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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퇴직한 후에 더 빨리 늙는 이유를 아세요? 퇴직하고부터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 그렇답니다." 정만식(66)씨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활기가 넘친다. 지난해 8월 정년퇴직을 한 후 드디어 자신의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가 찾은 새로운 일은 한국산업인력공단 충남직업전문학교의 카 일렉트로닉스과에 입학해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는 것. "스트레스가 과하면 병이 되지만 적당하면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제가 요즘 그것을 느끼고 있어요. 퇴직 후에도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으니 오히려 안 늙는 것 같습니다." 최근 매일같이 정비기술과 씨름하는 그는 목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으로 재직했던 이력 때문인지 언론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지난 57년부터 교단에 선 그는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지난 84년부터 목원대 교수로 재직해왔다. 평생 책밖에는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 전직 대학교수와 자동차 정비는 언뜻 보기에도 잘 안 맞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우려를 날려버렸다. 자동차정비기능사 필기시험을 가뿐히 통과하고 현재 실기시험을 앞두고 있다. 방학인데도 부지런히 학교에 나가는 이유는 실기시험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이론은 쉬운데 실기가 어렵다고 걱정하는 그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산업기사 자격증 획득이다.
나이를 잊은 그의 생활이 화제가 돼 얼마 전에는 모 제약회사의 관절염 치료제 광고를 찍었다. 그는 광고 출연료를 현금이 아닌 퇴행성 질병 치료약으로 준다면 응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제약회사에서 받은 퇴행성 질병 치료약은 생활이 어려운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할 계획. "제가 그 돈을 받아서 뭐하겠습니까. 아들 딸 대학원까지 마쳤으니 지금부터 버는 돈은 남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하고 싶던 자동차 정비기술 공부도 하고 이제 근심 걱정 없잖아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바로 저라니까요." 그는 10여 년 전부터 지칠 줄 모르는 사회봉사 활동을 펼쳐오기도 했다.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인근 산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골목 구석구석에 버려진 옷가지와 물건들을 주워온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이 내버린 물품들을 깨끗이 씻어놓고 수리 해놓고는 틈이 날 때마다 사회복지시설에 전달해 왔다.
주워온 옷가지들을 자신은 입지 않고 남에게 주기만 하면 그것은 죄악이고 안주는만 못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어머니의 지론이 남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형편이 어려운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옷가지를 나누고 음식을 나눴습니다. 내가 못 먹을 때 같이 먹고 살아야지 나 잘 먹고 남는 것을 주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요. 그때는 그게 불만이었지만 이제는 저도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그는 올해 자동차정비자격증을 획득하고 1년여 실무 경력을 쌓은 후 개발도상국으로 봉사활동을 떠날 계획이다. 원래 나이 제한이 62세였지만 그 때문에 나이 제한을 없앴다고 한다. 희망지가 남미지역인지라 스페인어도 공부할 의욕에 넘쳐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근무하면 한 달 월급이 40만원이랍니다. 그 돈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고, 저는 오카리나를 배워서 오카리나 하나 들고 한국에 돌아올 겁니다." 모든 욕심을 버린 그는 너무도 홀가분하다. "좋은 일을 하면 또 다른 좋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이 세상에 자신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냐"고 질문을 던지는 정만식씨. 이것이 바로 퇴직 후에도 청춘으로 살아가는 그의 방법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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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1 오전 11:00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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