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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서 찐하게(?) 일하고 왔습니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1. 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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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서 찐하게(?) 일하고 왔습니다"
부모님의 고된 삶, 자주 덜어드려야겠습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윤태(poem7600) 기자   
▲ 논에 늘어선 짚더미 묶음. 언제 다 거둬 들일수 있을는지?
ⓒ2004 김령희
서울의 단풍도 절정을 이룬 지난 토요일. 저녁 8시 저희 회사에서 주최한 행사(문학세계 시상식)를 끝내고 성남 집에 도착한 저는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밤 10시쯤 녹초가 된 몸으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당초 계획은 일요일에 아내와 함께 덕수궁 낙엽의 거리를 산책하는 것이었지만 시골에서 일 때문에 '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 일은 가을걷이를 끝낸 논에서 겨우내 소에게 먹일 짚을 실어 나르는 것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와 달라'라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은 '왔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바람이 있었습니다. 저마다 직장 생활로 피곤한데 농사일 있을 때마다 매번 휴일에 내려오라고 말씀하신다는 게 부모님 입장에서도 미안하셨던 것입니다.

▲ 힘을 모아 하나, 둘, 셋! 짚검불이 입과 코를 막아섭니다.
ⓒ2004 김령희
사실 농사를 짓는 부모님께서는 일 년에 몇 번 정도 큰 걱정을 하십니다. 그 걱정은 벼 파종, 모내기, 농약, 추수, 짚 실어 나르기 등 농사일에 관한 것입니다. 몸이 허약하셔서 아버지 식사나 챙겨주시는 어머니는 사실상 농사일에는 크게 도움을 못 주십니다.

마을에 젊은 사람이라곤 40대 후반, 50대 중반의 아저씨, 즉 '젊은이' 두 명이 전부인데 일손을 빌리고 말 것도 없는 그런 처지이기 때문에 농번기가 되면 도회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총 동원돼 농사일을 돕는 형편입니다.

물론 아들, 딸, 사위, 며느리 등 6남매가 모두 모여 일을 돕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회사 사정이나 개인적인 일로 부득이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10월 20일께 추수할 때 일요일 날 출장 때문에 저만 부득이 빠져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죄송한 마음에 이번에 자원해서 시골에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 공중을 나는 짚더미. 짚더미를 위에서 움켜질때마다 아버지는 손목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2004 김령희
시골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피곤한데 오느라고 고생했다. 그러나 어쩌냐? 네 아버지 힘 빠져서 이제는 전 같지 않고 농사일하기가 힘드니 너희들이 도와야지. 요즘에는 팔이 쑤시고 아파서 제대로 들지도 못 하신단다"며 일손부족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호소하셨습니다.

일요일 아침, '달달달달' 밖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에 눈을 뜨니 아침 6시였습니다. 아버지는 벌써 짚을 실으러 논에 나가시는 참이었습니다. 이 때 어머니께서 한 마디 하셨습니다.

"아이구, 영감은 참. 이슬이라도 마르면 실어오지."

▲ 어머니께서 짚더미를 한곳에 모아두고 있습니다.
ⓒ2004 김령희
그러나 아버지께서 이렇게 서두르시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내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로 꽁꽁 묶어놓은 짚더미가 비에 맞아버리면 운반하는 일이 곤혹스럽기는 물론 그대로 썩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가 오면 잘 말라 있는 논이 빠져서 경운기나 차가 못 들어가기 때문에 논이 마를 때까지 며칠을 더 기다려야 그나마 썩은 짚더미라도 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침을 급하게 먹은 저와 막내 동생은 1톤 트럭을 몰고 논으로 향했습니다. 저희 동네에는 두 대의 1톤 트럭이 있는데, 그 차로 생계를 유지하던 50대의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났기 때문에 동네사람 누구든지 기름만 채워 넣고는 거의 공용으로 사용하다시피합니다. 그러나 연세 많은 어른들은 모두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저희처럼 젊은 사람이 와야 그나마 사용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트럭에 실은 짚더미에 바를 메는 사이 경운기에 더미를 싣던 동생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2004 김령희
아버지는 혼자서 경운기에 짚더미를 싣고 계셨습니다. 단단하게 묶어놓은 짚더미는 20kg 넘는 것이 많은데 제 키의 두 배나 넘는 높이에 짚더미를 올려 실어야 했습니다. 논에 도착한 저와 동생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촘촘하게 깔려 있는 그 숱한 짚더미.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뒷골 일곱 배미, 가그말 다섯 배미, 성암리 다섯 배미. 대략 계산해 보니 800더미는 넘어 보였습니다.

