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까
행복은 원래 몸이 약해 힘이 없었고 불행은 몸이 튼튼해서 힘이 세었습니다. 불행은 자기 힘만 믿고 행복을 만나기만 하면 못살게 구박했습니다. 행복은 불행의 등쌀에 못 이겨 피해 다니다가 마침내 하늘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주신 제우스와 상의를 했습니다.
제우스는 행복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네가 여기에만 있겠다면 당장은 불행을 피할 수 있어 좋겠지만 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인간들도 생각해야 될 게 아니냐. 그러니까 이렇게 하려무나. 여기서 있다가 꼭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비로 직행하도록 해라. 그러면 불행한테 붙들릴 염려도 없고 꼭 만나야 될 사람도 찾아갈 수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인간은 좀처럼 행복을 만나가가 힘들고 불행만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논자들은 이러쿵저러쿵 저마다 행복에 대해서 설파했지만, 아직 ‘이것이다’라고 딱 잘라서 매듭지어 놓은 것은 없습니다. 행복이란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그것은 인간의 내적욕망의 소산이기 때문에 행복지수라는 것을 제시하여 그 가치를 적당히 가시화시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다 골고루 주어진 것도 아니고 원한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다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우연히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 찾아오기도 하고, 반면에 붙들고 있던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어느 일간지가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까’라는 제목으로 현상모집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1위로 당선된 것이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였으며, 2위가 아기를 목욕시키는 엄마이고, 3위가 큰 수술을 가까스로 성공하고 막 수술실을 나서는 의사, 4위가 작품의 완성을 앞두고 콧노래를 흥얼대는 예술가였습니다. 이런 순위로 행복의 등위를 매겨놓은 것에 공감하실 테지요.
어린이가 모래성을 쌓는 것을 어른들의 시각에서 볼 때 그것은 하찮은 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과 한두 시간 지나면 파도가 씻어가 버립니다. 그러나 아이들한테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머니가 아기를 목욕시키는 것,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 예술가가 자기 정열을 쏟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는 일 자체가 그들의 마음을 담뿍 쏟을 수 있는 즐거움이기에 행복합니다.
사람 사는 일, 그다지 큰 의미부여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조그만 것 하나에도 크게 만족하며, 참 좋은 사랑을 우려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느낌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듯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 누구든 두루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만 보입니다. 해변에 사는 사람에겐 바다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녁, 문득 바라다본 수평선에 저녁달이 뜨는 순간, 아, 그때서야 그는 아름다운 바다의 신비에 취하게 됩니다. 세상은 내가 느끼는 것만이 보이고, 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습니다.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별이, 저녁놀이, 날이면 날마다 저렇게도 찬란하게 열려 있는데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우리는 너무 슬픈 것들만 보고, 너무 언짢은 것들만 보고 살고 있습니다. 속이 상하다 못해 좌절하고 자포자기까지 합니다. 희망도 없는 그저 캄캄한 날들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어렵게 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물론 쉬운 것도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가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반 컵의 물은 반이 빈 듯 보이기도 하고 반이 찬 듯 보입니다. 비었다고 불평하든지, 찼다고 만족하든지, 그건 자신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보는 것만이 존재하고 또 보는 대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존재하는 세상이 그래서 좋습니다. 비바람 치는 캄캄한 날에도 저 시커먼 먹장구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그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평화스런 나라가 보일 것입니다. 세상은 보는 대로 있습니다. 어떻게 보느냐, 그것은 자신의 책임입니다.
방학이라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만나지 못해 참 섭섭하네요. 근데,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까요?
<한빛소리> 제146호 2008년 8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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