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사진에세이] 모내기철 바쁜 농촌의 일상

요리조리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22. 08:42

본문

728x90
노란 장화 신고 모심기 나섰습니다
[사진에세이] 모내기철 바쁜 농촌의 일상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윤태(poem7600) 기자   
▲ 새벽 안개속에서 이슬 맞은 모.
ⓒ2004 윤태
아침 여섯 시, 논 한 모퉁이에 모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밤새 모 위에 내려 앉은 이슬이 제법 선명합니다. 어제 일기예보에는 오늘 낮에 약간의 비가 온다고 했는데 걱정입니다. 이럴 땐 차라리 빗나간 일기예보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모내기에 바쁜 요즘 농촌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 아버지의 논둑길 풍경화.
ⓒ2004 윤태
이른 새벽 아버지는 손수레에 모판을 실어다가 논에 갖다 놓으십니다. 아들, 딸, 사위, 며느리 할 것 없이 6남매가 모두 일손을 도우러왔습니다만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일꾼(?)들은 아직 달콤한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진 촬영을 위해 일찍 일어났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비닐하우스에 못자리를 했기 때문에 해가 떠오르면 40∼50도나 되는 찜통 속에서 모판을 꺼내야 합니다. 해뜨기 전에 서두르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저도 사진기를 들고 얼쩡대다 바로 아버지께 잡혀(?) 새벽부터 모판을 날랐습니다.

▲ 모내기의 기본 복장은 노란 장화를 신는 것인데….
ⓒ2004 윤태
모판을 나르는 동안 안개도 걷히고 날이 제법 맑아졌습니다. 써레질(갈아놓은 논바닥을 모를 심을 수 있게 써레로 고름)이 매끄럽게 된 논 위로 저만치 소나무 물 그림자가 제법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농촌은 정겹게 비치지는 풍경이 전부는 아닙니다. 모판을 들고 논으로 들어가면 물 그림자 따윈 금세 없어집니다. 풍경이 현실로 바뀌어버립니다.

▲ 텅빈 농심(農心)이 가득할 날을 기다리며….
ⓒ2004 윤태
곧 모를 심어야 할 빈 논입니다. 논에 물을 가득 채우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물을 넣자마자 오래가지 않아 아랫논으로 새어나가기 때문입니다. 두더지, 땅강아지들이 뚫어놓은 구멍으로 순식간에 물이 도랑이나 아랫논으로 빠져나갑니다.

물이 빠지지 않게 하려면 써레질할 때 논두렁을 진흙으로 발라 구멍을 막아줘야 합니다. 저렇게 긴 논두렁을 발로 바르다보면 온몸이 천근만근 힘이 듭니다. 그 일이 해결된 후 물꼬를 터 놓으면 두어 시간이면 물이 찹니다.

▲ '빠짐'주의보가 내려진 물웅덩이 논.
ⓒ2004 윤태
모를 심다 말았습니다. 너무 많이 빠지기 때문에 더 이상은 기계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전부터 이 자리는 웅덩이가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모를 심을 때와 벼를 벨 때 이앙기와 콤바인이 빠져서 헤어날 줄을 모릅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허리까지 빠지기 때문에 이곳은 어쩔 수 없이 손으로 심어야 합니다. 그러잖아도 이 논 써레질할 때 그 육중한 트랙터가 빠져서 굴삭기로 트랙터를 잡아 꺼냈다고 합니다. 그 육중한 기계들이 그렇게 밟아댔으니 논이 더 무를 수밖에요. 중장비를 부른 대가로 15만원씩이나 지불했다니, 아버지 속이 얼마나 타셨을까요?

▲ 모 300개 꽂고 허리펴기. 전형적인 우리 농촌의 아버지 상.
ⓒ2004 윤태
아버지께서 ‘뜬모’를 하고 계십니다. 기계가 지나간 후 제대로 심어져 있지 않거나 기계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손으로 모를 다시 심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작업이 어렵습니다. 기계는 한 시간이면 두어 마지기 금방 심고 나가지만 뜬모는 며칠 동안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허리가 끓어질 듯 힘든 작업이 바로 뜬모입니다. 우리네 농촌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당신 허리는 휘더라도 자식들만은 고생 안 시켜야 한다는 일념 아래….

▲ 보람찬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들.
ⓒ2004 윤태

▲ "볶은 보리 절대 사먹지 마라"
ⓒ2004 윤태
건너 논에 모를 다 심은 가족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역시 점심 시간은 즐겁습니다. 논과 논 사이에 보리밭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좀 넓은 논둑인데, 논둑에 벼를 심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보리를 심은 것입니다. 흔히 논둑에는 콩을 심기 마련인데 올해는 보리를 심으셨습니다.

시장에 가면 볶은 보리를 싼값에 사서 보리물을 끓여먹을 수 있는데, 아버지는 "사다 먹는 것은 나쁘다"며 직접 보리를 심으셨습니다. 지금 저희 집에서 끓여먹는 보리차 역시 시골에서 농사 지은 것들입니다. "볶은 보리는 절대 사다 먹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을 따른 것이지요.

▲ 논둑 한가운데서 붉은 사열을 받는 단풍나무.
ⓒ2004 윤태
좀 의아한 풍경입니다. 왼쪽은 모를 심을 논입니다. 오른쪽도 보이진 않지만 역시 논입니다. 그런데 논과 논 사이 둑에 단풍나무가 서 있습니다. 위에는 보리였는데 이번엔 단풍나무라니…. 일하면서 이 아래서 쉬라고 심어놓은 단풍은 아닙니다.

동네 한 아저씨가 농사일과 함께 묘목을 심어 판매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빈 공간을 잘 활용하신 것입니다. 논에서 한참 일하다 멀리서 이 단풍을 바라보면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일렬로 서서 사열을 받는 듯한 벌건 단풍나무.

▲ 낭만적인 초원이 아닌 텅빈 묵밭.
ⓒ2004 윤태
잡풀만 무성한 빈 밭입니다. 2년 전부터 이 밭은 풀만 자라고 있습니다. 밭 앞에 사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이 밭에서는 곡식을 볼 수 없습니다. 이젠 풀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나 밭으로 다시 가꾸려면 힘이 많이 들 것입니다. 저는 지나다가도 빈 밭이나 빈 논을 보면 마음이 씁쓸합니다.
윤태 기자는 시인을 꿈꾸고 있는 청년입니다. 그 작은 흔적들은 그의 홈페이지 (www.yun.speedbook.net)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 홈페이지는‘사연나라’로 부르기도 합니다. 라디오 방송에 보내고 소개된 글들을 엮어 놓았으며 여기에는 눈물과 사랑, 감동과 추억, 웃음, 가족 간의 사랑 등 풋풋한 ‘사연’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2004/05/20 오후 2:36
ⓒ 2004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