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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을걷이는 풍성하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0. 8.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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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을걷이는 풍성하다
팔순 앞둔 노인이 홀로 벼 수확하던 날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마동욱(madw) 기자   
▲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에서 만난 나의 형님 마상옥옹.
ⓒ2004 마동욱
▲ 요즘 농촌의 농사는 대부분 노인들이 짓는다.
ⓒ2004 마동욱
가을이 깊어가면서 농촌 들판은 황금 빛깔로 빛나고 있다. 농촌이 아름다움 황금색에 휩싸일수록 농사꾼의 얼굴도 구리 빛깔로 단련된다.

팔십 노모는 며칠째 고향 작은 밭에 마늘을 심겠다며 성화셨다. 우리 부부가 바쁘다며 이 핑계 저 핑계 대자 노모는 결국 직접 사람을 구해 마늘을 심겠다고 나서셨다.

▲ 한 톨의 벼도 버릴 수 없기에 늙은 농부는 굽은 허리에도 불구하고 낫질을 정성스레 계속했다.
ⓒ2004 마동욱
▲ 농촌의 부모님은 자식을 생각하며 고된 농사일을 한다.
ⓒ2004 마동욱
마늘 종자와 점심 식사를 가져 오라는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결국 6일 고향 마을을 찾았다.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내년이면 팔순이 되는 집안 형님인 마상옥 형님을 만났다. 상옥 형님은 황금 들판에서 벼를 수확하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난 카메라를 꺼내 사진 촬영을 했다.

형님은 평소에도 나에게 먼 옛날 당신이 젊었던 시절에 6·25전쟁에 참전했던 이야기를 무척이나 자세하게 해 주셨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형님에게 6·25는 또 하나의 질곡이었다.

▲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을 늘 그리워한다.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생사를 넘나 드는 전쟁터였지만 그 때는 건강했기 때문이다.
ⓒ2004 마동욱
학교를 다니지 못해 한글도 모른 상태에서 훈련소에 입소했고 16주 동안 총 쓰는 법 등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강원도 금마지구 오동산 밑으로 배치 받아 대대 유선 통신병으로 6·25를 겪었다. 4~5년 동안 중부전선 최전방까지 훑으면서 전우들이 죽어가는 것을 수없이 보았고 휴전이 되자 육군 하사로 제대했다.

배운 것 없고 돈도 없었던 상옥 형님은 전쟁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힘든 농사일을 하며 고향을 지키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형님은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못 배운 자신을 많이 원망했다고 한다.

▲ 콤바인으로 할 수 없는 가장자리 벼는 손수 낫을 들고 베어내야 한다. 900평의 논 농사는 79세된 노인이 혼자 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다.
ⓒ2004 마동욱
그래도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6남매를 두었다. 형님은 고향에서 박홍심(74) 형수를 만나 결혼을 했고 지금은 단 둘이서 고향을 지키고 있다. 6남매는 모두 고향을 떠나 객지에 나가 살고 있다. 늙은 부모는 자나깨나 자식 걱정뿐이다. 딸 셋을 본 후에 늦게 얻은 큰 아들이 잘 살면 한이 없을 거라고 한다. 광주에서 사업하는 큰 아들은 불경기 탓인지 살기가 어렵다. 상옥 형님은 큰 아들 걱정에 전전긍긍이다.

▲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벼의 무게만은 아니다.
ⓒ2004 마동욱
내년이면 팔순이 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농사를 짓는 것도 큰 아들에게 쌀 등 곡물을 보내기 위해서다. 물론 노부부가 먹기 위한 것도 있다. 칠순을 넘긴 늙은 아내는 작년부터 갑자기 무릎이 아파 당최 바깥 출입을 할 수가 없다. “자네 형수가 작년에 갑자기 무릎이 아프다고 하던데 걸음을 당최 못 걷는당께. 그래서 한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갔고, 밭농사 쬐끔 짓는 것도 그마저 포기했당께. 시골에 살믄 안 아파야 하는디, 아프믄 꼼짝 못 한당께.” 형님은 집에서 꼼짝 못하는 형수 때문에 마음 놓고 외출도 못한다고 했다.

▲ 콤바인을 보며 할아버지는 뭘 생각할까?
ⓒ2004 마동욱
형님은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산다는 생각은 아예 말란다. 그만큼 농사 짓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농사 더 지으려고 생각 말어. 밭농사도 너무 미련 갖지 말랑께. 좌우지간 농사는 지어서는 안 된당께. 내가 이라고 힘들어 갔고 1년 농사 지었는디, 집안 논이라 세수 주고 농약 값 하고, 콤바인, 이양기 빌린 값하고, 건조장에 들어가믄 쌀 몇 가마니 안 나온당께. 포라시 큰 아들 식량하고 우리 부부 먹을 식량하믄 천만 다행이랑께.” 늙은 농부는 농사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휘어진 허리를 힘겹게 곧추세우면서도 형님은 객지에 나간 자식들을 걱정했다. 세상 부모 마음은 하나 같이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힘든 농사일로 얻은 흰 쌀 받아 밥 지어 먹는 자식은 무슨 생각을 할까?

▲ 오십대 중반의 마을 '청년'들과 어려운 농촌 현실을 주고 받다.
ⓒ2004 마동욱
정말 농사가 남는 게 없을까? 형님 논 아래에서 남의 땅을 빌려 벼 농사를 짓고 있는 김장식(53)씨의 경우를 살펴 보자. 남의 논에서 벼농사를 지으면 200평당 쌀 80kg 3가마니를 생산한다. 3가마니 중 1가마니는 논을 빌려 준 땅 주인에게 줘야 한다. 그 다음에는 기계 작업 계산을 해야 하는데 900평을 한 단지로 계산해, 콤바인 작업에 13만원, 이양기는 12만원, 트랙터 12만원, 건조기에 12~15만원이 든다. 여기에다 농약 값과 인건비를 계산하면 정말 남는 게 없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정부 수매마저도 없어지니 살 길이 막막할 뿐이다.

▲ 그래도 가을걷이는 풍성하다.
ⓒ2004 마동욱
나의 팔순 노모는 오늘도 시골 땅에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둘까 궁리한다. 그 고향 땅을 지키고 있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의 형님은 농사는 절대 짓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풍요의 계절 가을, 남도 황금 들판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탐진댐 건설로 수몰되는 유치마을 인터넷 사진 영상 박물관 (www.uchimaul.com)을 운영하면서 고향마을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4/10/06 오후 11:34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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