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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끌꺼끌 보리밥, 풋고추에 된장이면 한끼 뚝딱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8. 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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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끌꺼끌 보리밥, 풋고추에 된장이면 한끼 뚝딱!
별미 보리밥집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승철(seung812) 기자   
▲ 논 가득 잘자란 벼는 예나 지금이나 농부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합니다. 그러나 벼수매와 쌀값 파동은 없을지 걱정도 됩니다.
ⓒ2004 이승철
오랜만에 친구들 몇이 어울려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휴가철인데도 다행히 집에 있던 친구들 네 명이 자리를 함께 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다가 요즘 무더운 날씨에 모두 입맛도 없을 텐데 우리 옛날 생각하며 꽁보리밥 한 번 먹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특별히 반대하는 친구가 없어 근처의 보리밥집을 찾았지요.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우선 된장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게 입맛을 돋웠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자 곧 반찬들이 차려지고 밥이 나오는 걸 보니 당연히 보리밥이 나올 줄 알았는데 하얀 쌀밥이 따로 다른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우리들이 먹은 보리밥집의 밥상입니다.
ⓒ2004 이승철
보리밥집에서 웬 쌀밥이냐고 물으니, 쌀밥을 따로 찾는 손님들이 많아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 일행 중에서도 한 친구가 자기는 쌀밥을 먹겠다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지긋지긋하게 많이 먹은 보리밥 다시는 먹고 싶지 않았지만, 혼자서만 딴소리 할 수 없어 그냥 따라 왔노라고 멋쩍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만 쌀밥을 먹고 우리들은 보리밥을 나물과 푸성귀, 그리고 끓인 된장과 고추장에 비벼 맛있게 포식을 했습니다. 요즘의 경기 침체상황 때문이었을까요? 화제는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풋풋한 이야기들, 개울과 웅덩이에서 멱 감고 물장구치던 이야기와 한 친구의 말처럼 지겹도록 먹어야 했던 꽁보리밥과 배고팠던 추억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이밥에 고깃국으로 배불리 먹는 것이 소망'이라는, 지금도 식량난으로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의 그 절절한 소망이, 그 시절에는 우리들의 소망이기도 했었습니다.

따가운 뙤약볕 아래 걸어서 십리 학교 길은 참 멀기도 했었지요. 허기와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어른들은 모두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고, 문단속을 할 필요도 없으니 사립문도 부엌문도 휑댕그렁하게 열려 있는 집은 고즈넉하기만 했습니다.

▲ 참깨밭입니다
ⓒ2004 이승철
책 보자기 벗어서 마루에 밀쳐 놓고 부엌으로 들어가면, 바람 잘 통하는 한쪽 벽에 붙여 대나무를 엮어 만든 살강 위에는, 대소쿠리에 쌀알은 보일 듯 말 듯, 거무틱틱한 보리밥이 모시나 삼베 보자기에 덮여 있었습니다.

사기 밥그릇에 한 그릇 퍼담아 들고 마당가의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올린 물을 부으면 시원한 물말이 보리밥이 됩니다. 양념 된장을 찾아 놓고 뒤뜰 고추밭에 가서 통통한 풋고추 몇 개를 따서 시원한 우물물에 씻어 소반 위에 올려 놓으면 어른들의 도움 없이도 훌륭한 밥상이 차려집니다.

비록 입 안에서 미끌미끌 잘 씹히지 않고 미끄러지는 보리밥이지만, 된장에 풋고추 푹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하고 상큼한 맛에 대충 씹어 뚝딱, 보리밥 한 그릇으로 어느새 시장기도 가시고 힘이 불끈 솟았습니다.

▲ 벌써 늙은 수세미와 꽃이 대조적입니다
ⓒ2004 이승철
아이들이 그렇게 산으로 들로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싸돌아다니며 여름을 보낼 때쯤, 음력으로 7월 7석이 가까워지면 어른들의 생활도 조금은 여유가 생깁니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봄 가뭄에 마른 논에 물을 대어 모내기를 하느라 애를 태우고 김매기와 밭농사로 한참 바쁘다가 이제 한숨을 돌릴 때면, 논 가득 자란 벼들은 배가 불룩하고 통통해집니다. 이른 벼들은 어느새 출수를 시작하고 농약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논두렁에 들면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튀어 오르기도 합니다. 아직은 보리나마 먹을 곡식이 있으니 별 걱정이 없고, 수북하게 자란 벼를 보며 저절로 배가 부르고 마음도 넉넉해지는 것입니다.

▲ 빨갛게 익은 고추는 따서 말리고 풋고추가 주렁주렁합니다
ⓒ2004 이승철
그 시절 시골에서는 바캉스나 피서란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었고, 동네 어른들은 마을 모정에 모여 앉아 누구네 농사가 잘 되었다느니, 누구네 아들은 공부를 잘한다느니, 이런 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내며 그 동안 고된 농사일로 지친 몸을 추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음력 7월 7석은 농부들에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여름 명절이었습니다. 더러는 기르던 개와 닭을 잡아 몸보신을 하였고, 마을에서 농사를 좀 많이 짓는 사람들과 유난히 벼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을 예상하는 농가들이 한 턱을 내는 날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 가지도 지금 한창입니다.
ⓒ2004 이승철
칠석날이 되면 마을의 어른들이 모정의 상석에 자리를 잡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여 들어 마당까지 가득해지면 그동안 세무서의 적발이 두려워 몰래몰래 담가둔 막걸리가 물동이에 담겨 등장합니다.

