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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오마이뉴스]헌책방 하나둘 사라져야 하나?

요리조리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3. 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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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헌책방은 하나둘 사라져야 하나?
[헌책방 나들이 98] 충주 성내동 '수강서점'
  최종규(함께살기) 기자
<1> 충주시 한켠에

충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 성내동 파출소 바로 건너편에 헌책방이 하나 있습니다. 충주에도 헌책방이 퍽 여러 곳 있었지만 하나둘 문을 닫고 '수강서점' 한 군데만 남았습니다.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 헌책방은 하루하루 사라집니다. 헌책방만 그런 게 아니라 지역 새책방도 하루가 다르게 문을 닫습니다. 출판사 영업자들은 지난날 같으면 한 달 가운데 절반은 수금하러 출장을 다녔는데 요새는 일주일도 안 걸려서 지역 책방을 다 돌 수 있답니다.

▲ <수강서점> 앞 모습입니다. 조그맣긴 하지만, 충주에 하나 있는 소중한 헌책방입니다.
ⓒ2005 최종규
그동안 전국 헌책방 목록을 모으면서 숫자를 어림해 보니, 새책방이 10군데 있으면 헌책방이 1군데 있는 꼴이었어요. 이제는 지역 새책방도 학교 앞 문방구 아니면 장사가 안 되는 형편이니 하나둘 사라지고, 이렇게 새책방이 문을 닫으면 '책 읽는 사람'이 그만큼 줄어들고 말아, 지역 헌책방도 어쩌는 수 없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겠다 싶어요. 지역 헌책방에서 제 아무리 좋은 책을 튼튼히 갖추어도, 지역에서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 들면 살림을 꾸릴 수 없거든요. 또한, 처음 잘 갖추어 놓은 좋은 헌책도 한번 팔리면 다시 들어오지 못하니(새책을 사서 읽는 분들이 줄어드니, 그만큼 읽고 내놓는 헌책도 줄어들거든요) 헌책방 살림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저런 형편 때문에라도, 지금까지 헌책방 살림을 놓지 않고 꿋꿋하게 이어가는 분들을 뵐 때마다 참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우리 사회나 문화 모두 제대로 거들떠 보지 않고 대접도 해 주지 않지만, 조용하면서도 당차게 헌책 하나에 깃든 소중함을 나누고 있으니, 이 얼마나 반갑고 고맙지 않겠습니까.

지역 문화를 무슨 '엑스포'나 '돈 많이 쓰는 축제 행사'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은 좀 접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책방과 도서관 나들이를 하고, 영화나 연극도 볼 수 있고, 느긋하게 자연을 즐기면서 거닐 수 있는 자리만 깨끗하고 호젓하게 가꾸어 놓으면 됩니다. 제가 일하는 곳 둘레에는 태권도 박물관이니 제2선수촌 유치니 무엇무엇 행사를 끌어들이느니 하며 참 시끄러운데요, 이렇게 남 눈에 잘 띄어 보이는 일보다는 '눈에는 잘 안 띄어도 우리 삶을 가꾸고 북돋울 수 있는 작은 일', '작은 문화사업'에 소중한 손길과 눈길을 보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이곳에서 구경한 책

모처럼 충주 시내까지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신니면 무너미마을에서 차를 몰아 40분쯤 달려서 닿은 이곳입니다. 다른 시골도 마찬가지이지만, 시골에서 책 한권 구경하러 나오자면 적어도 30분은 차를 타고 나와야 합니다. 뭐, 이렇게 애써 나와도 시골 책방이야 참 조그맣고 갖춘 책도 적어서 구경은 금세 끝나지만 말입니다.

▲ 겨울에는 책방 한복판에 난로 하나 갖다 놓습니다. 뒤로 보이는 책꽂이에는 학습지 꽂힌 모습이 줄줄이 보이지만 왼편과 오른편 끝에는 일반 책도 알뜰히 갖추고 있습니다.
ⓒ2005 최종규
충주에 한 곳 남은 헌책방 '수강서점'으로 들어갑니다. 이곳도 다른 지역 헌책방과 마찬가지로 초중고등학교 학습책과 소설책, 어린이책을 중심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책 세 가지 아니면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참 좋다고 할 만한 인문사회과학책이든 자연과학책이든 요새는 찾는 사람도 적고, 읽는 사람도 드뭅니다.

