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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 탓일까?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넓은 빈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전에는 점포들이 있던 자리가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을씨년스럽다. 토요일 오후 시간이면 손님들로 북적거려야 할 시장 안이 너무도 조용하다. 한 쪽 구석의 옷가게 아주머니가 웬 손님인가 싶어 말을 걸어온다. 장사가 어떠냐고 물으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신통치 않단다.
가게마다 수북하게 쌓인 신발이며 가방, 옷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건만 사는 사람은 많지 않고 상인들의 애를 태우며,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만 풍요롭게 한다. 한 개에 만 원씩은 했을 법한 여름용 기능성 T셔츠를 세 개에 만 원씩 팔고 있지만, 좀처럼 돈주머니를 열지 않는 시민들의 불경기증후군이 상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는 것이다. 길거리나 재래시장의 예외 없는 풍경이 되어버린 노인 노점상은 이곳도 마찬가지다. 정갈하게 다듬어 놓은 고구마 잎줄기와 깻잎, 나물 몇 가지를 파는 할머니 둘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나이가 80세가 넘어 보여 물어보니 70세란다. 어렵게 살아온 삶의 무게가 깊게 패인 주름살을 메우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역시 작은 곡물 노점상을 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곡식 그릇마다 국산, 중국산을 표시하는 푯말을 빠짐없이 세워놓았다. 유명매장이나 식품회사에서도 흔히 중국산 곡물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폭리를 취하는 마당에 노점상 아주머니의 양심적인 상술이 신기하여 사진을 찍으려 하자, "어디서 단속을 나왔느냐"고 물으면서도 태연한 표정이다. 속이지 않았으니 놀라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단골손님들이 많아서 이 골목시장에서 알아주는 장사꾼이라고 바로 길 건너편의 아동복 가게 아주머니가 귀띔해 준다. 원산지 표시도 확실하게 해놓고 양심적으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단골손님들의 신뢰를 받기 때문이리라.
이야기 중에 지나가던 아주머니 두 사람이 "집사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기독교인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먹고살기 바빠서 일요일에만 겨우 교회를 나간다며 신앙생활이 말이 아니라고 겸손해 한다.
아동복은 경기가 어떠냐고 물으니 손님이 줄기는 했지만 다른 업종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아주머니는 이제 곧 개학을 하면 매출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희망적인 전망을 하고 있었다. 지난 IMF 때 혼쭐이 난 시민들이 지레 겁을 먹고 돈주머니를 풀지 않아 시장경기가 어렵지만, 어린 자식들에게만은 인색하지 못한 것이 어머니들이라는 것이다. 40대 중반의 자식을 둔 어머니이기도 한 아동복 가게 아주머니는 역시 어머니들의 마음을 훤하게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 어제는 왜 안나오셨어요? 여기 주문 쪽지 받아가세요?" "네, 누가 또 주문했습니까?" "어제 어떤 아저씨가 된장 사러 나왔다가 아주머니가 안 나와서 허탕치고 가면서 전해달라고 하던데요, 꼭 전화 해달라고…. 지금 전화해 보세요." 토종된장과 쌈장을 실은 작은 손수레를 끌고 나온 아주머니는 이제 막 시장에 나오는 참인 모양이었다. 근처 가게주인에게서 쪽지를 받아 든 아주머니가 바로 전화해 "만 원어치요? 저녁에 들어갈 때 갖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금방 몇 명의 주부들이 모여든다. 손가락으로 찍어 된장 맛을 보며 "역시 참 맛있다"고들 한다. 아주머니가 직접 담가서 파느냐고 물으니 양평의 아는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콩으로 만든 된장을 사다 판다고 했다. "장사를 잘 하시는 것 같다"고 말하자, "단골손님이 많아서 장사가 잘 된다"고 한다. "장맛도 좋고 우리 콩으로 만들어서 품질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몇 년째 단골"이라는 주부도 있었다.
변하는 입맛처럼 단독주택이 줄어들고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 재래시장은 자꾸만 더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 몇몇 상인들의 분석이었다. 그러나 초가을의 재래시장에서 만난 정직하고 밝은 모습으로 장사하는 사람들, 그들의 소박하고 정다운 숨결이 재래시장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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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3 오후 1:30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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