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나리와 산수유 등 봄꽃들이 피어난 대추리 분교와 마을은 평화로웠다. 광활한 들판과 하늘을 이어지는 저녁노을은 '토지강제수용 전쟁'을 끝낸 들판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넉넉해 보였다.
올봄에 다시 돌아온 제비가 올해도 내년에도 농사짓고 싶은 주민들의 그 희망을 아는 듯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보고 돌아와 처마 밑의 둥지를 찾아 들었다. 지난 금요일, 전쟁을 방불케 했던 강제토지수용 현장을 둘러보았다. 네 곳에서 벌어진 토지수용과 고향, 생명의 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현장은 그날의 치열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걸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현장을 돌아보는 내내 차마 하늘을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피붙이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온 논을 파헤치고 논의 젖줄인 수로를 막을 때 주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들판 가득 잦아든 그날의 울분과 상처가 되살아나고 있는 듯했다.
"맨몸으로 시집 와서 이렇게 좋은 집을 마련하고, 자식들에게 호강 받으면서 살만하니까 또 미군들이 고향과 논을 내놓으라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일입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2년도 가을이었습니다. 벼야 콩이야 논밭 작물을 추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한가위 명절 다음날이었지요. 미군이 탄 불도저가 들이닥치더니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동네 담장들을 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집집마다 난리가 났습니다. 한옥을 뜯어다가 옮겨야 했으니까요. 네 기둥에 동·서·남·북, 상량, 대들보라고 적고 나무마다 1, 2, 3, 4를 알아볼 수 있게 번호를 썼습니다. 초가지붕도 말아서 지금 이 자리에다 집을 옮겨 짓게 된 것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이, 한국전쟁 중에는 미군이 한 마디 통보도 없이 명절 다음날 불도저로 집과 땅을 빼앗았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한국정부가 이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불도저와 포클레인과 레미콘, 전경과 경찰과 용역들을 동원해서 고향과 논밭을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이나 미군이 그런 만행을 저질러도 분하고 억울할 텐데, 한국정부가 더 악랄한 방법으로 국민의 땅을 빼앗아 미군부대까지 건설해서 공짜로 준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지요." 적어도 진정한 우방이란? 인터넷을 통해 모집한 용역들 중에는 10대 청소년도 있었다. "형이 아르바이트 자리 있다고 해서 따라왔어요.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분들의 땅을 빼앗는 일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안 왔죠." 이런 부당한 일을 못하겠다며 100여 명의 용역들이 들판을 가로질러 도망을 가기도 했다. 레미콘 기사도 그 자리를 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차마 시멘트를 붓지 못하고 돌아간 것이다.
일제식민지 시대에도, 중국과 러시아를 무너뜨린 일본이 미국 본토까지 집어삼키려고 하자 몇몇 관료들은 일본이 곧 세계를 지배할 테니 일본의 식민지로 있는 것이 더 낫다며 앞장을 선 일이 있었다. 그때 그 모습과 유사한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으니 미국 말을 잘 듣는 것이 득이 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연 그렇다면 일제시대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그 당시의 현실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무슨 이유로 친일청산을 그렇게도 고집한다는 것인가. 어불성설이요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진정한 우방이란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그 존재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
목조주택이야기-3 (0) | 2006.04.16 |
---|---|
목조건축이야기-2 (0) | 2006.04.15 |
하인즈 워드에 대한 기억들 (0) | 2006.04.14 |
천연염색 실습현장 (0) | 2006.04.11 |
어머니의 보물창고, 텃밭 (0) | 2006.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