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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내운 선생님에게
언젠가 어느 헌책방에서 <교육문화>(한국교육문화협회) 1953년 2월호를 찾은 적 있습니다. 그 잡지에는 성내운 선생이 쓴 "서울특별시 국민학교 학급의 집단과정"이란 퍽 긴 글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 글에서 "사람은 오직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만 사람답게,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다는 것도, 학문이 밝혀준 사실이"라며, "경쟁을 통한 교육은 너도 잡아먹히게 하고, 나도 잡아먹히게 하고, 그리하여 너도나도 함께 잡아먹히게 하는 교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잡아먹는 기술이 이 나라에 가득 차 있었기에 마침내는 그놈마저, 아니, 온 나라가 송두리째 일본에 삼키임을 겪었고, 지금껏 이 백성이 헐벗음과 굶주림을 면치 못하는 까닭도 경쟁을 통한 교육이 자랑삼는 이른바 '우등생' 때문"인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힘을 길러주려 하기 전에 사람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며, 이런 이야기는 공자의 <논어>에도 나오고 <성경>에도 나온다며, "협동을 통한 교육"을 하는 한편, "자포자기에 떨어진 학생에게 '나도 하면 되겠구나, 된다, 나도 사람이었구나' 하는 느낌을 주어 다시 인생을 출발하게 하는 일"을 학교 교사가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했습니다. 이런 말씀은 쉰 해를 훌쩍 뛰어넘어 2004년 오늘에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 아니, 쉰 해 동안 하나도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판박이처럼 이루어진 우리네 학교 교육 문제를 보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학교에서 '우등생'보다는 '사람'을 가르치고, '경쟁'보다는 '도움(협동)'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는 성내운 선생 생각이 1953년부터 이 나라 학교에 자리를 잡았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분단시대의 민족교육>(학민사, 1985)이라는 책에서 머리말에 적으신 당신이 쓴 시를 다시 읽으며 우리 사회가 '획일'이 아닌 '다양성'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꿈꿔 봅니다. 달라질래요 - 성내운 시 우리 반 동무들은 모두 달라요 얼굴도 다르고 키도 달라요 모두가 똑같아지면 우스울 거야. 우리 반 동무들은 모두 달라요 생각도 다르고 재주도 달라요 모두가 똑같아지면 우스울 거야.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라서 좋고 오빠는 언니와 달라서 좋아요 서로가 똑같으면 우스울 거야. 나는 나는 동무들과 달라질래요 오빠와 언니와도 달라질래요 모두가 똑같으면 우스울 거야. 나는 나는 이 세상의 누구와도 달라질래요 달라져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말 거야. <2> 윤구병 선생님에게
그러면서도 늘 가장 가난하고 힘없고 돈없는 이 땅 민중, 그러니까 그동안 무지렁이처럼 짓밟혀 온 이 땅 백성을 헤아리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나눠야 한다는 가르침을 세 해 동안 알려주셨습니다. 몸소 보여주시기도 하고요. 윤구병 선생님은 모든 사람이 하루 아침에 1급수 물이 될 수는 없다며, 3급수 물로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이 4급수 물로 떨어지기보다는 2급수 물로 올라서는 게 낫다고 늘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과 하는 말, 엮는 책도 지나치게 앞서나가며 1급수 책으로만 만들면 너무 어렵고 알아보는 사람도 적다고 했습니다. 어른들을 가르치고, 어른들이 좋은 책을 읽는 일도 좋지만, 자라나는 어린이가 좋은 책을 읽을 수 없다면, 좋은 터전, 좋은 자연환경과 더불어 지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앞날이 없다고 말씀했고요. 어릴 적부터 자연을 모르고 사는 어린이가 자연을 지키고 가꿔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고, 책으로만 자연을 알고 새 모습을 알고 짐승 생태를 외우며, 그림으로만 풀과 꽃과 나무를 보는 아이들이 밥 한 그릇에 밴 땀방울과 값어치를 느낄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몸 가는 데 마음간다>(철학과현실사, 1992)라는 책에서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전공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 그 공부가 제대로 된 것이라면 말일세. 제대로 되지 않은 것도 있느냐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렇다네"하고 이야기를 열면서, 우리나라에서 가르치는 철학이라는 게 "수십 년 전부터 짜여진 교과과정에 따라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서양 고세, 중세 철학이지, 이것이 우리 민족의 통일이나 민주화나 자주화나 민중의 주체형성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볼 수 없게 하고, 그런 것만 가르치도록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 대학이 전공공부만 시키는 곳은 아니니까 학생들은 자기 전공 밖의 다른 공부도 해야 하네. 