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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의 경계라는 것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하루하루의 삶이 주는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시골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자연과 벗하여 살면서 차분하게 가라앉혔던 속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옵니다.
거의 뿌리부분만 남기고 윗 부분은 모두 잘린 채 심겨져 있는 자주달개비를 보면서 내년에는 우리 집 화단에서도 자주달개비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새순이 쑥쑥 올라오더니 내년이 아니라 올해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뽑히고 잘린 아픔을 뒤로하고 옮겨진 땅에 뿌리를 내려 마침내 꽃을 피운 자주달개비를 보면서 생명의 강인함을 보게 됩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정말 자주국가인지, 독립국가인지, 민주국가인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분노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죽음 앞에서 조의를 표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진데 정치적인 당리당략으로 이용하고, 유산다툼이나 한다면 망자들을 또다시 죽이는 일이겠지요. 그런데 서슴없이 두 번 죽이는 일을 자행하고 있는 현실에 구역질이 납니다. 그래도, 뽑히고 잘렸으면서도 다시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운 달개비의 생명력에서 희망을 보아야 하겠지요?
마디마디 마다에 생명을 안고 있는 달개비.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생명력에 비하면 우리 사람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모르겠습니다.
"고인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기뻐하실까, 그것을 생각하고 사십시오. 그것이 고인의 아름다운 삶을 나누어 사는 것입니다." 달개비, 너의 여리고 가녀린 줄기는 마디마디마다 생명을 품고 있구나 그 끈질긴 생명 그 끈질긴 희망 우리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는지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할 때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 소리치듯 너의 몸에서 솟구쳐 오르는 그 하얀 실뿌리들을 우리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는지 <자작시-달개비>
작은 줄기에 그 자신의 본성을 모두 담고 있는 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그 잘려진 줄기가 대지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의 젊은이들을 더러운 전쟁에 국익을 운운하며 내몬다면 저는 포기하겠습니다. 그동안 그나마 희망을 가지고 지지했던 모든 것에 대해 사죄하는 심정으로 그만큼의 분노를 담아 파병을 찬성하고 지지하는 모든 것들과 싸울 것입니다. "Please, I want to live, I want to go to Korea." 이 절규를 들어주지 못한 부끄러움을 사죄하는 심정으로 모든 전쟁을 반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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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5 오전 11:02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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