리면 어머니는 기특해 하셨습니다. 학교에 온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시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게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제가 어머니를 닮아 달리기를 잘한다고 뿌듯해하기도 하셨지요.

사실 어머니는 언니, 오빠들의 운동회엔 제대로 참석하지 않으셨지만 운동회 마치고 돌아온 언니, 오빠들이 받아온 상은 거의 없었으니 어머니의 기쁨은 두 배였지 싶습니다. 오전 경기가 마치고 어머니와 점심을 먹는 시간 역시 좋았습니다.

▲ 한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점심 시간(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렇게 도시락 싸 들고 야외(?)에 앉아 밥 먹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기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다른 엄마들처럼 김밥을 싸 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저에겐 그 도시락이 최고의 밥상이었습니다.

어머니 옆에 한 묶음인 공책과 연필들을 보면서 으스대던 저 역시 그날만큼은 어리광을 피웁니다. 용돈을 타는 것이지요. 어머니는 그런 저의 마음을 읽으신 것인지 몇 백원을 주십니다. 학교 앞 가게의 아이스크림 통 앞엔 아이들이 줄을 서서 그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야단이었습니다.

둥근 통에 들어있던 것은 설명 안 해도 혹 생각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땐 아이스크림이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운동회는 어린 저희들에겐 큰 행사였고, 부모님들 역시 모처럼 가져보는 잔치 같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잠깐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짠해 옵니다. 흐뭇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런 추억들이 있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니 딸아이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떻게 되었나 궁금한 마음에 계단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땀을 많이 흘린 듯합니다. 얼굴 탄다고 아침에 발라준 선크림도 소용없었는지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탔습니다. 딸아이는 씻을 생각도 않고 큰소리로 말을 합니다.

“엄마, 근데 나 일등 했어요.”
“우와, 어떻게 했길래?”
“그냥 첫 줄이었는데 선생님이 호루라기 불어서 막 달렸어요.”
“잘했네. 진짜로 일등 했나?”
“맞다니까요, 근데요 달리다가 넘어졌는데 안 울고 다시 일어나서 세게 뛰었어요.”
“아이구, 우리딸 참 잘했네. 역시 엄마 딸이 맞네.”

일등을 했다는 딸아이를 잡고 그 순간을 일일이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꼭 그 기분이 들었습니다. 넘어졌다는데도 다친 곳이 있는지 없는지도 물어보지 않고 일등 한 것에 너무 흥분을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요즘은 딸아이와 제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남편을 너무 많이 닮은 딸아이가 성격이나 모든 면에서 저와는 닮은 게 없다고만 생각해 왔습니다.

지난 번, 소풍을 다녀온 딸아이의 가방에서 발견한 수첩엔 작은 메모가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감상을 적어놓은 수첩을 보면서 그때도 전 엄마 딸이 맞다고 확신을 해주었고, 달리기 일등 한 것에도 또 확신을 시켜주었습니다.

흐뭇해하는 딸아이와 전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예전 어머니와 제가 학교 운동장 나무 그늘 아래서 먹던 도시락처럼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느꼈을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딸아이가 고향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딸아이에게 달리기 한번 하자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집 앞에서 막대기로 선을 그어 놓고 어머니는 “요, 시, 땅”이라는 구호를 붙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일부러 외손녀에게 져 주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힘에 부쳐 달리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때 딸아이가 한발 치 먼저 달렸습니다. 분명 손녀에게 지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러셨지요. 아직 당신도 달리기만은 자신 있노라고 말입니다.

다음에 어머니와 저, 그리고 딸아이 이렇게 셋이서 마을골목길에서 달리기를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일등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딸아이의 운동회가 조금은 밋밋한 것이었지만 제 마음은 아직도 청군과 백군의 릴레이 속으로 빠져드는 듯합니다. 흐뭇한 하루였습니다.

“이 넓고 넓은 운동장에 청군과 백군이 싸운다. 청군과 백군이 싸우면 틀림없이 청군이 이긴다. 이겨라 우리 청군 따라 씩씩하게 싸워서 이겨라. 오늘의 승리는 청군의 승리. 랄랄랄라 만만세!”

2004/05/12 오전 9:09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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