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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도 모처럼 회사일이 바쁘지 않아 쉬는 휴일이었던지라, 이래저래 괜찮은 날이 되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작은언니가 저의 가족을 데리러 오기로 했습니다. 차가 없는 우리 가족이 작은언니의 차를 함께 타고 다닌 것은 꽤 오래된 일입니다. 차가 없어 불편하다거나, 차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해본 저로서는 10년 가까이 언니네 차를 얻어타면서 이젠 되도록 안 타려고 하지만 그게 어찌 뜻대로 되는가요? 다음날, 언니의 전화를 받고 저의 가족은 집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올해 중학생이 된 큰 조카는 오지 않았고, 작은 조카만 타고 있었습니다. 안 본지가 벌써 한 달이 되어선지 조금은 서먹해 하는 조카 녀석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씨-익' 웃습니다. 그것으로 어색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지요. 찾아가겠다고 전화를 몇 번 드렸지만 전화가 되지 않던 어머니는 이른 아침에 안 그래도 작은언니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입니다. 언니는 어머니와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전해주었고, 모두들 역시 "어머니답다"는 말로 차 안의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하였습니다. 고향집에 들어서니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콩잎에 쌈을 해먹으려고 찌개를 끓이고 계셨습니다. 아참, 그러고 보니 그 약속(?)이 뭔지 얘길 안 한 것 같군요. 그 약속이란 큰언니, 작은언니네 그리고 저의 가족들이 고향집에서 어머니 모시고 삼계탕 한 번 해 먹는 것이었어요. 모내기 끝나고 여름이 되면 한 번 해먹자는 약속을 작은언니는 이제구나 싶었던지 닭을 준비해 왔습니다. 어머니는 더운데 뭘 해먹느냐고 말씀은 하셨지만 시끌벅적한 사람소리에 마냥 좋아하셨습니다. 귀찮다고 하면서도 찹쌀도 꺼내 씻어주시고, 마늘도 까 주셨습니다. 미리 준비온 닭을 씻어 넣고, 그 유명한(?) 엄나무도 넣어 가마솥에 불을 지폈습니다. 작은형부는 더운 기운에 땀을 흘려가면서 장작불을 지펴 아궁이를 데웠고, 남편과 어머니도 번갈아가며 불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지요.
도시의 가스불보다 가마솥의 장작불이 시간은 더 걸려도 그 맛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삼계탕을 실컷 먹고 나니 큰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곧 도착한다고 말입니다. 온다고 미리 연락이라도 했더라면 그 맛을 함께 나눌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큰 형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작은 조카에게 작은 양동이를 들고 따라 나서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김에 매운탕 거리라도 있는지 냇가에 나가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일이 있어 점심을 먹은 후, 먼저 내려왔고, 작은 형부와 조카, 큰 형부는 양동이 하나에 반도(?)를 들고 근처 냇가로 갔습니다. 한 양동이 가득 잡아 오겠다며 나섰지요. 큰형부가 처음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았을 땐 참으로 고기들이 많았습니다. 20년 전엔 말입니다. 양동이를 들고 나갔다하면 가득이었어요. 매운탕을 며칠을 해먹고도 남을 만큼 고기들이 많았던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차츰 그 많던 고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큰 형부의 그런 행동은 설마 고기를 잡아 오겠냐는 의문이 더 많았습니다. 고기가 사라진지 꽤 오래되었거든요. 비가 온 뒤라 아마 한 끼 정도의 매운탕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진 않았지만 아무튼 큰 형부의 예전 실력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고향집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부지런하시거든요. 농사일도 척척 잘 하시고, 고기뿐만 아니라 그 냇가나 둑 하천의 돌멩이들을 다 정리 정돈하시다시피 하셨던 전적(?)이 아주 뛰어난 큰 형부 얘기를 하자면 또 말이 길어질 것 같아 간단히 여기서 매듭지을게요. 그렇게 두 시간 남짓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큰언니와 전 논으로 내려갔습니다. 논으로 내려가는 길엔 냇가가 있습니다. 그 냇가에 남자 세 분이 열심히 발길질도 하며 손과 발을 움직여 반도 가까이에다 고기를 후치기를 여러 차례, 무언가를 양동이에 담기도 하면서 자리를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처제, 이거 봐봐. 이만 하면 매운탕 해 먹겠지?” “어디, 와~아, 그렇게 많이 잡았어요?” “글쎄, 오늘은 좀 있네. 좀 더 기다려봐.” “오늘 보니 큰 형부 고기 잡는 실력은 안 변하셨네요?” 저의 한마디에 큰 형부는 "어허" 하며 웃으셨고, 큰 언니 역시 형부 자랑을 늘어놓는 저에게 환하게 웃어 보입니다. 밭에서 채소를 따오는 어머니와 작은 언니도 저 멀리서 보입니다. 머리에 보따리 이고, 손에 양대(강남콩)채로 들고 말입니다. 해는 으스름 넘어갑니다. 고향집 마당에선 채소를 다듬는 언니들과 부엌에선 잡아 온 고기를 다듬는 형부들이 분주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여 먹고 싶은 것 해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모처럼 생기 있는 얼굴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계신 어머니의 걸음에도 힘이 있습니다. 조잘거리며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언니들도 보기 좋고, "솥 가져와라", "불 올려라" 등 작은 처제를 부르는 형부들의 굵직한 목소리도 다 듣기 좋은 소리입니다. 매운탕 한 솥을 끓였습니다. 큰 형부는 두 그릇을 드셨고, 작은 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도 모자라 한 그릇씩 가져간다고 합니다. 정말 일상에 바쁜 가족들이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에서 모처럼 휴일다운 휴일을 보내고 돌아온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요, 중요한 매운탕 끓이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오지 않았다고 저 그날 저녁, 남편한테 야단(?)맞았습니다. 사진으로나마 먹고 싶음을 달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그 속상한 마음이 더 했던 것 같아요. | ||||||||||||||||||
2004/06/29 오후 10:21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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