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가난해도 밝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8. 26. 01:24

본문

728x90
가난해도 밝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
서울의 재래시장을 찾아서 6. 노원구 상계중앙시장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승철(seung812) 기자   
불경기 탓일까?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넓은 빈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전에는 점포들이 있던 자리가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을씨년스럽다. 토요일 오후 시간이면 손님들로 북적거려야 할 시장 안이 너무도 조용하다. 한 쪽 구석의 옷가게 아주머니가 웬 손님인가 싶어 말을 걸어온다. 장사가 어떠냐고 물으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신통치 않단다.

▲ 국산과 중국산을 엄격하게 구별하여 파는 작은 곡물 노점상
ⓒ2004 이승철
야채와 식료품 매장은 그래도 빈 자리 없이 드문드문 손님들이 찾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길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도 많고 가게마다 손님들이 더러 보인다. 거리시장은 상계중앙시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도로 주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골목시장이다.

가게마다 수북하게 쌓인 신발이며 가방, 옷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건만 사는 사람은 많지 않고 상인들의 애를 태우며,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만 풍요롭게 한다. 한 개에 만 원씩은 했을 법한 여름용 기능성 T셔츠를 세 개에 만 원씩 팔고 있지만, 좀처럼 돈주머니를 열지 않는 시민들의 불경기증후군이 상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는 것이다.

길거리나 재래시장의 예외 없는 풍경이 되어버린 노인 노점상은 이곳도 마찬가지다. 정갈하게 다듬어 놓은 고구마 잎줄기와 깻잎, 나물 몇 가지를 파는 할머니 둘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나이가 80세가 넘어 보여 물어보니 70세란다. 어렵게 살아온 삶의 무게가 깊게 패인 주름살을 메우고 있었다.

▲ 빈 점포가 많아 텅 빈 시장 안이 을씨년스럽습니다.
ⓒ2004 이승철
20여 년 전에 홀로 되어 아들 딸 여럿을 출가시키고 지금은 외로운 삶을 홀로 살아간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소외계층으로 밀려난 노인들의 현주소이자 시급한 노인복지문제를 말없이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역시 작은 곡물 노점상을 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곡식 그릇마다 국산, 중국산을 표시하는 푯말을 빠짐없이 세워놓았다. 유명매장이나 식품회사에서도 흔히 중국산 곡물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폭리를 취하는 마당에 노점상 아주머니의 양심적인 상술이 신기하여 사진을 찍으려 하자, "어디서 단속을 나왔느냐"고 물으면서도 태연한 표정이다. 속이지 않았으니 놀라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 상계중앙시장의 진입도로에 형성된 골목시장 풍경
ⓒ2004 이승철
노점상에서 이렇게 원산지 표시를 확실하게 해놓은 곳은 처음이어서 신문에 보도하려고 한다 하니, 약간 흐트러진 그릇들을 정돈하여 준다. 장사도 잘 된다며 환하게 웃는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노점상 아주머니는 나이가 67세라고 했다. 힘든 노점상일지언정 정직하게 장사를 하고 밝고 환한 표정으로 사는 삶이라 늙는 것도 더딘 모양이다.

단골손님들이 많아서 이 골목시장에서 알아주는 장사꾼이라고 바로 길 건너편의 아동복 가게 아주머니가 귀띔해 준다. 원산지 표시도 확실하게 해놓고 양심적으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단골손님들의 신뢰를 받기 때문이리라.

▲ 아동복 가게는 그래도 다른 업종보다 불경기를 덜 탄다고 합니다.
ⓒ2004 이승철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고 말하자, 같은 또래에 벌써 치매에 걸린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근처에 사는 69세의 한 할머니가 치매환자인데 영감님이 뒤치다꺼리에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몸은 아직 건강한 편이어서 기회만 있으면 밖으로 뛰쳐나가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지키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야기 중에 지나가던 아주머니 두 사람이 "집사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기독교인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먹고살기 바빠서 일요일에만 겨우 교회를 나간다며 신앙생활이 말이 아니라고 겸손해 한다.

