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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569배를 남겼습니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8. 6.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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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569배를 남겼습니다
[포토에세이]옥수수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민수(dach) 기자   
ⓒ2004 김민수
새벽예배를 마치고 가뭄으로 먼지가 풀풀 날리는 텃밭으로 나가 풀을 뽑으며 비를 좀 내려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가뭄의 피해가 얼마나 극심한지 어지간해서는 푸른빛을 잃지 않는 잡초들도 아직 동터오기 전인데도 시름시름 시들어있는 형편이니 밭에 심은 채소라고 성할리 없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지만 그것 가지고는 채소들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갈아놓은 밭에도 씨앗을 뿌리지 못해 속타하는 농민들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언제 비가 올지 모를 일이니 비가 오면 곧바로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아야 겠죠.

조카들이 서울에서 놀러왔습니다. 어제는 빨간 토마토를 따서는 서로 더 먹겠다고 하는데 '서울 촌놈들이 진짜 토마토 맛을 보았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옥수수를 쪄줄 생각으로 올해 처음으로 옥수수를 거두었습니다. 작년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작고 못 생긴 것들을 많이 거두었는데 올해는 가뭄으로 오히려 옥수수는 잘 익은 것 같았습니다. 잘 생겼든 못 생겼든 그 맛이야 어디로 가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실한 옥수수를 거두니 기분이 한결 좋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더 좋은 이유는 지난 해 심었던 것 중에서 실한 것을 남겨두었다 씨앗으로 심은 것이라 더 의미가 있습니다.

ⓒ2004 김민수
옥수수를 잘 까서 잔디밭에 올려놓고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옥수수를 거두면 언젠가는 운치 있게 걸어 보리라 했던 생각대로 폐가에서 주워온 문살에 옥수수를 모아서 걸어봅니다. 제법 멋진 풍경이 연출됩니다.

옥수수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따, 참 맛나게 드시면 되지 꽤 귀찮게 하시네."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시간도 널널하니 가장 잘 익은 것을 골라서 옥수수알이 몇 개인지 세어봅니다. 자그마치 569알이나 됩니다. 하나를 심어서 569배를 남겼다는 생각을 하니 세상에 이런 장사가 없습니다. 하나만 열리는 것이 아니니 569배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남겼습니다.

"우와, 569배나 남겼어."

아내는 마루에서 이 말을 듣고는 "누가 로또에 당첨이라도 되었어?"합니다.
"로또는 무슨, 내가 569배를 남겼다니까?"

옥수수를 한 바구니 들고 들어오는 나를 보면서 아내가 웃습니다. 가끔씩 엉뚱한 남편의 행동을 밉지 않게 바라보는 아내가 사랑스럽습니다.

지리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렇게 실한 열매를 맺어준 옥수수가 고맙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이 주는 선물들은 참으로 각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옥수수뿐만 아니라 산야에 절로 피고 지는 모든 것들이 주는 삶의 소리들을 보고들을 때면 '시골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내가 눈을 뜨게 되었고, 귀가 뚫리게 되었구나' 라며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기적이라는 것은 그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모든 기적의 조건들을 갖추어져 있으니 말입니다. 소중한 것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겨 쫓기는 듯한 삶을 살아가다 보니 기적도 경험하지 못하고, 소중한 것도 잊고 살아간 것은 아닌지요.

어떤 일을 할 때에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를 심어 의의 열매를 맺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되겠지요.

이라크파병으로 나라가 시끌벅적합니다.

자이툰 부대의 선발대가 파병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것이 과연 무엇을 심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성서의 말씀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 일로 인해서 얻어지는 국익이라는 허상보다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동시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져 마음이 심란합니다.

ⓒ2004 김민수
압력밥솥에서 김 올라오는 소리가 '지지지직!' 들려오는 것을 보니 이제 적당히 뜸만 들이면 따끈따끈한 옥수수가 상에 올라올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맛나게 옥수수를 먹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아서 하루의 출발이 산뜻합니다.

옥수수.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옥수수 한 알을 심어 569배를 남긴 것에 감탄하며, 옥수수를 맛나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해 하는 삶은 추악한 전쟁에 젊은이들을 내모는 이들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 아닐까요?

어떤 씨앗도 잘못 심었다 싶어 바로 파내면 싹이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씨앗도 살아있는 씨눈을 간직하고만 있으면 반드시 새순을 내고 열매를 맺는답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를 넘어서 569배까지도 말입니다.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2004/08/05 오전 8:53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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