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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 먹으며 행복을 나눕니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1. 1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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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 먹으며 행복을 나눕니다
세 잎 클로버 같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키고 싶습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미경(평등세상) 기자   
가을 햇살이 유난히 부드러운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마, 우리 심심한데 어디 놀러가요. 환타지아 갈래요?"

"지금 너무 늦지 않냐? 조금 있으면 차 많이 밀릴텐데…. 나는 별로 안 가고 싶다. 갈려면 아빠랑 가라."

아이는 제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이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런데 부엌에서 한참동안 아이와 남편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게에 있던 저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부엌으로 갔습니다. 아이가 밀가루를 반죽한 덩어리를 들어 그릇에 세게 던지고 있더군요. 표정을 보니 조금 심각해 보였습니다.

"은지야, 너 놀러 안 간다고 화났냐?"

"아니에요. 아빠가 세게 쳐야 쫄깃쫄깃 하다고 해서 지금 때리는 거예요."

"뭐 만들 건데?"

"내가 심심하다고 하니까 아빠가 밀가루 반죽하래요. 수제비 만든다고요."

▲ 우리밀이라서 밀가루 색깔이 약간 누리끼리합니다. 아이의 표정이 꼭 화난 사람 같습니다.
ⓒ2004 박미경
외동인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엔 무척 심심해하며 어디론가 가고 싶어합니다. 이런 아이에게 남편이 밀가루를 반죽하며 놀아라 했나봅니다.

주위에 또래 친구가 없어 혼자 노는 날이 많은 아이는 찰흙이나 골판지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밀가루를 갖고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처음엔 밀가루에 물을 붓지 않고 촉감을 느끼도록 하고 싫증이 날 때쯤 물을 부어 주물럭거리라고 하면 매우 재미있어 합니다. 아이의 도움으로 우리 가족은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지요.

남편은 아이가 반죽할 동안 미리 우려낸 멸치와 다시마를 건져 망에 거르더군요.

▲ 부녀지간의 다정한 모습입니다.
ⓒ2004 박미경
남편과 아이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며 반죽을 떼어 솥에 넣고 있습니다. 솥 안에서 동동 떠다니는 수제비를 본 아이가 웃으며 남편에게 말을 합니다.

"아빠, 끓는 물에 수제비가 떠있는 것 보니까 꼭 엄마가 온천물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의 농담에 남편은 웃음으로 답합니다.

▲ 뒷모습만 봐도 너무 행복합니다.
ⓒ2004 박미경
아이는 평소에도 툭하면 저를 놀립니다.

제가 웃으며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내며 "네 이놈! 너 자꾸 엄마 놀릴래?" 하며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대니 아이가 또 한 마디 합니다.

"엄마, 사진만 찍지 말고 엄마도 좀 일하세요."

"나는 평소에 밥 준비 많이 하니까 오늘은 아빠랑 둘이 준비해라. 비좁은 공간에 여러 명 있어봐야 좋을 것 없다."

▲ 가족의 사랑이 듬뿍 들어있는 수제비.
ⓒ2004 박미경
완성된 수제비입니다. 시골 어머님이 주신 감자와 호박, 그리고 옥상에 있는 화분에서 직접 키운 고추와 파를 넣어 만든 것입니다. 아이가 반죽할 때 많이 내려 친 탓인지 면발이 쫄깃쫄깃합니다.

▲ 이 일을 어쩌죠? 장난꾸러기인 아이가 웃으며 "엄마것 가져가야지~"
ⓒ2004 박미경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아이가 제 그릇에 있는 수제비를 얼른 퍼갑니다. 아이와 저는 평소에도 조금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서로 자기 밥그릇으로 퍼가면서 자주 장난을 하는 편입니다. 이런 우리를 보며 남편은 웃으며 한마디 하지요. "둘이 똑같다"라고….

결혼한 지 10년째.

남편은 부당함에 맞서다 직장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이후, 복직투쟁을 하다 삼성SDI의 고소로 두 번이나 명예훼손죄 등으로 구속되어 2년 가까운 세월을 철창 안에서 보냈습니다. 이런 우리 가족이 함께 생활한 시간보다는 아이랑 저랑 단 둘이 지낸 적이 많았지요. 그 동안 잃어버린 우리 가족의 행복한 시간들은 어쩌면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밀가루가 주재료인 값싼 음식일지 몰라도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 먹는 이 수제비는 가족과 행복이라는 이름이 함께 하기에 그 맛과 가치가 더욱 큽니다. 그 어느 누가 우리가족이 함께 먹는 이 수제비의 맛과 의미를 다른 음식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지난 날의 가슴아픈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우리 가족의 행복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 가족에게는 아직 고통의 세월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출소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목 디스크로 고통받던 남편은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지금도 7년째 삼성의 부당함에 맞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먹는 수제비와 우리 가족의 웃음은 더 큰 힘이 되어 정의가 존재함을, 그리고 양심이 살아있음을 밝혀내는 한 자루의 촛불과 힘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이 소중한 행복이 꼭 꿈만 같습니다. 어느 한 순간 날아갈까 두려워 남편과 아이 몰래 고개를 숙인 채 수제비와 울음을 함께 삼킵니다. 새삼 수제비 한 그릇으로 우리 가족의 행복을 느끼며.
대자보와 피플타임즈에 송고합니다.
박미경 기자는 삼성SDI 해고자 송수근 아내입니다.남편의 해고와 구속 후 살아가는 흔적들을 홈페이지(http://www.antisdi.com)에 남기고 있습니다.

2004/11/09 오전 2:38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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