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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찬양하는 친미언론의 잇속

요리조리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9. 2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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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찬양하는 친미언론의 잇속
[손석춘 칼럼] 수구언론 칼럼에 나타난 공통점
텍스트만보기   손석춘(ssch) 기자   
▲ 6ㆍ25전쟁 때 유엔군 총사령관으로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1957년 인천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인천 중구 자유공원에 세워졌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무슨 토론이 필요한가."

<중앙일보>가 사설로 내놓은 주장이다. 더글러스 맥아더에 대한 토론은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났기에 토론할 필요가 없다는 으름장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일방적 논평을 그치지 않는다. 감정적 선동으로 충분히 판세를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일까. 갈수록 거침없다. 차분히 학술적 평가를 해보자는 주장에도 "토론할 게 없다"고 일축한 그들이 내놓는 '논리'는 기막히다.

보라.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주간이 쓴 17일자 기명칼럼('한가윗날 평상 위의 역사가들')과 <동아일보> 홍찬식 논설위원이 쓴 16일자 칼럼('맥아더 공격과 역사청산은 닮았다')을. 두 칼럼은 먼저 맥아더 동상 철거론을 원색적이고 자극적으로 폄하한다. 가령 강 주간은 묻는다. "그럼 '6·25는 민족해방전쟁이었다', '미국만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은 한달 내에 끝났을 것이고 사상자는 남북 합쳐 1만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요즘의 관제(官製) 역사는 누가 바로잡아야 합니까."

홍 위원은 "맥아더 끌어내리기에 앞장서는 쪽의 전략은 역사를 바로잡자는 명분을 앞세우고 역사를 과장하거나 왜곡해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라며 "반미와 '자유민주주의 부정'이라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운동'이 그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과연 누가 본질을 왜곡해 감성에 호소하는 걸까.

맥아더 동상 철거론을 왜곡해 감성적으로 자극

더 황당한 사실은 두 논객의 '과녁'이다. 모두 '과거사 진상조사'를 겨눈다. 강 주간은 "정부가 만든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의 역사가―사실 그들은 운동가이지 역사가가 아닙니다―에게" 한국현대사를 바로 세워달라고 맡겼다며 '분노'한다.

홍 위원도 '맥아더 공격'이 역사청산과 닮았단다. "최근의 '역사 청산'에도 같은 함정이 있다. '바른 역사'를 강조하는 명분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다. 문제는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을 앞에 놓고 역사적 근거를 짜깁기하고 자료를 들이대면 역사는 얼마든지 재단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학술적 차원이 아닌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흡사하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두 칼럼은 결국 과거사 진상조사 작업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은 지금 정권이 하는 게 아니다. 국회에서 제정된 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처럼 친일의 과거를 가진 언론사가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한 진상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두 신문과 달리 창간이 늦었기에 친일의 과거가 없는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은 맥아더를 엉뚱하게 삼성과 연결 짓는다. 정진홍 위원은 13일자 칼럼 '맥아더와 삼성'에서 "이 나라를 송두리째 끝장내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엄존하고 있음을 실증하는 두가지 사례가 맥아더 동상 철거와 삼성 때리기"라고 주장한 뒤 쓴다. "삼성을 때리는 이유 역시 간단하다. 평균주의와 획일화에 맞서 초일류를 지향하며 쭉쭉 잘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생존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맥아더 옹호'가 어느새 '삼성 옹호'로 둔갑

참으로 가관 아닌가. 이들은 맥아더 논쟁을 감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요약한 뒤 각각 자신이 쓴 신문사의 '사주'와 관련된 현안들을 섞는다.

