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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을 했으니 논밭 8할이 보리밭이었다. 그 중 2할은 밀로 채워졌던 70년대 고향 뜰은 서럽게 아름다웠다. 보리밭 밟고 잡초 매느라 봄날 따사로운 햇볕에 그을려갔다. 웬수같은 '볼태기' '독새기' '보지감자' 매느라 허리가 휘어졌다. 보리가 아이 만큼 크면 보릿대 하나 쑥 뽑아든다. 매듭 한개 붙여 잘라, 줄기 따라 날카로운 칼집 살짝 내 달짝지근한 물 쪽쪽 빨고 "부우~ 부부" 보리 피리 불며 놀았다. 배동이 불룩해지며 보리 이삭이 팬다. 뜨물이 차고 오동통 까만 줄그어진 알맹이를 감싸고 보리 까시락도 쭈뼛쭈뼛. 푸르스름하던 껍질 무지개 빛을 띤다. 생으로 보리나 밀을 비벼 껌으로 씹어 본다. 차차 누렇게 익어 가면 꼴 베러가던 참에 '비사표' 사각통 성냥집 한쪽 뜯어 골 대여섯 개 챙겼다. 행여 물에 젖을까 종이에 꼬깃꼬깃 싸 옷핀 찔러 주머니에서 빠져 나오지 않게 채비를 한다. 혼자서 감행했다가 무슨 날벼락 맞을지 모르는지라 두셋이 한짝이 되었다. 논 한가운데로 살금살금 기어가 보리 서리 해 오는 재미는 스릴 그 자체다. 망 보던 아이들은 냇가에 말라 비틀어져 걸려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 모아 불 피울 준비를 한다. "야! 일로 와봐라. 다 벼 왔당께." “허벌나게 벼 왔다. 언제 다 묵을라고 그냐?" "냉기믄 깔망태다 넣어 각고 가믄 되고, 걸리면 몇 대 맞아불면 되제. 죽이기까지 하겄냐?" "글도 양심이 있제." "야 색꺄? 피장파장이잖어? 이왕 먹을 꺼 몽땅 먹고 맞는 게 낫제 쥐꼬리맹키 쬐까 묵다 걸리면 억울하지도 않냐?" "야야 그만 허고 얼렁 꼬실라 묵자."
"아따 막 갖다 대불면 다 타불제~" "한삐짝으로 떨어져서 찬찬히 구워야제 고로코롬 하믄 쓰겄냐?" "요렇게야?" "잉~."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우면 모가지가 대롱대롱. 초벌 구워지면 불구덩이에 모아서 뜸들이듯 더 익힌다. 겉 껍질은 까맣지만 속은 멀쩡하다. 눈치 3단 해섭이가 잽싸게 사그라진 불 위에서 잘 익은 다섯개를 나무 막가지로 "툭툭, 틱틱" 끄집어내 손에 올려 “후~후-훗!" 불어댄다. 뜨끈뜨끈한 보리를 양손 사이에 넣고 몇 번 비벼댔다. "후후~ 후~" 입을 가지런히 모으고 까시락과 보리 껍질을 분리한다. 겉이 까맣게 타거나 누르스름한 보리 알갱이가 가득하다. 검불을 마저 없애 입에 대고 입술에 뺨을 때리듯 "턱!" 털어 넣는다. "야! 참말로 꼬습다." "의리 지독히 없는 놈 같으니…. 너 꼰질러 분다." "긍께 얼렁 한 번 묵어 보랑께!" “흠냐 흠냐” 맛있게 한참 먹어댔다. "얌마! 니 꼬라지가 뭐냐?" "남 말하지 말고 이녁 얼굴이나 한번 보셔." "깜둥이가 따로 없구만…." "히히히히" 까만 얼굴과 하얀 이를 쳐다보며 배꼽 잡고 웃었다. 냇가로 가서 얼굴과 입술을 씻으며 물 한모금 먹으니 배가 불렀다. 모래로 문질러 보고 쑥 뜯어 문대 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이젠 누구네 보리를 베어다 먹었던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다음달에는 개구리 뒷다리나 먹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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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7 오후 4:10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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