종합대학의 필요성은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아니겠나? 그러니까 대학 선생은 학생에게 총체적인 사회인식을 위한 교육도, 바른 세계관 형성에 필요한 교육도, 또 올곧은 가치관에 따르는 올바른 실천을 담보하는 교육도 시킬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걸세. 간단히 되풀이하네만,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병들어 가면서 마련한 사회적 자원이 대학생 개개인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삶의 유지를 위해서, 그러니까 대학 졸업한 놈 잘 먹고 잘 살아가는 데에 낭비되고 탕진될 것을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또 그런 놈을 길러 내라고 대학 선생 호의호식시킬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 <3> 이오덕 선생님에게 그리고 저에게 남다르게 살가운 분으로 다가오는 이오덕 선생님이 계십니다. 살아 계실 때는 딱 한 번 뵈었으나 이제는 제 온삶을 공들여 보듬어 모실 분이 되었습니다. 잘난 것도 없고, 아무 재주도 없는 저입니다. 그런데 이오덕 선생님 둘레에 당신을 참답게 알고 헤아리며 교육 운동, 글쓰기 운동, 어린이문학 운동, 우리 말 운동을 두루두루 살피고 짚으며 이 땅 어린이를 살피는 분들이 너무 적은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픕니다. 자라나고 커서 이 나라를 이끌고, 남북이 하나되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꿀 이 땅 어린이인데 그 어린이를 볼 줄 모르는 제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억눌리고 찌들리며 괴로운 어린이인데, 그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펼친 말없는 말씀을 아로새기며 살아가는 제자들이 너무도 적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일찌기 "일하는 어린이"를 안쓰럽게 여기면서도, 우리네 어린이들이 "일하는 어린이"로 자라지 않으면 몸이나 마음이 튼튼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씀했습니다. '일'이란 고되게 부려먹는 일이 아니라, '놀이'처럼 즐길 수 있어야 하며, 사람으로 태어나 먹고 살아가는 동안 죽는 날까지 한결같이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씀했어요. 그래서 <참교육으로 가는 길>(한길사, 1990)이란 책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겠죠? "머리만 쓰는 사람은 불행하다. 몸만 쓰는 사람도 불행하지만, 머리만 쓰는 사람은 더 불행하다. 더구나 교육자가 머리만 쓸 때 그 자신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가 가르친다고 하고 있는 아이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고요. 몸만 써서 죽어나는 이 땅 농민과 노동자가 얼마나 불쌍한가요. 일한 대접을 제대로 못 받잖아요. 그런데 머리만 쓰는 수많은 이 땅의 어른들은 몸만 쓰는 사람 위에 올라서서 팔짱을 끼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도요. "일이란 몸과 마음을 써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나이가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는 일이 놀이가 된다"고 말씀하셨죠? 이것은 어른도 마찬가지라, 어른들이 하는 일도 고달프게만 하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하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하는 한편, 일을 마치고 한몸뚱이가 되어 질펀하게 놀 수 있어야 참 좋습니다.
넓게 보면 같은 일터에서 같이 일하는 데에도 사용자와 고용자가 너무도 다른 품삯을 받는 얼거리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벌고 함께 나눌 수 있는 평등한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동시를 모은 <개구리 울던 마을>(창작과비평사, 1981)에 나온 "밥짓기"란 시를 함께 읽고픕니다. 시가 좀 길기에 그 가운데 "쌀을 씻는다"는 대목만 옮겨 봅니다. 쌀을 씻는다 오늘도 마음속에 귀한 것이 들어왔으면…… 잡티 하나 들지 않도록 모래알 하나 섞이지 않도록 내가 씻는 희고 깨끗한 쌀알 같은 것만 들어와 주었으면…… <4> 이 땅 모든 선생님들에게 제가 우러르고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세 분 선생님 모두 교육자로 온삶을 사셨거나 사시면서 숱한 제자를 길렀습니다. 저는 당신들의 제자라기보다는 '씨앗'이 되고픕니다. 뿌리내리고 자랄 때는 맑은 공기를 내뿜고, 가을이 되어 무르익으면, 뭇생명이 즐겁게 배를 채울 열매를 맺을 '볍씨'가 되고픕니다. 선생님들, 아니 스승님들이여, 그동안 참 고마웠고, 앞으로도 무척 고마울 겁니다. 선생님들이 늘 말씀하신 "가난하게, 이름없이, 부지런히"라는 세 가지 다짐을 늘 되새기면서 나와 우리를 아울러 생각하고 보듬는 '함께 살기'로 튼튼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겠습니다. 스승님들 앞에 큰절을 올리면서 이만 편지를 맺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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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7 오전 10:15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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