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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김선생 주려고 시 한편 적어왔네."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었다. 얼마 전 약주 한잔 맛나게 드시고 흥에 취해 읊조리시던 글구가 요즘 내 마음과 같아 어린 아이 마냥 좋아하였더니 그 속내를 어떻게 아셨는지 손수 내 문지방 위에 풀먹여 붙여 주셨다. 問余何事栖碧山(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불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왜 푸른 산에서 사느냐고? 웃어 보일 뿐 내 마음 한적하기만 하네 복숭아꽃 물길 따라 아득히 흘러가는데 여기가 바로 딴 세상 속세를 떠났도다
"차 맛 좋다"를 연발하시는데 내가 짐짓 "약주 맛만 하시겠어요" 농을 건네니 호통대신 "그건 그래" 하시며 호방하게 웃으신다. 훈장님의 웃음색은 아이들처럼 속내가 없는 투명색이다. 훈장님은 요즘 새로 시작하신 농사 재미에 푹 빠지셨다. 뒤뜰에 닭을 키워 학동들과 잡아도 먹고, 알도 빼먹는다고 하시고 작은 텃밭에는 상추·쑥갓·고추·신선초·토란·수박·참외·들깨·옥수수·토마토 등등 종류별로 없는 것 없이 다 심었다. 농약을 쓰지 않으니 풀 반, 채소 반이지만 소일거리로 잡초를 매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씀하신다. 때때로 지게를 지고 산에 땔감을 구하러 가시기도 하고 차가 없는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일로장에 다녀오시면서 뜨거운 장터국밥에 소주 한잔 기울이시기도 한다. 마을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들이 많기 때문에 제사가 있는 날에는 일일이 날짜를 기억했다가 소주 한 병씩 건네시며 지방을 써 주시기도 하고, 도회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가훈을 써주시기도 한다.
왜 잘나가던 사업을 팽개치고 승달산으로 들어오셨느냐고 여쭈었다. " 자식들 키워 세상으로 내 보내 제 몫을 하니 부모로서 할 일은 한 것이고 세상 하직할 때까지 잠시 안빈낙도(安貧樂道)해도 탓할 사람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 훈장님은 도시 사람들의 행복을 "죽은 뱀이 탱자나무에 걸려 있고 두꺼비가 소발굽에 밟힌 형상"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누려고 하지 않고 담장 안에 자신을 가두고 사니 제 보기에는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남 보기에는 그 형상이 꼴불견이라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승인 아산 선생(남종화가 조방원 선생)께서 입문하는 자신에게 "자연이 가장 큰 스승이다. 자연을 바로 보고 맑고 고운 성품을 지녀야 그에 상응한 맑고 고운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고 가르치셨다고 한다.
훈장님은 서당개 당구 녀석 밥이나 챙겨 준다며 일어서시며 한마디 던지신다. "배고프고 생활은 어려웠어도 행복지수는 옛 시절이 높았어. 하늘땅도 자로 재서 나누는 세상인데 여기서 하늘이 다 땅이라고 맘껏 연을 날린다고 누가 나무라는 사람이 있겠는가. 푸른 산에 담을 치고 못 보게 하겠는가. 무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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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5 오후 10:20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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