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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한아름 꺾어 오시던 아버지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0. 5.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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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한아름 꺾어 오시던 아버지
쑥부쟁이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습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기원(jgsu98) 기자   
아이와 함께 고향 개울을 찾았습니다. 예전에는 달맞이꽃, 패랭이꽃, 쑥부쟁이 어우러진 괜찮은 곳이었는데 이젠 그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인공으로 제방을 쌓아올린 이후 나타난 변화입니다. 여기저기 듬성듬성 갈대도 보이고 달맞이꽃이 있기도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삭막하기 그지없습니다.

개울을 건너기로 했습니다. 바짓가랑이를 걷고 건너기엔 물이 너무 차가울 것 같아 다리를 찾아보니 다행히 있었습니다. 긴 나무 등걸을 나란히 이어놓고 그 위에 널빤지를 쪼개 붙인 다리입니다. 사람이 지나가면 출렁대기 일쑤이고 그나마 기울기까지 해서 자칫 잘못하면 물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용케 빠지지 않고 건넌다고 해도 신발이며 양말을 적시기 쉬운 다리입니다.

ⓒ2004 이기원
예전에 이곳은 꽤 깊은 물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늘 섭다리가 있었습니다. 개울 건너 산기슭에 사는 집이 있었기 때문에 장마가 들어 다리가 떠내려가도 마을 어른들이 모여 다시 놓았습니다. 이제 개울 건너에 살던 이들도 다 도회지로 떠나버리고, 수량도 줄어들어, 건널 일도 흔치 않아 섭다리 대신 약식으로 다리를 놓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빠를 따라 슬리퍼 신고 따라온 아들 녀석은 다리를 건너다 양말을 모두 적셨습니다. 그래도 싫은 기색 안 보이고 좋아합니다. 상쾌한 가을 들녘의 정취에 흠뻑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2004 이기원
개울 건너에는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들국화려니 생각하며 무덤덤하게 보아 넘기던 꽃입니다. 요즘 가을 들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지요. 가을 들녘을 닮아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향내를 간직한 꽃입니다.

쑥부쟁이 한 묶음 꺾어다가 빈병에 꽂아 시골집 방에 놓아두면 아무리 어두운 방이라도 금세 환해집니다. 들일 끝내고 오실 때에 아버지께서는 들꽃 한아름을 꺾어 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빈병에 꽂아두셨습니다.

아버지가 꺾어오신 꽃은 제철보다 일찍 피기도 했습니다. 추위가 가시기 전 아버지는 나무하러 산에 가셨다가 집채 만한 나뭇짐 위에 진달래 가지 한 묶음을 얹어서 오셨지요.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진달래 가지를 빈병에 물을 채워 꽂아두면 봄이 되기도 전에 꽃이 피었습니다. 제철의 붉은 진달래와는 달리 하얀 꽃잎의 진달래였습니다.

버들강아지가 껍질을 벗고 하얗게 피어날 무렵이면 버들강아지가 방안을 밝혀 주었습니다. 봄이 와서 산에 들에 진달래가 피어날 무렵이면 아버지는 붉은 진달래를 한아름 안고 오셨습니다. 여름이면 개울 건너 산기슭에 피어난 산나리꽃을 꺾어오셨습니다. 가을이면 쑥부쟁이가 우리 방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침침한 방
들일 끝에 안아 오신 꽃을
빈 소주병에 병보다 길게
거울 앞에 거울보다 환하게
계절을 갈아 꽂아 주시던
이제는
먼 길 끝
번한 새벽으로 계시는
아버지

-김영화, 그리운 가을 중에서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려 있습니다.

2004/10/03 오후 9:41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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