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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의 밭과는 견줄 수 없지만, 나의 작은 텃밭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떤 것은 더 실하게 자라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실패작인 것도 있지만 푸른빛을 간직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다섯 식구가 먹을 채소가 나오기에는 조금 큰 밭이지만 이것저것 이웃들에게 나눠 줄 욕심으로 심다보면 밭이 비좁다. 아내가 오일장에 가서 시금치와 상추씨를 사다 뿌리자고 한다. 그런데 이미 밭에는 감자, 마늘, 무, 쪽파, 부추, 가지, 오이, 호박, 작두콩, 머위, 메밀 등이 어우러져 있어서 더 이상의 빈 공간이 없으니 어디에 심을까 걱정이다. 정말 콩깍지가 작두 만한 작두콩을 거둬내고 상추를 뿌리고 나니 시금치를 뿌릴 곳이 마땅치 않다. 어제 김을 메면서 쪽파들을 옮겨 심었는데 우리 식구가 다 먹기에는 제법 많은 양이었다. 큰 맘 먹고 아직 거둘 때가 되진 않았지만 쪽파를 뽑아내고 그 곳에 시금치 씨앗을 뿌렸다. 그날 저녁 쪽파를 살짝 데쳐 고추장에 찍어 먹을 요량으로 쪽파 다듬기에 들어갔다. 아직 두어 달 뒤에나 거둬야 할 쪽파를 거두었더니 작아서 그런지 손이 가는 만큼 쌓여지지가 않는다.
메밀이 익어가기 시작한다. 올해는 씨를 받아두었다가 내년에 심을 생각으로 조금 심었다. 까맣게 익어 가는 메밀을 하나 둘 거두어 종자로 보관하는데 그 크기가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그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 메밀묵도 되고, 메밀국수도 된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허긴, 그보다 더 작은 조도 있고, 옛날에는 강아지풀의 씨앗 같은 것들도 구황작물이었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쪽파는 엄청나게 큰 것이다. 자연끼리 비교한다는 것이 별 의미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 스스로 크다 작다 비교하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 주눅드는 일도 없는데 궂이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 자연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의 본성대로 최선을 다해서 피어날 뿐이다. 어쩌면 남들을 배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식물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남들을 죽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자연은 더불어 살아가는 맛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 둘 다듬기 시작하니 제법 우리 다섯 식구의 식탁에 오를 만큼 되었다. "언제 다 다듬나 했더니 다 다듬었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끝이 있는 거 아니겠어?" 쪽파. 비록 작아도 파가 가지고 있는 맛과 향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최상품의 파가 아니라 할지라도, 쭉쭉 빠지지 않았어도 그 맛과 향이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보, 이게 말이야 당연한 것 같지만 작아도 맛이나 향이 똑같거든. 우리 사람들도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너무 차별이 심하거든." "자긴 복잡한 게 병이야. 쪽파 다듬으면서 별 생각을 다하네." "내 손 예쁘니?" "흙 뭍은 손이 뭐가 예뻐? 아니, 예쁘다. 지난번에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이 그런 손이라고 했지?" "이거 데쳐서 고추장에 찍어 먹자." 큰 것만 판을 치는 세상. 작은 것은 발을 붙일 곳이 없는 세상.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서도 돌아서면 큰 것만 탐하는 나 자신. 한 시간 여 쪼그리고 앉아 쪽파를 다듬으며 명상의 시간을 가지고 나니 삶의 여정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을 넉넉히 이겨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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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30 오후 5:52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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