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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에서 사냐면? 웃지요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2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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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에서 사냐면? 웃지요
[월선리사람들1] 월선서당 박인수 훈장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대호(mokposm) 기자   
▲ 바쁜 농사철에도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훈장님
ⓒ2004 김대호
훈장님께서 오랜만에 내 작업실에 놀러 오셨다. 며칠째 매듭이 풀리지 않는 원고 때문에 애먹던 차에 차 한잔 마실 핑계가 생긴 셈이다.

"내 김선생 주려고 시 한편 적어왔네."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었다. 얼마 전 약주 한잔 맛나게 드시고 흥에 취해 읊조리시던 글구가 요즘 내 마음과 같아 어린 아이 마냥 좋아하였더니 그 속내를 어떻게 아셨는지 손수 내 문지방 위에 풀먹여 붙여 주셨다.

問余何事栖碧山(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불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왜 푸른 산에서 사느냐고?
웃어 보일 뿐 내 마음 한적하기만 하네
복숭아꽃 물길 따라 아득히 흘러가는데
여기가 바로 딴 세상 속세를 떠났도다


▲ 훈장님이 학동들에게 예와 시서화를 가르치는 월선서당
ⓒ2004 김대호
다시 한번 그 뜻을 풀어 주신다. 사람 마음은 개구리와 같아 자꾸 튀어 오르려고 하니 변고를 부릴 때마다 시심(詩心)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월선서당 박인수 훈장님 지론이다. 아마도 두달째 접어드는 산중생활의 적적함을 달래 주려고 오셨나 보다.

▲ 승달산 등산길에서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오는 훈장님과 마주쳤다.
ⓒ2004 김대호
평소에 약주를 즐겨 하시는 분이시라 지리산 피아골서 차 농사를 짓는 재원형님이 보내주신 허깨잎(한방에서는 간에 좋다고 함)을 다기에 담았다. 내가 아끼는 고동색 분청다기를 타고 금빛 찻물이 흐르고 금세 여린 풋내임이 입안을 간질인다.

"차 맛 좋다"를 연발하시는데 내가 짐짓 "약주 맛만 하시겠어요" 농을 건네니 호통대신 "그건 그래" 하시며 호방하게 웃으신다. 훈장님의 웃음색은 아이들처럼 속내가 없는 투명색이다.

훈장님은 요즘 새로 시작하신 농사 재미에 푹 빠지셨다. 뒤뜰에 닭을 키워 학동들과 잡아도 먹고, 알도 빼먹는다고 하시고 작은 텃밭에는 상추·쑥갓·고추·신선초·토란·수박·참외·들깨·옥수수·토마토 등등 종류별로 없는 것 없이 다 심었다. 농약을 쓰지 않으니 풀 반, 채소 반이지만 소일거리로 잡초를 매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씀하신다.

때때로 지게를 지고 산에 땔감을 구하러 가시기도 하고 차가 없는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일로장에 다녀오시면서 뜨거운 장터국밥에 소주 한잔 기울이시기도 한다. 마을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들이 많기 때문에 제사가 있는 날에는 일일이 날짜를 기억했다가 소주 한 병씩 건네시며 지방을 써 주시기도 하고, 도회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가훈을 써주시기도 한다.

▲ 마을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훈장님
ⓒ2004 김대호
그래서인지 훈장님은 동네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많다. 할머니들이 툇마루에 슬그머니 놓고 가신 참기름 병만도 벌써 대여섯 병은 쌓여 있다. 아마도 시골사람들에게는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 이백의 산중문답을 들고 내 작업실을 찾으신 훈장님
ⓒ2004 김대호
"내가 감동하면 타인도 감동하고 내가 감동을 못 느끼면 타인도 감동을 못 느끼는 것이야. 자식놈들이야 명절 대목에 얼굴 비추면 자식 노릇 다 하는 줄 알지만 시골 할머니들에게 저승사자말고 자기를 찾아주는 인기척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지."

왜 잘나가던 사업을 팽개치고 승달산으로 들어오셨느냐고 여쭈었다. " 자식들 키워 세상으로 내 보내 제 몫을 하니 부모로서 할 일은 한 것이고 세상 하직할 때까지 잠시 안빈낙도(安貧樂道)해도 탓할 사람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

훈장님은 도시 사람들의 행복을 "죽은 뱀이 탱자나무에 걸려 있고 두꺼비가 소발굽에 밟힌 형상"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누려고 하지 않고 담장 안에 자신을 가두고 사니 제 보기에는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남 보기에는 그 형상이 꼴불견이라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승인 아산 선생(남종화가 조방원 선생)께서 입문하는 자신에게 "자연이 가장 큰 스승이다. 자연을 바로 보고 맑고 고운 성품을 지녀야 그에 상응한 맑고 고운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고 가르치셨다고 한다.

▲ 잡초 반 채소 반인 훈장님의 텃밭. 그래도 유기농이다.
ⓒ2004 김대호
"스승님께서는 입버릇처럼 부귀공명을 쫓을 것이 아니라 산 좋고 물 좋은 두메산골에 초막을 짓고 농사지으며 자연을 벗삼는 것이 화가에게는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씀하셨는데…가르침대로 사니 세상 근심걱정도 사라졌고 이제 120살까지는 거뜬히 살겠구먼. 산에게 왜 산에 사느냐?고 물으니 웃을밖에…"

훈장님은 서당개 당구 녀석 밥이나 챙겨 준다며 일어서시며 한마디 던지신다.

"배고프고 생활은 어려웠어도 행복지수는 옛 시절이 높았어. 하늘땅도 자로 재서 나누는 세상인데 여기서 하늘이 다 땅이라고 맘껏 연을 날린다고 누가 나무라는 사람이 있겠는가. 푸른 산에 담을 치고 못 보게 하겠는가. 무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야."

▲ 서당개 당구의 출산에 금줄을 친 학동들의 마음이 참 곱다.
ⓒ2004 김대호
월선리예술인촌은 전남 무안군 청계면 승달산 자락에 있습니다.

2004/05/25 오후 10:20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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