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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강제수용 전재' 뒤끝 평택 대추리 들판을 가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6. 4. 1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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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로 막은 시멘트 다시 퍼내고
[르포] '토지강제수용 전쟁' 뒤끝 평택 대추리 들판을 가다
텍스트만보기   최종수(tkfkdtn) 기자   
▲ 반세기 넘도록 남의 나라 땅을 공짜로 쓰는 것도 모자라 더 땅을 빼앗으려는 것을 알고 있는 마늘싹들.
ⓒ 최종수
사제의 휴일인 월요일이다. 군산에서 사제단 회의를 마치고 동료 신부들과 함께 평택으로 향했다. '전쟁은 신을 생각하게 한다.' '고향의 논과 밭이 미군기지로 강제수용 당한다면, 내 부모님이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중이라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두 가지 생각이 뇌리를 떠날 줄 몰랐다.

개나리와 산수유 등 봄꽃들이 피어난 대추리 분교와 마을은 평화로웠다. 광활한 들판과 하늘을 이어지는 저녁노을은 '토지강제수용 전쟁'을 끝낸 들판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넉넉해 보였다.

▲ 고향을 아는 인간처럼 해마다 둥지를 찾아 몇 만 리를 날아오는 제비
ⓒ 최종수
마을과 들판 사이를 이어주는 시멘트 도로에는 몇 천 포대의 복합비료가 들녘으로 향한 꿈처럼 그득그득 쌓여 있고, 들판과 손잡고 있는 텃밭에는 새파란 마늘싹들이 단비에 한 뼘은 더 자란 듯 보였다.

올봄에 다시 돌아온 제비가 올해도 내년에도 농사짓고 싶은 주민들의 그 희망을 아는 듯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보고 돌아와 처마 밑의 둥지를 찾아 들었다.

지난 금요일, 전쟁을 방불케 했던 강제토지수용 현장을 둘러보았다. 네 곳에서 벌어진 토지수용과 고향, 생명의 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현장은 그날의 치열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걸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 도두리와 함정리 농수로를 차단했던 시멘트를 주민들이 말끔히 수로 밖으로 퍼내어 정리한 농수로
ⓒ 최종수
5000여 명의 전경과 경찰, 800명의 용역들. 그들의 군홧발과 작업화에 짓밟힌 논과 길은 중장비를 동원하여 다져놓은 것처럼 반들반들해져 있었다. 주민들이 국가에 낸 세금의 일부인 1억4000만 원의 예산으로 동원된 불도저는 논둑과 볍씨를 뿌린 논을 파괴했고, 레미콘 차량들은 함정리와 도두리 두 곳 농수로에 시멘트를 부어 놓았으며, 포클레인은 물길을 돌리기 위해 둑을 파헤치고 농수로의 대형철관을 파괴했다.

▲ 무너뜨린 둑을 복구한 농수로, 논두렁을 허물며 지나간 불도저 뒤로 보이는 미군기지
ⓒ 최종수
그러나 농수로를 막은 시멘트는 그날 밤 주민들에 의해 다시 농수로 밖으로 내몰렸다. 주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행되고 있는 미군기지확장계획처럼 농수로에서 추방당한 셈이었다. 되레 그 시멘트가 논둑을 더 튼튼하게 보강해 준 꼴이 되었다.

현장을 돌아보는 내내 차마 하늘을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피붙이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온 논을 파헤치고 논의 젖줄인 수로를 막을 때 주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들판 가득 잦아든 그날의 울분과 상처가 되살아나고 있는 듯했다.

▲ 대추리 분교에서 영원히 놀고 싶은 세발자전거 뒤에는 주민들이 매일밤 촛불을 밝히는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 최종수
아이가 놀다 두고 간 세발자전거가 대추리 분교 운동장 한 가운데 서 있고, 교실과 나란히 앉아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587일째 촛불 집회가 열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당신들이 사는 집에 가 차라도 한잔 하자며 손을 끌었다. 그리고는 물을 끓여 내어놓은 녹차처럼 만지면 데고 말 멍울진 한들을 막힘없이 풀어놓았다.

"맨몸으로 시집 와서 이렇게 좋은 집을 마련하고, 자식들에게 호강 받으면서 살만하니까 또 미군들이 고향과 논을 내놓으라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일입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2년도 가을이었습니다. 벼야 콩이야 논밭 작물을 추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한가위 명절 다음날이었지요. 미군이 탄 불도저가 들이닥치더니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동네 담장들을 밀기 시작했습니다.

▲ 세번씩이나 집과 논밭을 빼앗길 수 없다며 울분을 토해내는 할머니
ⓒ 최종수
'아이고 어쩐디야! 아이고 어쩐디야!' 벌벌 떨면서 소리만 질렀습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없고, 통역관도 없었으니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요. 우리 집 바깥양반이 검지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운 뒤 양손을 모으고 잠자는 시늉을 했지요. 하룻밤만 자고 간다는 말을 미군들도 알아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날 집집마다 난리가 났습니다. 한옥을 뜯어다가 옮겨야 했으니까요. 네 기둥에 동·서·남·북, 상량, 대들보라고 적고 나무마다 1, 2, 3, 4를 알아볼 수 있게 번호를 썼습니다. 초가지붕도 말아서 지금 이 자리에다 집을 옮겨 짓게 된 것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이, 한국전쟁 중에는 미군이 한 마디 통보도 없이 명절 다음날 불도저로 집과 땅을 빼앗았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한국정부가 이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불도저와 포클레인과 레미콘, 전경과 경찰과 용역들을 동원해서 고향과 논밭을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이나 미군이 그런 만행을 저질러도 분하고 억울할 텐데, 한국정부가 더 악랄한 방법으로 국민의 땅을 빼앗아 미군부대까지 건설해서 공짜로 준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지요."

적어도 진정한 우방이란?

인터넷을 통해 모집한 용역들 중에는 10대 청소년도 있었다. "형이 아르바이트 자리 있다고 해서 따라왔어요.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분들의 땅을 빼앗는 일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안 왔죠."

이런 부당한 일을 못하겠다며 100여 명의 용역들이 들판을 가로질러 도망을 가기도 했다. 레미콘 기사도 그 자리를 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차마 시멘트를 붓지 못하고 돌아간 것이다.

▲ 들판으로 녹아들어 가고 싶은 복합비료의 꿈을 알고 있을 미군수송기
ⓒ 최종수
헌법 운운하며 국민의 재산을 보호해야 할 참여정부가 국민의 땅을 강제로 수용한다는 비난은 퍼붓고 싶지 않다. 그보다 먼저, 자기 집과 땅을 세 번씩이나 빼앗겨야 할 처지에 놓인 그 주민들의 심정을 한번 헤아려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과연 양심을 지닌 정부라면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이 그와 같은 고통 속에 있는데 우방 운운하며 찬성할 수 있을까?

일제식민지 시대에도, 중국과 러시아를 무너뜨린 일본이 미국 본토까지 집어삼키려고 하자 몇몇 관료들은 일본이 곧 세계를 지배할 테니 일본의 식민지로 있는 것이 더 낫다며 앞장을 선 일이 있었다. 그때 그 모습과 유사한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으니 미국 말을 잘 듣는 것이 득이 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연 그렇다면 일제시대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그 당시의 현실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무슨 이유로 친일청산을 그렇게도 고집한다는 것인가. 어불성설이요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진정한 우방이란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그 존재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대추리 마을과 황새울 들판과 하늘을 이어주는 노을의 아름다움, 그 노을을 거부하는 미사일 탄피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 최종수
2006-04-12 10:34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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