이 많은 짚더미를 차 한 대, 경운기 한 대로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경운기 한 대를 더 빌려올까 생각을 하셨지만 경운기만 있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정작 짚더미를 올려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머니와 아내가 이 무거운 짚더미를 올려줄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 논에서 가져온 짚더미를 앞마당에 차곡차곡 쌓고 있습니다.
ⓒ2004 김령희
드디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힘을 모아 한 덩이씩 위로 던졌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짚 검불이 눈과 코를 막았습니다. 안경은 몇 번이나 땅에 떨어져 긁히고 안경다리가 휘어졌습니다. 한 번 힘을 쓰고 나면 한 숨 돌려야 다음에 힘을 모아 더 세계 던져 올릴 수 있는데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안에 모두 집에 거둬들이고 비에 맞지 않게 비닐로 덮어둬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처럼 일을 하는 동안 아버지의 모습은 예전 같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제가 짚더미를 올리면 그것을 잡아 끌어올리며 쟁이시는 아버지께서는 여러 번 왼쪽 손목을 꾹꾹 쥐며 주무르셨습니다. 시큰한 통증이 계속됐던 것입니다. 이럴수록 제 마음은 더 급해졌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습니다.

▲ 사진을 찍던 아내가 짚더미를 집어 올리고 있습니다.
ⓒ2004 윤태
오전의 작업 진행을 살펴보시던 아버지께서는 점심 식사 후 어머니와 아내에게 '총 동원령'을 내리셨습니다. 짚 더미를 들어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차나 경운기가 지나는 길목에 짚더미를 모아 두면 일이 한결 쉬워질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꽤 무거운 짚더미를 낑낑거리며 위로 올렸습니다. 물론 힘에 부쳐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의지만은 불타올랐습니다.

▲ 저 나무를 실은 트럭이 길을 비켜야 짐을 계속 나를 수 있습니다.
ⓒ2004 김령희
짚더미를 실어 나르는 중에 방해요소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소나무를 캐어 운반하는 커다란 트럭이 길 한가운데를 막아서 30분 이상이 지체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고 있었습니다. 마땅히 돌아갈 길도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저희 식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하튼 열심히 했던 탓일까요? 저녁 7시, 깜깜해진 후에야 높게 쌓인 마당 짚더미에 비닐 포장을 치고 모든 작업이 끝났습니다. 짚 더미 때문에 온 몸은 생채기 투성이었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웠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성남에 올라갈 일만 남았습니다.

교통방송을 들어보니, 서울로 올라가는 모든 고속도로와 국도가 많이 막혔습니다. 단풍구경하고 귀경하는 차량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고 우선 잠을 좀 자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온몸은 욱신욱신하고 특히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등허리 등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습니다. 너무 무리를 한 탓이었습니다.

뒤척이며 '아야'를 연발하다 날이 새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 천근만근한 몸을 일으킨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오른쪽 어깨와 팔이 꿈쩍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었습니다. 짚더미를 들어 올릴 때 밑에서 너무 무리하게 힘을 준 탓이었습니다. 세간 후면 출근을 해야 하는데 큰일 났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이것저것 가져갈 것을 챙겨주셨습니다. 더 주무시라고 말씀을 드려도 이젠 잠 다 깼다 하시며 피곤해서 어떻게 운전할 거냐며 걱정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쌀을 씻어 비닐봉투에 넣어주시며 "씻어놨으니까 성남 가서 밥 안쳐서 먹고 출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뭉클해지더군요.

▲ 그 많던 짚더미가 온데간데 없습니다. 열심히 실어나른 까닭에 가그말 논배미는 깨끗이 치워졌습니다.
ⓒ2004 김령희
이 글을 쓰고 있는 월요일 저녁, 전국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도회지에 있는 사람들은 구질구질하다며 불평하겠지만, 시골에 계신 아버지는 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즐거워하실 겁니다. 겨우내 소에게 먹일 짚더미가 튼튼한 비닐 속에 잘 보관돼 있으니까요.

이런 아버지를 생각하면 제 마음도 덩달아 기뻐집니다. 비록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기쁜 마음으로 그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쩌다가 한번 농사일을 돕는 제가 이정도인데 매일같이 힘겨운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몸은 어떨는지,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답니다.

▲ 오늘 성남에 비가 왔습니다. 짚더미를 거두고 난 시골 논에도 비가 오겠지요? 아버지의 마음을 뿌듯하게 만드는 가을비 입니다.
ⓒ2004 윤태
윤태 기자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http://cyworld.nate.com/poem7600)
에 그 이야기들을 싣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과 함께 일상에서 발견한 작지만 소중한 삶의 이야기들이 함께 있습니다.

2004/11/01 오후 11:05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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