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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다가 요즘 무더운 날씨에 모두 입맛도 없을 텐데 우리 옛날 생각하며 꽁보리밥 한 번 먹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특별히 반대하는 친구가 없어 근처의 보리밥집을 찾았지요.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우선 된장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게 입맛을 돋웠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자 곧 반찬들이 차려지고 밥이 나오는 걸 보니 당연히 보리밥이 나올 줄 알았는데 하얀 쌀밥이 따로 다른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친구만 쌀밥을 먹고 우리들은 보리밥을 나물과 푸성귀, 그리고 끓인 된장과 고추장에 비벼 맛있게 포식을 했습니다. 요즘의 경기 침체상황 때문이었을까요? 화제는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풋풋한 이야기들, 개울과 웅덩이에서 멱 감고 물장구치던 이야기와 한 친구의 말처럼 지겹도록 먹어야 했던 꽁보리밥과 배고팠던 추억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이밥에 고깃국으로 배불리 먹는 것이 소망'이라는, 지금도 식량난으로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의 그 절절한 소망이, 그 시절에는 우리들의 소망이기도 했었습니다. 따가운 뙤약볕 아래 걸어서 십리 학교 길은 참 멀기도 했었지요. 허기와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어른들은 모두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고, 문단속을 할 필요도 없으니 사립문도 부엌문도 휑댕그렁하게 열려 있는 집은 고즈넉하기만 했습니다.
사기 밥그릇에 한 그릇 퍼담아 들고 마당가의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올린 물을 부으면 시원한 물말이 보리밥이 됩니다. 양념 된장을 찾아 놓고 뒤뜰 고추밭에 가서 통통한 풋고추 몇 개를 따서 시원한 우물물에 씻어 소반 위에 올려 놓으면 어른들의 도움 없이도 훌륭한 밥상이 차려집니다. 비록 입 안에서 미끌미끌 잘 씹히지 않고 미끄러지는 보리밥이지만, 된장에 풋고추 푹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하고 상큼한 맛에 대충 씹어 뚝딱, 보리밥 한 그릇으로 어느새 시장기도 가시고 힘이 불끈 솟았습니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봄 가뭄에 마른 논에 물을 대어 모내기를 하느라 애를 태우고 김매기와 밭농사로 한참 바쁘다가 이제 한숨을 돌릴 때면, 논 가득 자란 벼들은 배가 불룩하고 통통해집니다. 이른 벼들은 어느새 출수를 시작하고 농약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논두렁에 들면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튀어 오르기도 합니다. 아직은 보리나마 먹을 곡식이 있으니 별 걱정이 없고, 수북하게 자란 벼를 보며 저절로 배가 부르고 마음도 넉넉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음력 7월 7석은 농부들에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여름 명절이었습니다. 더러는 기르던 개와 닭을 잡아 몸보신을 하였고, 마을에서 농사를 좀 많이 짓는 사람들과 유난히 벼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을 예상하는 농가들이 한 턱을 내는 날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이야 맥주도 자유롭게 만들어 마시고 팔기도 하지만, 그때는 농가에서 담가 먹는 막걸리 농주(農酒)도 밀주라 하여 이만저만 단속이 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세무서에서 단속반이 떴다 하면 농가 이집 저집에서 농주 항아리를 들고 숨기느라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어쩌다가 적발이라도 되는 날에는 세무서원들을 붙잡고 통사정을 하는 눈물겨운 상항이 연출되기도 했었습니다. 벌금이 만만치 않았거든요. 그렇게 어렵게 담근 농주를 내 놓고 마을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만들어 내 놓는 농주인 만큼 대접을 받는 마을 사람들도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였고 그만큼 맛도 각별하였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다행인 것은 웬일인지 이날만은 세무서원들도 단속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막걸리 잔이 돌고 흥이 오르면 또 어느새 마을 농악대가 등장합니다. 농악대는 술을 낸 농가의 논두렁을 돌며 풍년을 빌어 주고, 모정에서는 한소리 하는 사람들이 농부가와 육자배기 한 가락으로 하루의 잔치가 저물어 가는 것입니다. 식량이 부족하고 먹고 살기가 힘들던 시절이라 특히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는 설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이나 생일이 아니면 감히 쌀밥은 먹을 생각조차 못하였습니다.
지금이야 남이 먹다가 남긴 밥을 누가 먹겠습니까. 그러나 그때는 조금씩 남기는 것이 상례였답니다. 그래서 기대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손님은 배가 고팠던지 조금 남은 밥그릇에 물을 붓는 것이었습니다. 물을 말아서 다 먹으려는 것이지요. 아이는 그것을 보고 그만 "물 말았잖아!"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입니다. 참 처절하게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가난하던 그 시절에 밥뿐만 아니라 반찬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에 소금에 절여 만든 젓갈이면 괜찮은 편이었고, 대부분 그야말로 채소가 전부였습니다. 지금은 건강 다이어트 식품으로 채소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단백질과 지방질 부족에 영양실조 상태인 그때로서는 고기나 생선의 섭취가 절실하던 시절이었는데 말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대개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지만, 풋고추를 찍어 먹기는 아무래도 된장이 제격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잖아도 매운 고추를 또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야 순하고 구수한 된장에 찍어 먹는 것이 훨씬 맛있고 좋습니다. 전 물론 된장에 찍어 먹지요, 또 풋고추와 된장에는 역시 꽁보리밥이래야 제 맛이 납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쌀밥을 고집하던 친구도 제 밥그릇의 꽁보리 비빔밥을 맛보았습니다. 한 숟가락 듬뿍 떠다가 우물우물 씹으며 "어, 제법 맛있는 걸"하면서 몇 숟갈 더 뜨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꽁보리밥이라고는 하지만 그 시절의 꽁보리밥하고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쌀이 제법 섞였을 뿐만 아니라 또 고기까지 곁들였으니 그 시절의 꽁보리밥에 비하면 가히 호화판인 셈입니다.
저도 그 시절에 보리밥 참 많이 먹었지만 지금도 좋아합니다. 그 시절의 지겹던 기억은 지금은 오히려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답니다. 어떻습니까? 이 무더위에 입맛 잃은 독자님들, 오늘 점심은 풋고추와 된장을 곁들인 꽁보리밥을 드시지 않겠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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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5 오후 3:57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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