'아, 참 아쉽구나'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책을 구경합니다. 한동안 눈에 띄는 책이 보이지 않다가 한 권 한 권 끄집어내 봅니다. 먼저 <송재찬-어른 나라 콩콩콩, 대교출판(1990)>이라는 동화책을 구경합니다. 옳거니! 동화책 한 권이라도 건졌으니 좋다! 이 책 한 권만 산 것으로도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할 무렵, <이주홍- 바다의 사자, 갑인출판사(1981)>란 책이 보입니다. 아, 이 책은 지난 1996년에 <바다의 사자 안용복>이란 이름으로 다시 나온 동화책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뜻깊게 기릴 만한 옛사람이 참 많은데, 이렇게 전기나 어린이책으로 나온 '사람 이야기(인물전)'가 참 드물어요. 어린이 동화책이긴 하지만 <바다의 사자 안용복>도 즐겁게 읽을 만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렇게 하여 어느덧 두 권이나 골랐군요. 조금 더 살피니 <방기환- 역사소설 신라검, 교학사(1985)>이 보이고 <아이자크 도이처/신지평 옮김-레닌의 어린 시절, 두레(1988)>이란 책도 보입니다. 다음으로 <사피오티/김정희 옮김- 산업사회의 여성, 일월서각(1986)>도 고르고, <김영욱- 형제복지원- 생지옥의 낮과 밤, 청사(1988)>이란 책도 보입니다. 책이 한번 눈에 띄게 되니, 다른 책도 줄줄줄 보이는가 봅니다.

▲ 판이 끊어진 <바다의 사자>. 하지만 1996년에 새롭게 빛을 보았습니다.
ⓒ2005 갑인출판사
<형제복지원>이란 책은 1982년 1월 어느 날, 저녁 늦게 술 한잔 걸치고 집으로 가던 회사원 하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한테 붙잡혀 '형제복지원'이란 곳에서 두 주 동안 끔찍한 일을 겪고 난 뒤 쓴 '폭로 수기'입니다. 글쓴이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그러나 한 가지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형제복지원에 얽힌 '죽음'의 문제이다. 얼마 전에 내가 읽은 몇 권의 '삼청교육대' 수기에서도 그랬었지만 복지원에서도 상당수가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우리들(수용인) 곁을 떠나갔고 강제노역 과정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같은 진상은 완전히 은폐되어 있을 뿐이다. '학살과 죽음의 시대' 제5공화국. 그 가운데서 광주학살과 삼청교육대학살은 그 윤곽이나마 드러났지만 형제복지원을 비롯 전국에 흩어져 있는 복지원들의 '학살'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복지원을 직접 체험한 나로서는 바로 이 복지원에 얽힌 '죽음'의 문제 역시 제5공화국 범죄의 중요한 대목 가운데 하나라고 단언한다 ..

맞습니다. 복지원은 부산 형제복지원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복지원 정체가 무엇인지, 말 그대로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곳인지 '평생 갇힌 채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하는 곳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음성 '꽃동네'와 얽힌 일을 취재하면서도 말하듯, 복지요양시설과 얽힌 감춰진 진실을 어느 때가 되더라도 낱낱이 밝혀서 그동안 끔찍하고 억울하게 겪은 숱한 사람들 아픔을 달래 주어야지 싶어요.

<3> 이런 책도 있었구나

지난 2003년에 <코끼리를 쏘다, 실천문학사>란 책 하나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조지 오웰이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겪은 일, 영국 뒷골목에서 겪은 일을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산문 모음입니다. 조지 오웰은 그 누구도 '돈을 준다 해도 마다하고 하지 않던' 일을 거리끼지 않고 했습니다. 스스로 거지가 되어 빈민굴에 들어가고,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고달프다고 하는 일을 몸소 겪어 보는 한편, 이런 일을 평생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동무로 사귀면서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몸으로 부대낍니다. 이런 조지 오웰이 맨 처음 '빈민 생활'을 겪으면서 써낸 작품이 <조지 오웰/권자인 옮김- 하얀구름 외길, 행림각(1990)>이란 책입니다.

▲ 조지 오웰이 처음으로 써서 이름을 날리게 된 산문모음입니다. 이 책이 제대로 된 번역판으로 새롭게 빛을 볼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2005 행림각
이런 책이 1990년에 한 번 나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하얀구름 외길>에는 오웰이 프랑스로 건너가서 프랑스에서 가장 밑바닥이라고 할 만한 온갖 체험을 다 한 뒤 영국으로 돌아와서 '프랑스 못지 않은 또 다른 밑바닥 삶'을 체험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 산문모음입니다.

