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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꾹새 울림소리가 환청 되어 산마루를 돌아 나오고, 햇살이 길어지면 감자들의 통알 가지 몸부림도 끝이나 싹들이 누렇게 말라간다. 감자도 나이가 다해 주인을 찾아갈 시간이다. 하지(夏至)를 전후하여 감자를 캔다. 감자 싹을 뽑아내고 호미 손질을 하노라니 벌써부터 넉넉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레 온다. 감자 씨눈 하나를 묻으면 보통 다섯 알 정도를 되돌려 주는데 올해는 그게 아니다. 감자 뿌리에 호미를 넣는 순간 날이 툭툭 걸리고 들어가질 않아 흙 속을 조심스레 헤집어 보니, 감자 알들이 가득하게 모여 숨을 몰아쉬고 있다. 감자마다 주먹을 불끈, 두 눈을 크게 뜨고 보조개가 폭폭 파여 환하게 웃고 있다. 참, 때깔도 곱고 많이도 쏟아져 나온다. 농사를 짓다 이런 기쁨은 처음으로, 덩이마다 줄줄이 달려나오는 쏠쏠한 재미가 금방 밭고랑을 그득하게 메워온다.
잘 생기고 맛있는 감자를 키워내고 싶어 밭에다 많은 두엄을 냈다. 두엄은 밭이 제일 즐겨먹는 밥인데 특히 왕겨와 재를 좋아한다. 재 밥에다 분뇨(糞尿)를 훌훌 섞어 삭혀내 뿌렸다. 유난히 지렁이와 굼벵이가 많다 싶더니 밭 갈아 기름진 땅을 일궈 넉넉한 기쁨을 한아름 안겨 주고 있다. 일요일(4일), 문우들이 자원 봉사 겸 농사체험을 하겠다며 농장을 방문했다. 소설가도 있고 시인도 보인다. 그러잖아도 놉꾼이 없어 날 삯을 구하기 힘든 판인데 바쁜 일손을 거들어 주겠다니 예서 더 반가운 일은 없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호미를 하나씩 들려 텃밭으로 얼른 모셔들였다. 모두들 즐겁고 호기심 어린 표정들이다. 감자가 솟아 나올 때마다 웃음꽃이 일고 밭이랑이 덩실댄다. 밭도 감자도 행복한 날이다. 생전 처음 글쟁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눈이 둥그래진다. 동네 사람들도 웬 낯선 일꾼들을 얻어다 놓았나하고 어리둥절한 모습들이다. 호미질이 서툴러 감자가 찍혀 나올 때마다 깜짝 놀라 손놀림이 사뭇 조신해지고 진지해 보이기까지 하다. 다친 감자가 안쓰러워 만지고 또 쓰다듬는다. 너무 귀여워 남 주기는 아깝다며 손수 캔 것은 자신들이 몽땅 사가겠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 -권태응의 '감자꽃' 전문 요즘은 자주 감자 보기가 힘들다. 파란 눈에 자주 감자, 아린 듯하면서도 파삭하게 입맛을 당겨 주던 자주감자가 없다. 자주감자가 없으므로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 캐보나마나 하얀 감자다. 강판에다 왕 감자 갈아 대파와 청양 고추, 애호박, 부추를 숭숭 썰어 넣고 감자전을 부쳐냈다. 그리고 통감자를 껍질째 한 소쿠리를 쪄냈다. '이렇게 맛있는 감자는 처음'이라며 모두들 붕긋한 배를 둥둥 두들겨 댄다. 즐거운 순간이다. 감자가 맛있다니 농사꾼에게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다.
감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 하얀 꽃 핀 감자는 틀림없이 하얀 감자를 준다. 오늘따라 휘파람새 소리가 더욱 정겹고, 하지(夏至)에 실려온 하늬바람이 이리 시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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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7 오후 12:25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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