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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나는 우리 집과 10여m 남짓 떨어진 곳에 있었던 그 가시나네 집 탱자나무 울타리를 가장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가시나네 집을 둘러싸고 있는 그 탱자나무 울타리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멋지고 길었다. 게다가 가을이 오면 그 가시나네 집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유독 노란 탱자가 많이 매달렸다. 그 당시 우리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추수가 끝나면 낡은 초가지붕과 허물어져가는 싸리담장을 걷어내고 새로운 옷을 입혔다. 하지만 그 가시나네 집은 담장 하나만큼은 새롭게 세울 필요가 없었다. 그 가시나네 집은 우리 마을 어르신들이 노란 새끼줄로 싸리나무 울타리를 열심히 엮고 있을 때 탱자나무 울타리에 삐쭉삐쭉 솟은 가지를 반듯하게 쳤다. 마치 이발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니는 이웃집 사람하고 가시담을 쌓아놓고 사는 기 그리 좋게 보이나. 그라고 집안에 훔쳐갈 끼 뭐가 있다꼬 가시가 삐쭉삐쭉한 탱자나무 울타리로 담까지 쌓을 끼고. 집이 머슨(무슨) 까막소도 아이고." "그라모 탱자나무 가지치기로 할 때 낮게 치모 될 꺼 아입니꺼?" 그 당시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가시가 촘촘히 박힌 탱자나무 울타리를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한 동네에 사는 마을사람들끼리 숨길 게 뭐가 있느냐는 투였다. 파전 한 장을 부치더라도 야트막한 싸리담장 너머로 건네주면 될 것을 굳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돌아나갈 까닭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씀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가시나네 집 탱자나무 울타리가 좋았다. 코흘리개 시절, 마을 공동우물가에서 소꿉놀이를 할 때마다 나랑 신랑 각시가 되어 놀았던 그 가시나가 그 탱자나무 울타리 집에 살아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그 가시나는 마루에 오도카니 쪼그리고 앉아 가시에 찔려가며 탱자를 따고 있는 나를 뻘쭘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루 아래 놓인 긴 장대라도 갖다 주었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하지만 그 가시나는 내가 잘 익은 탱자를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아무리 끙끙거려도 그림처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으~ 올개(올해) 탱자는 가시나 저거 맴(마음)처럼 와 이래 쓰노?" "와? 저 가시나가 탱자 딴다꼬 뭐라 카더나?" "그기 아이라 가시나 저기 시방 내로 딱 무시하고 있다 아이가." "니 혹시 가시나 저거 좋아하는 거 아이가?" "아… 아이다." "근데 와 니 목소리가 떨리노?" 그해 늦가을, 그 가시나네 집 탱자나무 울타리에 매달린 노란 탱자는 하얗고 굵은 씨가 유난히 많고 몹시 썼다. 노란 탱자 속을 쪼개 입에 넣으면 양 턱에 전기가 오는 것처럼 찌릿찌릿했다. 하지만 그 쓴 맛 뒤에 코끝으로 스며드는 향긋한 탱자 향기와 달콤하게 스며드는 탱자맛은 그만이었다.
"니 주디(입술)가 와 그렇노? 탱자 좀 따오라 캤더마는 고마 다 묵어뿟나?" "안주(아직) 쪼매 덜 익었어예. 근데 탱자는 와 예?" "요새 너거 아부지가 하도 속도 안 좋고 피곤하다캐싸서 약술로 쪼매 담을라꼬 그란다 아이가." "탱자 그기 몸에 그리 좋습니꺼?" "기침하고 가래 끓는 데도 좋고, 두드래기(두드러기)에도 그만 아이가." 해마다 늦가을이면 어머니께서는 빈 소주 대병에 잘 익은 탱자를 넣고 소주를 약간 부은 뒤 마개를 막아 촛농으로 붙였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아버지 밥그릇 옆에 마치 숭늉처럼 노란 탱자술을 한 대접씩 올렸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탱자술부터 한잔 쭉 드신 뒤 밥숟가락을 드셨다.
"아나!" "이기 뭐꼬? 탱자 아이가. 근데 탱자가 와 이리 크노?" "문디 머스마야! 니 눈에는 그기 탱자로 비나?(보이나) 개눈에는 똥빼이(똥밖에) 안 빈다(보인다)카더마는." "그라모 이기 뭐꼬?" "감귤이다. 울 옴마가 제주도에 해치(들놀이) 갔다가 사 온 기다." 해마다 가을이 깊어갈 때면 그 가시나네 집 탱자나무에 보석처럼 콕콕 박힌 노란 탱자가 못 견디게 그립다. 툭 하면 삐죽이 토라져 탱자나무 가시처럼 내 마음을 콕콕 찔러놓던 그 가시나, 툭 하면 볼우물 살포시 피우며 향긋한 탱자향으로 다가오던 그 가시나에게 노랗게 잘 익은 탱자 몇 알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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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4 오후 3:42 ⓒ 2004 Ohmynew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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