맥아더 동상 사수나 옹호가 어느새 '과거청산'에 반대하고 삼성을 옹호하는 논리로 둔갑하고 있다. 그 칼럼을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사주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그들의 기름진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래서다. 새삼, 개탄스럽다. 어쩌다가 한국 저널리즘이 이 지경까지 타락했는가. 그렇다. "무슨 토론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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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칼럼] '맥아더 동상 철거론'이 미숙한 주장인가


2005-09-19 16:43
ⓒ 2005 OhmyNews
'맥아더 동상 철거론'이 미숙한 주장인가
[손석춘 칼럼] 악다구니가 토론을 누르는 사회
텍스트만보기   손석춘(ssch) 기자   
더글러스 맥아더. 그의 동상을 둘러싸고 빚어진 충돌은 쓸쓸한 풍경임에 틀림없다. 동상을 지키던 젊은 전경은 대나무에 찔려 실명위기에 몰렸다. 경찰 쪽에서 날아온 돌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된 사람을 비롯해 부상당한 시민도 20여명에 이른다.

병원구급차를 막아선 장면에선 하릴없이 서글픔이 밀려온다. "저 안에 빨갱이가 타고 있다" 소리치며 병원으로 가는 차를 막아선 사람들을 보라. 섬뜩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떤 살풍경도 '유혈충돌'이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않은 채 넘어가는 모습만큼 스산하진 않다. 침묵해도 무방했을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동상철거 시도는 "성숙하지 못한 역사의식"으로 매도했다.

미국을 의식해서일까. 미국에 간 노 대통령은 반대 의지를 거듭 밝혔다. 이 총리도 국무회의에서 '엄정대응'을 강조했다. "불법적인 동상철거 시도"는 한미간의 우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된 역사의식에도 반한단다.

동상 철거시도는 성숙된 역사의식에 반한다?

참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무엇이 '성숙'인가. 누가 누구에게 '성숙'의 잣대를 들이미는 행위만큼 오만한 일이 더 있을까. 역사의식의 성숙을 들먹이는 청와대의 이병완 비서실장이 전두환정권 시대에 어디에 있었는지 돌아보면 실소마저 나온다.

동상철거론은 맥아더를 마치 '구국의 신'처럼 추앙하는 우리 사회의 일각에 경종을 울려주었다. 한국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가 <김정일 코드>에서 분석했듯이, 맥아더는 전쟁초기부터 원자폭탄 사용을 요구했다.

1950년 7월 9일. 전쟁이 벌어진지 겨우 보름 남짓 되던 날이다. 미국 합참은 다행히 맥아더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해 10월 중국군 참전을 명분으로 맥아더는 다시 원자폭탄 투하를 열망했다. 맥아더는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는 26개의 원자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맥아더를 보는 찬반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당시 그가 한 말을 차분히 톺아볼 때가 되었다.

"동해로부터 서해에 이르기까지 코발트 방사선으로 막을 형성할 것이다. 그 지역의 생명체는 60년, 혹은 120년 후에야 다시 소생할 것이다."

그랬다. 그게 더글러스 맥아더의 진실이다. 만일 그의 미친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진지하게 성찰해 볼 일이다.

브루스 커밍스만이 아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역사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역사학자 마이클 샬러는 <더글러스 맥아더>에서 맥아더가 더 큰 권력을 추구했다고 증언했다. 검은 색안경과 목도리, 파이프와 말채찍으로 자신을 상징화하거나 자신에 호의적 기사를 쓴 언론인들에게 '보답'을 아끼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부시정권의 핵공격 위협은 맥아더의 연장... 논쟁 활성화해야 한다

맥아더가 만일 해임되지 않았다면, 그가 망발을 한 시점에서 "아직 60년 혹은 120년이 지나지 않은" 이 땅에는 "동해로부터 서해에 이르기까지" 생명체가 없는 회색지대가 거의 전역을 형성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맥아더를 떠받드는 수구언론에 분명하게 묻고 싶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더 심각한 문제는 맥아더의 광기가 비단 과거에 머물지 않는 데 있다. 무엇보다 오늘 이 순간도 미국 조지 부시정권은 평양에 선제 핵공격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다. 맥아더 동상을 둘러싼 논란을 지금 어정쩡하게 마쳐서는 안 된다. 언론도 토론과 논쟁을 활성화하는 데 나서지는 못할망정 악다구니로 방해는 말아야 한다.

대체 누가 감정적 대응을 하고, 누가 성숙하지 못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는가. 한가위 둥근달 아래서 냉철하게 짚어볼 때다.
2005-09-15 14:23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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