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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할머니들에게는 넉넉한 형님으로 아이들에게는 푸근한 할머니로 동네에서 인기가 가장 많다. 활짝 웃는 모습이 새색시처럼 수줍기만 한데 신 할머니의 올해 나이는 여든이다. 하지만 하루 일과는 젊은이들 못지 않게 바쁘다. 신 할머니는 아침을 먹고 나면 곧장 산격 복지관으로 향해 지역의 어려운 노인과 아이들에게 나눠줄 무료급식을 준비한다. 쌀을 씻고, 밥을 짓고, 배식은 물론 설거지 같은 궂은일도 도맡아 한다.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분들의 식사를 돕는 것도 신 할머니의 몫이다. 저녁에 복지관으로 오는 아이들은 물론 점심 때 찾아오는 노인들까지 합하면 하루에 350명 가량의 밥을 준비해야 하지만 신 할머니는 조금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이렇게 들었는데도 아픈 데가 없는 걸 보면 여기서 꾸준히 활동한 덕분인 것 같다"면서 "처음에는 큰 밥솥이 너무 무거웠지만 이제는 번쩍 들어올릴 정도"라고 말한다. 신 할머니가 살고 있는 이곳 산격주공아파트 입주민은 생활보호대상자나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다.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편부모 가정이나 소년소녀가장도 많아 산격복지관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특히, 노인들 가운데는 아침을 거르고 오거나, 형편이 어려워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신 할머니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노인들을 따뜻하게 챙기는 것은 물론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남은 밥과 반찬을 잊지 않고 들려 보낸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이들 가정에 반찬도 배달한다. 지난 93년 신 할머니도 홀로 이곳 아파트로 들어왔다. 일찍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청소부를 하며 힘겹게 4남매를 길러냈다. 이제는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싶었지만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협심증 수술을 받아야 했고 4년 뒤 재수술까지 받았다. 어려운 심장 수술이라 모두 더 이상은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신 할머니는 기적적으로 다시 생명을 얻었다. 그때부터 복지관을 가끔 들르면서 또래 할머니들과 점심도 먹고 일손을 조금씩 돕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4년이나 됐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할머니들에게 사람들은 '노인봉사단'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 '노인봉사단'은 농촌 일손을 돕거나 여름철 수해 현장 복구 작업을 돕기도 했다. 신 할머니를 비롯한 이곳 복지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최근 기존의 '노인봉사단'을 새롭게 꾸렸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함께 모여서 일을 돕는 차원이었지만 이제는 정기적인 모임도 갖고 용돈도 아껴서 적게나마 좋은 일에 보태려고 한다. 신 할머니는 비록 심장약과 기침약을 계속 먹긴 하지만 몸도 마음도 아직은 젊다. "죽었다고 생각한 목숨이었는데 예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 같아. 이게 다 남들 도우며 살라는 뜻이겠지." 오늘도 새색시 같이 환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신복련 할머니. 그 웃음에 넉넉한 이웃 사랑이 묻어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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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4 오후 3:39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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