지금이야 맥주도 자유롭게 만들어 마시고 팔기도 하지만, 그때는 농가에서 담가 먹는 막걸리 농주(農酒)도 밀주라 하여 이만저만 단속이 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세무서에서 단속반이 떴다 하면 농가 이집 저집에서 농주 항아리를 들고 숨기느라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어쩌다가 적발이라도 되는 날에는 세무서원들을 붙잡고 통사정을 하는 눈물겨운 상항이 연출되기도 했었습니다. 벌금이 만만치 않았거든요.

그렇게 어렵게 담근 농주를 내 놓고 마을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만들어 내 놓는 농주인 만큼 대접을 받는 마을 사람들도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였고 그만큼 맛도 각별하였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다행인 것은 웬일인지 이날만은 세무서원들도 단속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조 이삭이 머리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2004 이승철
잔치래야 막걸리와 부침개 몇 조각씩, 안주로는 예의 풋고추와 된장이 전부였지만 모두들 만족해 하며 더불어 잔치를 즐겼습니다. 아이들까지도 막걸리 한 두 잔씩 얻어 마시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킬킬거리는 모습이 가관이었으니까요.

막걸리 잔이 돌고 흥이 오르면 또 어느새 마을 농악대가 등장합니다. 농악대는 술을 낸 농가의 논두렁을 돌며 풍년을 빌어 주고, 모정에서는 한소리 하는 사람들이 농부가와 육자배기 한 가락으로 하루의 잔치가 저물어 가는 것입니다.

식량이 부족하고 먹고 살기가 힘들던 시절이라 특히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는 설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이나 생일이 아니면 감히 쌀밥은 먹을 생각조차 못하였습니다.

▲ 밭두렁의 옥수수도 영글어 가고.
ⓒ2004 이승철
오죽하면 전해오는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어느 가난한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 왔답니다. 주인은 쌀독을 긁어 쌀밥 한 그릇을 지어 대접했습니다. 손님 밥상에 오른 쌀밥을 보고 아이는 입맛을 다셨습니다. 어머니는 혹시 손님에게 무례하게 할까 봐 아이에게 가만히 속삭였습니다. “손님이 밥을 남기면 주겠노라”고.

지금이야 남이 먹다가 남긴 밥을 누가 먹겠습니까. 그러나 그때는 조금씩 남기는 것이 상례였답니다. 그래서 기대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손님은 배가 고팠던지 조금 남은 밥그릇에 물을 붓는 것이었습니다. 물을 말아서 다 먹으려는 것이지요. 아이는 그것을 보고 그만 "물 말았잖아!"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입니다. 참 처절하게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가난하던 그 시절에 밥뿐만 아니라 반찬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에 소금에 절여 만든 젓갈이면 괜찮은 편이었고, 대부분 그야말로 채소가 전부였습니다. 지금은 건강 다이어트 식품으로 채소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단백질과 지방질 부족에 영양실조 상태인 그때로서는 고기나 생선의 섭취가 절실하던 시절이었는데 말입니다.

▲ 수수는 아직 하늘 아래 있습니다.
ⓒ2004 이승철
그 시절 집에서나 들에서 가장 손쉬운 반찬이며 안주거리가 된장에 풋고추였습니다. 밥반찬으로도 막걸리 안주로도 나무랄 데가 없을 뿐 아니라, 또 손쉽게 구하여 번거로운 조리 과정 없이 즉시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대개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지만, 풋고추를 찍어 먹기는 아무래도 된장이 제격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잖아도 매운 고추를 또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야 순하고 구수한 된장에 찍어 먹는 것이 훨씬 맛있고 좋습니다. 전 물론 된장에 찍어 먹지요, 또 풋고추와 된장에는 역시 꽁보리밥이래야 제 맛이 납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쌀밥을 고집하던 친구도 제 밥그릇의 꽁보리 비빔밥을 맛보았습니다. 한 숟가락 듬뿍 떠다가 우물우물 씹으며 "어, 제법 맛있는 걸"하면서 몇 숟갈 더 뜨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꽁보리밥이라고는 하지만 그 시절의 꽁보리밥하고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쌀이 제법 섞였을 뿐만 아니라 또 고기까지 곁들였으니 그 시절의 꽁보리밥에 비하면 가히 호화판인 셈입니다.

▲ 넉넉한 미소로 친절한 보리밥집 주인 아주머니
ⓒ2004 이승철
넉넉한 미소와 친절로 호감을 주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손님들의 나이가 젊은 쪽이 많습니까? 아니면 나이든 쪽이 많습니까?"하고 물으니 주로 젊은 쪽이랍니다. 그래서 제가 가르쳐 주었지요. 쌀밥을 고집하던 친구를 가리키며 나이 먹은 사람들은 옛날에 지긋지긋하게 먹은 보리밥이라 질려서 안 먹고, 젊은 사람들은 소화도 잘 되고 다이어트에도 좋고, 그런 지겨운 기억도 없으니 즐겨 찾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더니 젊은 손님들이 긍정을 하더군요.

저도 그 시절에 보리밥 참 많이 먹었지만 지금도 좋아합니다. 그 시절의 지겹던 기억은 지금은 오히려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답니다. 어떻습니까? 이 무더위에 입맛 잃은 독자님들, 오늘 점심은 풋고추와 된장을 곁들인 꽁보리밥을 드시지 않겠습니까.
이승철기자의 홈페이지 "詩가있는오두막집" http://poemessay.com.ne.kr 에 가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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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5 오후 3:57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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