▲ 우리 콩으로 만든 토종 된장과 쌈장을 파는 이 노점상도 맛과 품질이 좋아 단골손님이 많다고 합니다.
ⓒ2004 이승철
치매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암이나 중풍보다도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병이 치매"라며 "치매는 걸리지 말아야 할 텐데…" 하고 지레 걱정을 한다. "이렇게 건강하게 사는 분이 무슨 치매 걱정을 하느냐"고 아동복 가게 아주머니가 거든다. 아동복 가게 아주머니는 "치매는 머리를 쓰지 않으면 걸리는 병이라는데, 장사하는 틈틈이 좋은 성경구절을 외우면 절대 치매 걸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아동복은 경기가 어떠냐고 물으니 손님이 줄기는 했지만 다른 업종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아주머니는 이제 곧 개학을 하면 매출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희망적인 전망을 하고 있었다. 지난 IMF 때 혼쭐이 난 시민들이 지레 겁을 먹고 돈주머니를 풀지 않아 시장경기가 어렵지만, 어린 자식들에게만은 인색하지 못한 것이 어머니들이라는 것이다. 40대 중반의 자식을 둔 어머니이기도 한 아동복 가게 아주머니는 역시 어머니들의 마음을 훤하게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 길거리나 재래시장의 빠지지 않는 풍경, 노인 노점상은 우리 노인복지의 현실입니다
ⓒ2004 이승철
며칠 전까지의 무더위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선선해진 날씨에 성큼 다가선 가을은 재래시장의 과일 가게도 가을색으로 바꿔 놓았다. 우리 가을 과일의 왕자격인 사과가 좌판의 중앙을 차지하고 여름 과일들이 한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아주머니 어제는 왜 안나오셨어요? 여기 주문 쪽지 받아가세요?"
"네, 누가 또 주문했습니까?"
"어제 어떤 아저씨가 된장 사러 나왔다가 아주머니가 안 나와서 허탕치고 가면서 전해달라고 하던데요, 꼭 전화 해달라고…. 지금 전화해 보세요."

토종된장과 쌈장을 실은 작은 손수레를 끌고 나온 아주머니는 이제 막 시장에 나오는 참인 모양이었다. 근처 가게주인에게서 쪽지를 받아 든 아주머니가 바로 전화해 "만 원어치요? 저녁에 들어갈 때 갖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금방 몇 명의 주부들이 모여든다. 손가락으로 찍어 된장 맛을 보며 "역시 참 맛있다"고들 한다.

아주머니가 직접 담가서 파느냐고 물으니 양평의 아는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콩으로 만든 된장을 사다 판다고 했다. "장사를 잘 하시는 것 같다"고 말하자, "단골손님이 많아서 장사가 잘 된다"고 한다. "장맛도 좋고 우리 콩으로 만들어서 품질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몇 년째 단골"이라는 주부도 있었다.

▲ 가게 앞의 예쁜 새와 금붕어가 어린이의 시선을 붙잡고 있습니다.
ⓒ2004 이승철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주부는 남편이 된장찌개와 된장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사간다며 여기서 사다가 끓여주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주로 나이가 지긋한 주부들이라고 한다. "요즘은 남자들도 가끔씩 찾는다"며 싱긋 웃는 모습이 된장처럼 구수해 보인다.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된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서울의 젊은 주부들은 집에서 직접 된장을 담그지 않는 것 같다"며 그래서인지 된장이 먹고 싶으면 나이든 어른들이 직접 된장을 사러 나오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변하는 입맛처럼 단독주택이 줄어들고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 재래시장은 자꾸만 더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 몇몇 상인들의 분석이었다. 그러나 초가을의 재래시장에서 만난 정직하고 밝은 모습으로 장사하는 사람들, 그들의 소박하고 정다운 숨결이 재래시장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 가을 과일의 왕자격인 사과, 과일 가게도 가을색으로 바뀌었습니다.
ⓒ2004 이승철
이승철기자의 홈페이지 "詩가있는오두막집' http://poemessay.com.ne.kr 에 가시면
다른 글과 詩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4/08/23 오후 1:30
ⓒ 2004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