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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서로 좋은 향기를 나누어야 할 때

한국작가회의/한빛소리원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8. 12. 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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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서로 좋은 향기를 나누어야 할 때


교정에 해묵은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올 같은 가뭄에도 가지마다 큼지막한 모과가 촘촘히 열렸다. 헌데, 정작 결과를 하려고 보니 그 많던 모과들은 간데없고 듬성듬성 매달렸을 뿐이다. 게다가 애써 딴 모과도 군데군데 상처가 나 있었다. 운동장을 뛰놀던 꼬맹이들이 장남삼아 해코지를 한 것이다. 간혹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모과가 짓이겨져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랴. 날 잡아 교감 선생님과 하 주사님이 애써 따보니 꼭대기에 당그랗게 매달린 여남 개를 남겨놓고도 한 소쿠리 남짓 됐다. 난 손도 안 대고 그 중 가장 탄실한 놈으로 두 개나 얻었다. 그것도 가장 살이 영근 놈으로.


집으로 모셔와 아내에게 주었더니 좋아하며 반긴다. 흔히 못생긴 사람을 ‘모개(모과의 경상도 말) 같다’고 얘기하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한 모과는 미끈한 몸매에 향취도 그만이다. 하나는 아내의 차 안에, 다른 하나는 아내의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아내 차를 타면 은은한 모과향이 코끝을 후벼댄다. 여간 상그럽지 않다.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자 아내는 십이 년째 몰고 다니는 내 애마에 넣어두라고 한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다했다. 왜냐? 모과 향에 배인 아내의 향기가 너무 멋들어지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 사실을 알까?


모과 향에 배인 은은한 향기


뜬금없이 무슨 모과 향 얘기냐고 지청구를 하려들겠지만, 이즈음의 가을 향취는 단풍과 곁들여 뭇 과일들의 향내와 더불어 온다. 하지만 바깥출입이 여의치 못한 재가 장애인들은 감나무 가지에 발갛게 매달려 있는 농익은 감하나 만나는 일도 손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애틋해진다. 그렇기에 무심코 지나는 계절하나에도 그 감흥은 남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을은 아무리 감각이 무딘 사람에게도 왠지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허전해진다. 하물며 가을빛이 완연한 숲길을 거니는 연인들의 정겨운 모습은 재가 장애인들에게는 여간 부러운 풍경이 아니다. 엊그제 산에 올랐다. 단풍마중에 기대가 컸던 탓일까? 그러나 가을 산에는 예년에 비해 올해는 가뭄으로 단풍과 낙엽이 많이 메말랐다.


마음 같아서는 천안지역 ‘한빛회’ 회원 모두에게 한 아름 단풍을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영축산을 오르는 길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아름드리나무의 단풍과 낙엽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연이요, 단풍과 어우러진 영취산 계곡은 한 폭의 산수화였다. 그 풍광을 고스란히 전하자 하는 내 마음을 그이들은 알까?


이 가을 향취를 ‘한빛회’ 회원들께 보내고 싶어


낙엽 길을 한참 걷다보니 마침 겨울나기에 한창인 다람쥐 한 마리가 도토리를 줍다말고 도란도란 인기척에 놀라 앞다리를 곧추세우고 섰다. 앙증스러웠다. 걸을 때마다 ‘바스락 바스락’ 대는 소리에 아련한 유년의 추억을 되살려 봤다. 운무 속에 군데군데 만발한 낙엽들이 살랑대는 바람에도 우수수 낙엽비로 내린다. 이 또한 장애인 친구들에게 소박히 담아 보내고 싶었다.


한 굽이를 돌아 또다시 수북하게 쌓인 단풍 사이 오솔길을 걷는다. 단풍이 어우러진 산중은 가히 장관이다. 찾는 이가 별로 없는 한적한 산, 하지만 바닥에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바쁘게만 살아온 지난 한 해 동안의 일들을 곱씹어 본다. 열심히 산다고  발버둥쳐 보았지만, 나는 참 좋은 인연으로 여울지고 있는 ‘한빛회’에 어떤 믿음으로 다가서고 있는가. 매달 원고도 제때를 맞추지 못하고 최재석 교육팀장님께 전화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준비했을 정도다. 면피를 거두기 어렵다. 겨우살이를 하는 동안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한층 더 쟁여야겠다.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목표는 ‘시혜’가 아니라 ‘자립’


가을은 차 한 잔의 여유로움이 절실해지는 계절이다. 또한 가을은 아쉬움의 계절이고, 그리움의 계절이며, 지난한 힘겨움을 비우는 계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든 삶의 나락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회적인 약자인 재가 장애인의 따뜻한 부추김이 절실한 때이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챙기고 배려하는 애애한 마음 나눔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베풂이 아니라 조그만 것,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재가 장애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마음트기가 최고의 선물이다.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목표는 ‘시혜’가 아니라 ‘자립’이라는 것을 안다면 더욱.


이 가을 산자락 다람쥐도 겨울채비에 부산하다. 그렇기에 우리네 삶에서 재가 장애인들이 어떠한 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세심한 보살핌은 우선되어야한다. 재가 장애인들도 우리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이라는 동반자적 견지에서 서로 좋은 향기를 나누어야겠다. 오늘 저녁엔 아내와 모처럼 칼국수 한 그릇을 나눴다. 언제고 천안 ‘한빛회’ 회원들과도 오붓한 자리를 만들고 싶다.   

        

/천안 <한빛소리>11월호. 2008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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