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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매는 지금 이별 중이다. 상업 고등학교 3학년인 동생이 취업을 해서 회사 기숙사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떨어져 지낸 지 어느덧 1개월. 자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어색하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부모님 보호 없이 청소년가장으로 함께 살아온 지 12년. 자매는 지금까지 단 둘이 부모님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지금 서로의 빈자리가 주는 허전함은 크기만 하다. 21살 희연이(가명)와 동생 20살 수현이(가명) 자매. 벌써 졸업했어야 할 나이지만 현재 이들은 똑같이 고등학교 3학년이다. 부모님이 없고 가난한 자매에게 학업의 기회는 뒤늦게 찾아왔다. 치매 증상이 있던 할머니는 희연이와 수현이가 취학연령이 되어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지 않았다. 대신 가난한 집안을 위해 농사일을 시켰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두 자매
20살이 넘은 나이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게 불편하지는 않을까? 같은 반 아이들보다 2살이나 많은 희연이는 "언니 보다 친구 대접을 받는 게 좋다"고 말한다. "솔직히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해마다 새학기가 되면 친구들이 많이 어색해 하더라구요. 언니라 불러야 하나 아니면 그냥 친구로 지내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을 하나봐요. 전 언니보다 친구가 좋아요. 그래서 나이 그런 거 따지지 않고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언니 희연이는 잘 웃는 정도가 아니라 웃음이 얼굴에 붙어 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굳이 비유하자면 희연이의 얼굴은 익살스런 안동 하회탈을 닮았다. 항상 웃고 다녀서 주변 친구들로부터 "뭐가 그렇게 좋으냐?", "넌 고민도 없냐?"라는 말을 자주 들을 정도다. 그런 희연이의 생활 신조는 "힘들면 힘들수록 웃어야 한다"는 것. "예전엔 억지로 웃었어요. 부모님 없는 아이들이라고 차별을 받을 때도 눈물을 꾹 참고 웃었거든요. 그렇게 오랫동안 살다보니 이렇게 사소한 것에도 잘 웃게 됐어요. 나쁜 일이 오히려 약이 된 것이지요. 아무래도 웃는 게 좋잖아요(웃음)." 살가운 미소가 얼굴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은 동생 수현이도 마찬가지다. 자매가 나란히 앉아서 웃고 있으면 자연스레 따라 웃을 수밖에 없다. 두 자매의 미소에는 세상을 달관한 사람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푸근함과 아늑함보다는 천진스러운 순박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자매가 살아온 삶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 천진스러운 얼굴이 의아스럽기만 하다. 엄마의 얼굴을 모르는 건 언니나 동생이나 마찬가지다. 자매의 어머니는 동생 수현이를 출산하다가 세상을 등졌기 때문. 아버지는 전국을 떠돌며 공사장에서 건설 일을 하셨다. 그래서 자매의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었다. 희연이는 아버지를 처음 봤던 때를 7살의 어느 날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셨어요. 주변 어른들이 아버지라고 소개 시켜주었는데, 솔직히 처음 봤으니 많이 어색했죠. 그냥 '아, 저 분이 내 아버지구나'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 아무런 느낌이 없었어요"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자매와 정을 쌓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1년이 채 되지도 않아 뺑소니 교통 사고를 당해 뇌를 크게 다쳤다.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채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 "우리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남들처럼 부모님이 애틋하거나 그리움의 대상으로 생각되지가 않아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그게 당연하죠.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에요" 세상의 편견과 싸우다
"우리가 부모님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게 죄도 아니구요. 그런데도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라 문제'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살아왔어요. 우리가 작은 실수나 잘못을 해도 어른들은 항상 그런 말을 덧붙였어요. 그런 순간이 가장 참기 어려웠어요. 부모와 함께 살아야 정상이라는 생각이 때로는 차별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자매는 차별과 선입견으로 가득 찬 세상의 눈빛이 싫어 "더 악착같이 살았다"고 한다.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라서 그렇다"는 세상의 선입견이 틀린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게 자매의 삶이다. 또한 이들은 학교 교육에서도 많은 소외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학교 교육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배려하면 좋겠어요. 학교에는 분명히 다양한 가정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지만 보살펴 주는 부모님이 있는 가정만 '정상'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그렇지 못한 가정 출신의 아이들을 차별하는 건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소외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거든요." 희연이는 학교에서 가끔씩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할 때와 '부모님에게 편지 쓰기' 행사를 할 때 많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이것이 정상이다"는 식의 사고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세상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그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청소년가장들이 살아가면서 슬프고 힘든 일은 당연히 많아요. 그렇지만 꼭 슬퍼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슬픈 게 아니라 세상의 눈이 슬픈 것일 수도 있어요" 자매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 곧 청소년가장도 '졸업'한다. 지금 언니는 간호대학에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동생은 돈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기 위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들은 '후배 청소년가장'들에겐 "자기 연민을 갖지 말고 언제나 당당하게 살라"는 말을, 세상에는 "편견을 버려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매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어느새 희연, 수현 자매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의 웃음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 ||||||||||||
2004/08/27 오후 6:04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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