.. 표면적으로 보면 이 어리석은 접시닦이 일 정도는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급하게 되면 놀랄 정도로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무수한 일의 틈을 없애고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 이것은 시계와 경쟁해서 테이프를 끊을 정도의 일이었다. 예를 들면 토스트를 만들면, 곧 홍차에 롤빵, 게다가 세 종류의 잼을 주문받은 서비스 리프트가 내려온다. 이쪽은 계란을 갖고 주방으로 과일을 가지고 식당으로 뛰어들어가고, 게다가 토스트가 타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그 위에 홍차와 커피도 잊어버리면 안 되고 또 아직 5개나 6개의 다른 주문이 기다린다. 그 동안에 어떤 웨이타가 쫓아와서 소다수 병이 없어졌다고 불평을 하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다. 이것은 상상 이상으로 머리를 요하는 작업이다. 마리오는 한 사람이 카페테리 요원으로 되기까지는 1년이 걸린다고 했는데 정말 그대로이다. 8시부터 10시 30분 동안에는 일종의 착란 상태에 빠져 있다. 앞으로 5분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번에는 주문이 그쳐, 일순간 정적에 휩싸여 돌연 잔잔해진다 .. <78쪽>

프랑스에서 영어교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 이 일마저 잘리고, 빈털털이가 되어 굶어 죽을 뻔하다가 겨우 얻은 접시닦이 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에 시달려 막차를 타고 겨우 여관방으로 돌아오면 드러누워 자기 바쁘고, 이른 아침에 출근 시간 늦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일어나서 뛰어오고... 일터 가까운 곳에 새로운 방을 잡고 싶지만, 방 찾으러 나갈 시간도, 짐을 옮겨올 시간도 없는 접시닦이 일.

오웰은 접시닦이를 '현대판 노예 제도'라고 하면서 "게으른 자는 접시닦이를 제대로 해낼 수 없다. 그들은 단순히 사고를 불가능하게 해버리는 단순한 반복의 생활에 잡혀 있을 뿐이다. 접시닦이에게 조금이라도 사고의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이미 옛날에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대우 개선을 요구하는 데모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겐 시간이 없기 때문에 생각할 수도 없다. 이 생활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 그런 것은 가난한 사람과 대등하게 사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곤란한 것은 교양 있는 저 지식계급, 자유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가난한 사람들과는 사귀지 않는다.. <148쪽>

접시닦이나 다른 밑바닥 노동자들 문제와 얽혀서 '진보와 자유와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은 말로만 외칠 뿐, 가난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거나 사귀면서 이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헤아리거나 느끼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잖아요. 1970년에 제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가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듯, 아직까지도 '배운 분들'은 '못 배우고 힘겹게 일하는 사람'과 벗삼지 않습니다. 나라 안 구석구석, 시골이나 도시 곳곳에는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가까스로 이어가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이들한테 따순 눈길 한 번 보내거나 이야기를 기꺼이 들으면서, 이들 삶을 이야기든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방송물이든 만들어서 사회 문제를 알리고 풀어가려고 애쓰는 사람이 참으로 드뭅니다.

▲ 한의사 김홍경 님이 쓴 책 가운데 하나.
ⓒ2005 삼진기획
<김홍경-좋다 싫다 생각해 보자, 삼진기획(1991)>라는 책도 만납니다. 한의사인 김홍경님은 퍽 많은 책을 써냈는데, 이 책도 참 볼 만합니다. '동물실험' 문제를 다룬 글에서 한 대목 옮겨 보겠습니다.

.. 정복자인 우수한 인종을 위해서 저질스러운 피지배 민족을 '마루타'의 경우처럼 인간실험의 도구로 짓밟았던 독일과 일본의 예가 있다. 싸늘한 폭력, 지적인 살생...... 목적을 위한 방법의 합리화는 지구촌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목적과 방법의 분리는 교묘한 형태로 사람의 본성을 갉아먹는다. "개같이 벌어서(목적) 정승같이 써라!(목적)" 즉 벌 때는 마음대로 사기치고, 매음하고 폭력을 써도 좋다! 그러나 자선이나 교육, 공익사업에 쓰면 될 거 아니냐? 논조가 이런 식이다. 게다가 우리의 목적은 평화다. 그러나 할 수 없이 폭력을 쓸 수밖에 없다! 이건 또 무슨 '속임수'? 목적은 미래이고 방법은 현재이다. 현재의 누적이 미래이고 곧 미래가 현재이다. 현재 쓰는 방법이 불행과 고통을 창조하는 것이라면 미래에는 결코 행복과 낙이 올 수 없다 .. <203~204쪽>

"세계는 전쟁으로 물들어도 혹시 나는 오직 채식주의만 지키면 되고, 신불의 명호만 외고 있으면 되는가? 몇 가지 의식과 계율과 윤리 신조 등을 신념화시켜 그보다 더 소중한 인간관계나 우정이나 사랑, 깨달음을 내팽개친 종교인들을 보라!(169쪽)" 같은 말도 가만히 곱씹어 봅니다. 정작 중요한 일과 삶을 놓친 채 껍데기만, 뜬구름만 좇는 우리들을 날카롭게 꼬집고 비판하는 이야기들입니다.

