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뻐꾸기야, 네가 모내기 하는 날을 아니?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19. 08:40

본문

728x90
뻐꾸기야, 네가 모내기 하는 날을 아니?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순희(sinchoon07) 기자   
▲ 모내기를 했습니다.
ⓒ2004 김순희
창문 너머로 뒷산에서 뻐꾸기가 웁니다. 딸아이와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으며 그 소리에 새삼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고향의 앞산에선 지금 뻐꾸기소리가 요란할텐데 그 정겨운 소리에 잠시 취했습니다.

딸아이에게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새소리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저 소리만 들으면 어릴 적, 어머니가 이웃집 모내기 품앗이하러 가셨고, 저 소리에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며 지냈고, 저 소리에 마을 모내기가 끝이 나길 간절히 바라며 지낸 시절이 있었노라고 말입니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쳐다보는 딸아이에게 아무튼 제일 듣기 싫었던 그 소리가 이젠 그리운 소리가 되었다며 웃었습니다. 딸아이는 잉꼬를 좋아했는데 이제부턴 엄마처럼 뻐꾸기를 좋아할 것이라며 위로를 해줍니다.

모내기, 일년 중 가장 바쁜 것이 지금의 계절입니다. 중요한 만큼 힘도 들고 손길도 많이 가기에 일손도 많이 필요한 것이지요.

지난 주말과 휴일은 저의 집 연례행사인 모내기를 했습니다. 주말엔 오전부터 내린 비로 어떻게 될지 몰라 집에서 전 미적거리고 있었습니다. 항상 일을 두고 며칠 전부터 전화를 해오시던 어머니마저 전화 한 통 없었습니다.

당연히 온다고 생각을 굳히신 모양입니다. 비가 와도 모내기는 할 수 있는 일이라 안 할 리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로 간편한 옷차림으로 고향으로 갔습니다. 비가 내리니 자꾸만 발걸음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더디게 갔습니다.

집에는 큰 올케 혼자서 음식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저녁이 되려면 멀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아마 이것저것 준비를 해두는 것 같았습니다. 논에는 큰형부와 큰오빠, 어머니가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큰형부는 이제 농사꾼이 다 되었습니다.
ⓒ2004 김순희
오후가 되면서 빗줄기가 굵어졌습니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모내기를 하는가 봅니다. 하기야 누가 해도 해야 하고, 언제하든 해야 할 우리의 일이었습니다. 회사 일로 바쁘신 큰형부도 일 마치고 바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사실 큰형부가 오시면 저희들(큰형부보다 아래인 사람들 전부)은 게으름을 피우게 됩니다.

자랄 때도 농사 한 번 지어보지 않았다던 형부는 저의 집에 오셔서 거의 이십 년을 농사를 거들었습니다. 거든다기보다 거의 손수 하셨지요. 친정아버지가 계셨을 때도 지게 짊어지고 풀도 베고, 경운기 몰고 짚 갔다 나르고, 논일을 잘 하셨습니다.

▲ 논두렁에 있는 모판을 날랐습니다.
ⓒ2004 김순희
그런 형부 덕분에 저희들은 좀 편하게 게으름을 피우며 일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큰형부가 계시다니 이번 모내기는 좀 편하겠다 싶은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비가 온다는 이유로 논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무서운(?) 꾸지람도 뒤로한 채 따끈한 온돌방에 배 깔고 누워 떡집에서 갔다준 떡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만약 어머니가 보신다면 부지깽이(막대기)들고 호통을 치셨을 겁니다.

저녁이 지나고 밤이 가까워 오는데도 세 사람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험난한 빗속에서 아직 모내기를 하고 있을 세 사람을 생각하니 그때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꾸지람도 겁나고, 집에 있으면서 내려가지 않고 논 것에 무진장 미안해지고, 앉아 있질 못하고 마루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 세 사람은 비옷을 입은 채로 들어옵니다. 큰형부는 웃으면서 저를 반겨주셨고, 큰오빠는 아무 말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아래채 죽담(신발 벗어 놓는 곳)에 걸터앉아 비옷을 벗기만 합니다. 그러고 나자 어머니는 봇물 터지듯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작은언니와 전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애교를 부려보았습니다. 통할 리 없지만 열심히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아주 부드럽게 말입니다. 생각 외로 어머니는 좀 수그러지셨습니다. 저녁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들어오시지 않으셨습니다.

큰형부는 저희더러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일도 안하고 밥만 먹으려니 어찌 그렇게 마음이 불편하던지요.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큰형부는 그러십니다. ‘괜찮아, 내가 대신 대표로 일 많이 했으니까 그냥 먹어.’ 정말 고마운 말씀이었습니다.

휴일 날 아침, 대신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구름은 끼었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아마도 일하지 않았던 저희더러 일 많이 좀 하라는 하느님의 따끔한 충고였지 싶습니다.

▲ 어머니는 허리를 안 펴십니다.
ⓒ2004 김순희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는 이미 논으로 가셨고, 큰형부와 새벽에 온 작은오빠는 아침을 대충 드시고 논으로 가셨습니다. 큰오빠 역시 아직 잠에 취해 있는 저희(작은언니와 저)를 큰소리로 깨웁니다. 일 안 하면 밥 안 준다나요.

