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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아서 뿌렸던 당근 씨들이 거반 타 죽었는데 이젠 비가 너무 와서 흙이 패여 그나마 나온 싹들도 쓸모 없게 만들어버렸고, 땅이 어느 정도 고슬고슬해야 감자를 심는데 그 흙먼지만 날리던 밭에 물이 들어 질척하니 파종을 할 수도 없습니다. 땅 속에서 여물어가던 땅콩도 빗물에 드러나 버렸습니다. 시절을 좇아 비가 내려주어도 힘든 농촌의 현실인데, 야속하게도 비껴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게 비를 기다리더니만 벌써 비라면 지긋지긋하다고 하냐며 간사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루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벽녘에는 이불싸움을 하는 요즘입니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가 싶었는데 계절이 변하고, 사람도 변합니다. 나의 작은 텃밭도 태풍에 쓰러진 가지며 고추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랜 가뭄에 억세진 열무와 달랑무는 이파리까지 억센 데다가 매운 기운이 강합니다. 연한 것들을 다듬어 김치를 담갔는데도 아이들이 매워서 먹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지리한 비에 곤충들이 찾아와 주지 않은 탓인지 호박은 열리지 않고 호박순만 퍼지니 호박순을 잘라 상에 내어놓으면서도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고 간혹 그들이 그물을 끌어올리며 내는 소리 정도밖에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배가 포구로 돌아갈 즈음 두문포구로 가면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 석자를 알고, 안면을 익힌다고 그들을 아는 것이 아니니 그저 익명의 사람으로 만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들도 간혹 나를 보았을 것입니다. 저녁 무렵에야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냥 지나칠 수 있겠지만 간혹 새벽에 그들의 그물 올리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기도 하고, 일출이 아름다운 날은 갯바위 여기저기 오가며 사진을 찍기도 하는 모습을 보았을 터이니 혹시 '저 사람이 누구야'라고 아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렇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누군가 바라보고 있구나'하는 느낌 정도로 만나는 것도 좋은 만남인 듯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안다'고 합니다. 그저 이름 석자 아는 것뿐인데도 안다고 합니다. 그게 전부가 아닌데 마치 전부인 것처럼 말해버립니다.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죠.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무와 꽃과 곤충들도 그 이름 아는 것만으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알고, 사진 몇 장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들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착각하고 있다면 정말 모르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이름을 몰라도 그저 자연을 바라보며 '예쁘다', '좋다', '고맙다'는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그들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골에서 생활하다 보면 가족 외의 사람들과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침묵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침묵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그저 바라봄으로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들꽃들과 나무들을 위시한 온갖 자연이 그렇고, 익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그 느낌들이 바로 대화입니다. 공허한 말이 가득한 시대에서,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바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것조차도 말을 뱉어내는 것이겠지요.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질 때가 있습니다.그 때에 들로 산으로 바다로 나가 기웃거리며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하늘도 보고, 곤충도 봅니다. 그리고 익명의 사람들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하나 둘 사진으로 남기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어려운 책을 한 권 들고 나무그늘로 찾아 들어가 나무에 기대어 책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이 말을 걸어옵니다.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만큼 스스럼없이 다가옵니다. 그렇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물론 오늘은 익명의 '새벽바다를 열어 가는 사람들'과 먼 발치에서 징한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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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4 오후 1:19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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