<4> 책 하나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을

시골이든 도시이든 우리들이 책을 멀리 한다면 책방은 문을 닫습니다.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어떤 가게도 문을 닫기 마련입니다. 나날이 책읽는 사람들이 줄어드니 책방이 문을 닫고 마는데, 이런 일을 '경제논리'와 '상업논리'로만 따진다면 무어라 탓하거나 슬퍼할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책마을 위기를 말하고, 책방이 줄어드는 일을 안타까이 여기고, 책읽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일을 슬프다고 말한다면, 이런 까닭을 차근차근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책이 무엇이기에, 책이 얼마나 소중하기에, 책 한 권 잘 살펴보고 찾아내어 읽는 일이 우리 자신한테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 헌책방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깊이 숙인 채 바닥에 쌓인 책도 살펴보면, 또는 사다리를 타고 높직한 곳도 찬찬히 살펴보면 보물 같은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05 최종규
인터넷 시대라 문자로 된 매체는 뒤로 처지고 책이나 잡지도 이제는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 매체에 담는 것과 종이 매체에 담는 것이 다를까요? 매체 방법만 다를 뿐, 우리가 인터넷을 두루 살피고 찾는 자료나 정보는 모두 종이 매체에 담겼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검색 빠르기와 부피에서 다릅니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 하더라도 인터넷 시대를 이끄는 자료와 정보에 담길 '속살-줄거리-알맹이'가 없으면 헛것, 허수아비일 뿐입니다. 인터넷 강국이 되자면, 전국 곳곳에 인터넷망이 퍼지는 것과 함께 '인터넷으로 들어와서 찾아보고 즐길 것'이 알뜰하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책이든 영화이든 다른 문화나 예술이든 상관없습니다. 어떤 것이 되든 속살을 제대로 갖추어야 합니다.

헌책방은 낡은 책을 사고파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낡은' 책이란 그저 껍데기만 낡았을 뿐,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한테 깊은 울림과 깨우침을 주는 속살을 지닌 알맹이입니다. 이 알맹이를 애틋하게 보고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 나오는 모든 책이 바로 이 '오래도록 이어가는 값어치를 지닌 책'을 자료로 삼아서 만들 듯, 옛것을 익히고 옛것을 미루어 새것을 이루어낸다(온고지신)는 옛말이 있듯, 헌책 한 권에 담긴 속살을 헤아릴 수 있어야, 우리 자신이 새롭게 살아가며 키울 새 지식과 새 학문을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헌책방이 있어야 새책방이 살고, 새책방이 있어야 헌책방이 삽니다. 새책을 읽어야 헌책도 제값을 찾지만, 헌책을 읽지 않고 새책만 읽는 사람은 속살, 알맹이, 줄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한 가지 더. 겉은 비록 낡고 후줄근하지만, 속에 담긴 소중하고 알뜰한 것을 꿰뚫어볼 줄 아는 마음, 헌 것이지만 거리낌없이 즐겨서 쓸 줄 아는 마음, 다시 쓰는(재활용) 마음으로 헌책 하나 소중히 여기면서 환경을 생각할 줄도 아는 마음이 바로 헌책방을 찾아가며 우리가 배우고 얻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기도 합니다. 이런 헌책방인 터라, 지역 문화를 가꿀 때 새책방-도서관-헌책방 이렇게 세 가지를 차분하게 잇는 고리를 가꾸고 북돋아야 좋다고 봅니다.

모든 새 것은 헌 것이요, 모든 헌 것은 다시 새 것이 되는 가장 쉽고 단출한 슬기를 느끼고 헤아릴 수 있는 헌책방입니다. 이런 헌책방이 전국 어디를 가도 튼튼하게 지역 문화로 자리를 잡고, 전국 어느 곳 사람들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푸념처럼 혼자 주절주절 떠들었습니다.

▲ 헌책방에 많이 있는 책은 '우리들이 즐겨 찾는 책'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서'를 좋아하고 즐겨 찾는다면, 그 어느 헌책방도 '수험서'보다는 그 '양서'를 중심으로 갖추기 마련입니다.
ⓒ2005 최종규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수강서점> : 043) 844-4179 . 010-3066-4179

- 이 글은 헌책방과 책과 우리 말을 사랑하는 모임인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 게시판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최종규 기자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우리 말-헌책방-책 문화운동을 합니다. 지금은 국어사전 엮는 일을 준비하며, 이오덕 선생님 원고를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 가장 어린 나이로 한글학회가 주는 한글공로상을 받았고 <모든 책은 헌책이다>란 책을 냈습니다. 개인 누리집 => http://hbooks.cyworld.com

2005/02/28 오후 1:36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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