더 이상 미적거리지 못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점심은 가지고 간다고 올케언니들은 음식준비에 바쁩니다. 올케언니들이 있어 부엌엔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얼른 씻고 논으로 내려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도 참으로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작은언니와 제가 먼저 수건 하나 쓰고 논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사이 일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큰오빠는 논두렁을 왔다 갔다 하면서 또 소릴 지릅니다.

모판을 이쪽에 몇 개, 저쪽에 몇 개 빨리 빨리 움직이지 뭐하냐고 고함을 칩니다. 못자리 논의 모판을 떼어내는 일이 힘든데 그것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논두렁에 쭉 놓여진 것들을 모내기하고 있는 논 근처의 논두렁에 몇 개씩 날라야 하는 것이 언니와 저의 임무였습니다.

어머니는 다 심어진 논에 띄엄띄엄 심어진 것들을 하나씩 바로 다시 심고, 기계로 심다보니 논두렁 가까이 쪽에 심어지지 않은 곳에 일일이 손으로 심고 계셨습니다. 예전 같으면 일하시다가도 한번 쳐다보실 텐데 어머니는 쳐다보는 시간도 없다고 허리 구부려 일만 하십니다.

기계 모라도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제각기 할 일들이 주어지니 지체할 겨를도 없이 척척 진행이 되어가니 금방이면 끝날 것 같다고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엔 마을 아주머니들이 3일에서 4일 정도 일을 하셔야 모내기가 완전히 끝이 났습니다. 열 명이 넘는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며 품앗이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는 뻐꾸기소리가 들릴 이맘때가 되면 한 달이 넘는 기간을 남의 집 품앗이를 다니신 것입니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꼬박 논에서 사셨던 것이지요. 손이 부르트고, 허리가 아파도 다 해야 하는 일이라 참 힘들게 사셨습니다.

▲ 언니들이 새참 겸 점심을 가져 옵니다.
ⓒ2004 김순희
그런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제가 뻔히 일하는 걸 알면서도 하기 싫어 꾀를 부린 전날이 후회스러웠습니다. 한참 모판을 나르고 있으니 올케언니들이 점심을 가지고 옵니다. 그 앞엔 딸아이가 저를 부르며 앞서고 그 뒤로 언니들이 머리에 뭔가를 이고 오는 모습이 또 얼마나 오랜만인지….

한두 시간 정도면 끝날 것 같다던 모내기는 기계가 자주 고장이 나면서 진행이 느려졌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니 기계라고 튼튼할 리 없겠지요. 친정아버지가 당신 떠나면 농사 힘들다고 돌아가시던 그 해 봄에 그 기계를 사 두셨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심지 않는 것이 신기해서 힘든 몸을 이끌고 손수 한번 기계를 만지고 싶어 하셨던 생각이 그 기계를 보니 새삼 떠올랐습니다.

형부와 큰오빠가 기계를 만지는 동안, 한쪽에선 불을 지폈습니다. 소풍 나온 사람들처럼 가져온 음식에 삼겹살을 구워 먹었습니다. 대충 해서 먹는 것인데도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일을 빨리 끝내려고 생각하면 할수록 기계가 자꾸 말썽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하루 할 일이니 저녁 때까지만 끝내자 싶어 쉬엄쉬엄하기로 했습니다.

▲ 딸기밭에서 딸기한소쿠리를 땄지요.
ⓒ2004 김순희
햇볕이 없어 일하기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논 주위를 살펴보니 어머니의 작은 과수원에서도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딸기밭에서 딸기도 한바구니 땄습니다. 사과나무와 배나무, 포도나무에서도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 올 가을엔 풍성한 과일들을 따먹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보았습니다.

작년엔 태풍 때문에 사과들이 볼품 없었거든요. 정말 올해는 무사히 농작물에 피해 없이 지나가 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모내기는 거의 다 되어갈 무렵, 기계는 여전히 말썽을 일으킵니다. 한 마지기를 놔두고 그렇게 속을 태우니 다들 지쳐 논두렁 밭두렁에 쭉 앉아 기계가 빨리 제 일을 마쳐 주길 기다렸습니다.

▲ 10년이 넘은 기계가 자꾸 고장이 나요.
ⓒ2004 김순희
어머니는 일이 끝나는 대로 논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아귀찜을 사 주신다나요. 일이 마무리 되어가니 어머니도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논두렁 안쪽에 모 심는 것을 언니들과 함께 했거든요. 안 하면 어머니 혼자 하시기 때문에 그 일마저 다 해버렸습니다.

굳이 그렇게 알뜰히 심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도 어머니는 어차피 남은 모에 비어진 공간이라며 한 포기라도 더 심으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어머니겠지요. 하나라도 더해서 많은 수확을 하면 어머니 혼자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여섯 시가 되어서야 일은 마쳤습니다. 올해의 모내기가 끝이 났습니다. 모두들 수고 많이 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온 가족들이 다 모여 모내기를 무사히 끝내고, 어머니가 사 주신 아귀찜을 더욱 맛있게 먹었습니다.

▲ 드디어 모내기가 끝이났어요.
ⓒ2004 김순희
어스름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갑니다. ‘개굴개굴’ 논에선 개구리소리가 요란하고, ‘뻐꾹뻐꾹’ 앞산에선 간간히 뻐꾸기 소리가 들립니다. 모두들 수고했다고 격려를 하는 듯합니다. 모처럼 온 가족이 야외에서 흐뭇한 만찬을 했습니다.

‘우리가족 파이팅!’

2004/05/18 오전 11:22
ⓒ 2004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