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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카리나 부는 산타 정인봉'의 밤은 거룩했다. 지하철역에서 열린 굶주린 어린이 돕기 공연 23일 저녁 7시30분 광주 지하철 금남로 4가역. 한 사내가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공연을 시작한다. 사내가 오른 무대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악보받침대는 시화걸개가 대신하고, 공연음향은 5만원을 주고 새로 구입한 앰프 겸 스피커가 맡고 있다. 그런데 사내는 몹시 들뜬 표정이다. '오카리나 부는 산타 정인봉의 굶주린 지구촌 어린이 돕기 공연'을 알리는 그럴싸한 플래카드 한 장 걸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고정관객이라곤 세 살배기 이가원양과 이양의 어머니, 외할머니, 이모 등 네 명이 전부인데도 말이다. 수강생이 사줬다는 3만원짜리 산타복을 무대의상으로 갖춘 정인봉(38)씨가 캐롤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의 오카리나는 봄날 기지개를 켜는 아지랑이처럼 따뜻한 음을 내며 서늘한 지하철 광장 안을 떠돈다. 열화와 같은 박수도 없다. 태풍 이는 여름날의 바다처럼 한데 어우러져 일어서는 관객과의 일체도 없다. 그저 아지랑이처럼 떠도는 오카리나 소리와 앙증맞은 손바닥을 짝짝거리는 세 살배기의 맑은 웅얼거림, 지하철 개찰구를 빠르게 스치며 눈길 한 번 던지고 가는 행인들의 무심함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아마 그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산타 정인봉'의 공연은 보통 빠르기 속도로 그저 그렇게 끝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사건은 정씨가 준비한 15곡 중 10곡을 마쳤을 무렵 터졌다. 아이들에게 점령당한 공연무대
이윽고 정씨가 캐롤을 연주하자 아이들은 한 입으로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몇몇은 아예 춤까지 춘다. 아이들의 소란에 무심히 스치던 어른들이 하나둘씩 발걸음을 멈춘다. 그동안 텅 비어있던 모금함에 약간의 성금도 모아진다. 아이들의 유쾌한 바람잡이는 정씨의 공연이 끝나고서야 멈췄다. 모금함에는 일만원권·오천원권 지폐 한 장씩과 천원짜리 지폐 넉 장 등 약 2만원이 들어있다. 정씨는 "원래 일만원을 모금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2만원이나 모았네"하며 싱글벙글 웃는다. 공연장소를 허락한 광주도시철도공사 서경환씨가 조심스레 정씨에게 새로운 제안을 한다. "이곳은 약간 외져서 유동인구도 적기도 하니 도청역 쪽으로 옮겨서 공연을 더 해볼까요?" 정인봉씨는 고민도 하지 않고 즉답을 한다. "좋죠. 굶주린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공연인데 한 명이라도 더 보고 지나면서 이 공연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얼마나 좋아요." 예정에도 없던 2회차 공연은 그렇게 결정됐다. 정씨의 부인 김미정씨가 "사람들 많은데서 하면 좋을텐데… 추운데서 혼자서 저렇게 연주를 하니… 저 혼자라도 후원해야죠"하며 씁쓸하게 돌아간 후의 일이다. 예정에도 없던 2회 공연을 하다
평소 아프리카 등 굶주린 지구촌 어린이 돕기에 관심이 많았던 정씨는 매월 오카리나 수강료로 번 돈 중 일부를 월드비전을 통해 기부해왔다. 그러다가 정씨는 생각했다. '이렇게 하지 말고 좀더 많은 사람들 앞으로 나가보자. 녹색연합 강의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택한 곳이 지하철역이었다. 저녁 8시40분경 서경환씨와 공연장비를 주섬주섬 챙겨 도청역으로 향하는 정인봉씨에게 물었다. "이제 2부 공연인가요? 피곤하실텐데 요기는 든든히 하셨나요?" "새로 연주할 곡이 없으니 2회차 공연이죠. 원래 채식을 해서 저녁 한 끼로 사는데 오늘은 두유 두 잔밖에 못 먹었어요. 그래도 해야죠." 기자가 이번엔 서경환씨에게 묻는다. "퇴근안하세요? 왜 장소까지 옮기며 공연을 권유하세요?" "미안해서 그렇죠. 좋은 취지의 행사고 기금이 많이 모이면 좋을 텐데…. 도청역 쪽이 유동인구도 많아서 아마 금남로4가역보단 나을 거예요." 밤 9시 산타 정인봉의 2회차 공연이 시작된다. 서씨의 말처럼 도청역이 금남로4가역보단 유동수가 많다. 정씨의 얼굴이 더 환해진다. 까닭을 물으니 "오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괜히 오지네요(기분이 좋네요)" 한다. 너무 '오진' 탓일까. 정씨가 산타복 위에 양복을 그대로 걸친 채 연주를 한다. 더러 흥에 겨워 연단도 없는 바닥무대 여기저기를 가볍게 몸을 흔들며 돌아다니기도 한다. 고요하게 들떠가는 정씨 곁으로 일상에 바쁜 도시인들이 무수히 스쳐간다. 9시15분 무렵 갑자기 정씨가 지갑을 찾는다. 앰프 겸 스피커에 사용하는 9볼트짜리 건전지가 떨어진 것이다. 공연을 하다 말고 산타복을 입은 채 건전지를 사러 황급히 달려가는 오카리나 연주자. 그가 돌아온 23분까지 십여분 동안 기자는 꼼짝없이 무대를 지켜야했다. 2회 공연동안 고정관객 모두 8명, 공연 총수입 약 3만원이어도
2회 공연은 밤 10시가 갓 넘어서야 끝났다. 정씨와 기자 단 둘이 오늘의 공연을 정리한다. 2회 공연에 동원된 것부터 추린다. 오카리나 7대, 9볼트 건전지 3개, 5만원짜리 앰프 겸 스피커, 3만원짜리 산타복…. 그렇다면 실적은? 총 관객은 추산 못하고 고정관객 모두 8명, 공연수익 약 3만원…. 공연자에게 자평을 듣는다. "아주 만족스러워요. 아주 성공적이에요. 계획에 없이 2회에 걸쳐 공연을 했는데 이제 감을 잡았어요. 앞으로도 시간 구애받지 않고 할게요. 연주생활 20년 만에 처음해보는 경험이에요. 무대에 서있을 때보다 이렇게 편한 자리에서 관객과 음악을 만나니 아까 보신 것처럼 자연스럽게 걸음도 걸어지고(기자가 보기엔 춤이었다) 음악에 날 완전히 실을 수 있어서 좋아요. 참, 그리고 선물받은 산타복값은 했네요. 3만원 넘게 기금을 모았으니. 그동안 월드비전 통해서 기금을 전달해왔는데 이번엔 유니세프 같은 데로 따로 보낼까 해요. 2만원이면 4인 가족이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값이래요. 근데 오늘만 해서 3만원이라는 큰돈을 모았잖아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성탄전야를 눈앞에 두고 '오카리나 부는 산타 정인봉'이 첫날 공연을 갈무리 짓는다. 두 시간이 넘는 공연 탓에 어깨가 결린 모양인지 정씨가 어깨를 주무른다. 그런데 정씨가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자에겐 "공연 끝났으니 얼른 가라"고 하면서 말이다.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정씨가 말한다. "내일(24일) 저녁 7시에도 도청역에서 또 공연해요. 그래서 오늘 연주한 곡 중에서 내가 미진했다고 생각하는 곡 그거 한번만 더 연습하고 갈게요. 날 추운데 얼른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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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4 오전 2:21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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