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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후, 4호선 미아삼거리역에 내려 숭인시장을 찾은 것이 오후 2시 30분경. 아직 시간이 빨라서일까? 초입의 가방, 액세서리, 신발가게는 물건만 수북할 뿐, 그야말로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요즘 장사가 어떠냐고 물으니, 말도 말란다. 실제로 사는 건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람들이 영 돈을 쓰려고 하지 않아 IMF 때보다도 더 못한 것 같다는 푸념이다.
손님도 없고 하여 저녁밥에 섞어 넣을 콩을 같이 까고 있단다. 눈앞의 반찬가게에는 다른 반찬보다 됫박에 수북하게 담아 놓은 소금이 이채롭다.
40대 중반이라는 반찬가게 아주머니는 벌써 10여 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했단다. 남편도 작은 사업을 하는데 요즘 불경기로 수입이 줄어 딸아이 등록금은 융자금을 빌려 냈다고 했다. 아이들 용돈에 등록금이 부담스러웠는데 마침 아들은 군대에 가 있어 한결 부담이 가볍다고 한다. 장사가 잘 안 되어 걱정이 되겠다고 위로를 하자, 그래도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이 있고 이렇게 가게에 나와 주변의 다른 상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수줍게 웃는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많아지면서 재래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줄어드는 추세지만, 그래도 재래시장에 와서 흥정도 하고 덤으로 조금씩 얹어주는 재래시장 특유의 정서에 맛들인 손님들은 여전히 재래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 인근에 사는 단골손님들이기 때문에 파는 물건에 대해서도 무척 신경을 쓴다는 것이었다. 손님들이 손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요, 친구요, 친척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손님들은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에 몇 번 갔다가 발길을 돌려 다시 이곳 가게를 찾는다며, 그런 손님들 때문에 살맛이 난다고 활짝 웃는다.
옛날, 5-60년대의 보릿고개를 생각하면 사실 지금의 불경기 타령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미군부대에서 나온 꿀꿀이죽을 먹던 이야기를 하자, 주인 여자는 그런 것을 어떻게 먹었느냐며 황당해 한다.
60대 중반의 주인 부부는 식탁의 빈 그릇들을 치우고 마침 족발을 사러온 손님을 맞느라 바쁘다. 이 집은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다고 하자, 방금 다녀간 손님들이 아직까지 온 손님의 전부라고 한다. 별 표정이 없어 말붙이기가 어렵던 주인 영감님의 말문을 트게 한 것은 족발을 사러온 택시운전을 한다는 손님이었다. 자신도 60대 초반이라는 그 택시기사는 입이 열리자마자 독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교통체계 개편 이후 길은 더 막히고 엉망이라며 시장과 서울시를 성토하더니, 급기야 정부와 대통령으로 이어진 불평은 육두문자까지 섞어가며 침을 튀기는 것이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민주화니 정치니 별 것 아닙니다. 그저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그의 결론이었다. 말을 마치고 일어서는 그에게, 흥분 가라앉히고 운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가 사라지자 주인이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저래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놓고 정부나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는 것도 다 민주화된 덕택이며, 정부나 대통령이 하는 일이 어디 한두 번 가볍게 생각하고 시행하겠느냐는 것이다. 내가 조금 불편하다고, 또는 아무리 국가나 공익에 좋은 정책이라도 내가 조금 손해를 볼 것 같으면 저렇게 욕하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디 국가 원수를 함부로 욕하고 저래서야 나라꼴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보거나 듣지 않는다고 해도 대통령에게는 국민으로서 거기에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은 육십대지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주인 영감의 말을 들으며 이 땅의 착하고 순박한 서민정서의 전형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알싸하게 저려온다. 어려운 경제 현실에서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재래시장의 소박한 서민들, 그러나 그들은 그 버거운 삶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작은 불씨 같은 희망을 일구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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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오후 2:12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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