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올림픽이 ‘그들만의 잔치’에 그쳤다는 아쉬움
이번 제13회 베이징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Paralympics)에서 한국은 금 10개, 은 8개, 동 13개로 종합 13위를 차지하였다. 당초 계획했던 금메달 13개에는 못 미쳤지만, 그만하면 우리 장애인들의 저력을 충분히 보여준 쾌거였다.
뭘 더 바라겠는가. 그러나 필자는 장애인올림픽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건 단지 메달사냥이 목표했던 것보다 적어서가 아니다. 베이징올림픽 성화가 켜지고, 날마다 금메달을 딴 선수들을 향해 보냈던 ‘국민적 환호’를 생각하면 장애인올림픽은 이만저만한 푸대접이 아니었다. 역도의 이배영 선수처럼 ‘아름다운 꼴찌’도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스포츠는 감동이다. 그런데도 장애인올림픽이 있을 때마다 필자가 아쉬워하는 것은 국민적 관심이다. 아니, 매스컴들의 방영 태도다. ‘혹시나’ 했지만 이번 패럴림픽에서도 ‘역시나’였다. 중계방송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오직 메달수만 반복하여 알려주는 게 대부분이었다. 감동적인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직접 볼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장애인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미 거대한 공룡이 되어 버린 올림픽은 더 이상 올림픽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림픽 개최국이 되기 위해서는 몇 십 조의 올림픽 비용을 감수해야하고, 올림픽방송 중계권을 따기 위해서는 수천억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번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행사에만 천억 원을 들이부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제 올림픽은 완전히 부자나라들의 '돈 잔치'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올림픽은 극단적인 상업주의에 물들어 있다. 그러나 장애인올림픽은 이와 다르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든 개최할 수 있는 규모다. 이는 초기 올림픽 때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처연해진다. 그래서 올림픽에 비해 관심을 덜 받는 것일까.
그뿐이랴. 우리나라에서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가히 비교를 불허할 지경이다. 메달 색깔이 돈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금메달을 딴 사람은 ‘국가적 영웅’으로 언론과 방송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연예인 스타다. 이어 엄청난 포상금과 스폰서, 광고료가 주어진다.
사실 어렵고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며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에게 금전적 보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십분 이해한다. 그렇지만 때론 주객이 전도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촌이 논을 사서 배가 아픈 것일까? 그런 점에서 장애인올림픽은 신선하다. 설령 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올림픽 선수들처럼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대가를 바래서 올림픽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좋아해서 운동을 하고 올림픽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이것이야말로 변함없는 올림픽 정신이 아닐까.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은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중화주의와 패권주의를 지구촌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준 행사였다. 한데 장애인올림픽에서는 그 어디에도 중국냄새가 나지 않았다. 올림픽에서와 달리 장애인올림픽에서는 그렇게 과욕을 부릴 필요가 없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개막식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선수단이 먼저 입장하고 개막식과 축하공연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무한한 배려다. 개막식 무대 배치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무대는 일반적인 정면일체형을 지양하고 선수들이 다 볼 수 있도록 가운데에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각국의 선수단들도 거의 대부분 개막식에 참가했다. 그리고 뒤이어진 축하공연을 함께 즐겼다.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이러한 풍경은 일부 선수들만 개막식에 참가하는 올림픽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제 ‘아름다운 투혼’의 잔치는 끝났다. 장애인올림픽은 감동과 눈물의 드라마였다. 선수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매 경기를 치루며 ‘장애는 단지 차이일 뿐’이란 것을 몸짓으로 외쳤다. 그러나 장애인올림픽이 여전히 ‘그들만의 잔치’에 그쳤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투혼을 발휘하는 선수단에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이 절실하다. 한데도 지금 일반 올림픽 선수들과 달리 장애인 선수들에 대한 지원은 너무나 인색하다. 일례로 한국 장애인올림픽 선수들의 유니폼에서는 대기업이나 대형 스포츠 메이커들의 후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올림픽은 중계방송을 해 주니 홍보가 된다고 기업들이 지원을 해 주지만, 우리는 가족들도 경기 장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테네대회 이후 정부의 지원은 늘었지만, 기업은 여전히 장애인 스포츠를 후원하지 않는 그대로다.”
“공기업과 사기업들이 장애인 선수들을 후원하는 것이 기업들의 이미지 개선과 사회적 공헌의 블루오션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괜히 목에 뭔가 켕기는 듯 씁쓸하다. 제14회 장애인올림픽은 2012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
<한빛소리>, 148호, 20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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