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권자들은 나쁜 짓을 한 정치인보다 위선적인 정치인을 더 싫어한다. 얼마 전 마크 샌퍼드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지사가 주의회 회기 도중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여 정부와 밀회를 즐겼다는 게 들통 나자 부인과 네 아들은 물론 자신의 참모진과 주민들에게까지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척 했지만 끝내 ‘용서받지 못할 자’로 낙인 찍혀버린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재임 중 백악관에서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그 짓을 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용서해줄 망정 그 당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정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도덕적 정통성”이라고 침을 튀겨놓고도 정작 자신은 아르헨티나까지 달려가 유부녀와 밀통한 샌퍼드 주지사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 하루아침에 매장돼버린 것도 비밀리 혼외정사를 즐겼으면서도 유권자들 앞에서는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돌보기 위해 사퇴를 고려하기도 했다”고 생쇼를 벌였기 때문이었다. 정치 또한 일종의 쇼라고는 하지만 그 쇼가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어가려면 내용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정치 제대로 하려면 위(僞)자의 의미부터 제대로 깨우쳐야 한다. ‘僞’는 사람 인(人)과 할 위(爲)가 합쳐진 것이고, ‘爲’는 본디 손 우(又)와 코끼리 상(象)이 합쳐진 것으로서 손으로 코끼리를 부려 일하는 모습을 그린 것, 말 안 듣는 코끼리를 잡아끌어 힘들게 일을 하는 것이므로 ‘일을 하다’ ‘억지로 일을 시키다’ 등의 의미로 쓰였던 바, 억지로 강제한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위무위 즉무불치(爲無爲 則無不治), 일찍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를 주장했던 중국 춘추시대의 노자가 “억지로 꾸미지 않으면 다스리지 못할 게 없다”고 단언했던 것도 꾸밈이 없는 자연의 이치 즉 진실과 성실로 이끌어야할 백성들을 어설픈 꾸밈으로 속여먹지는 말라는 충고였었다. 돌이켜보건대 한국의 정치인들 중 ‘위무위’를 실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은 말로만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쳤을 뿐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채우기 위해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했었고, 기자들 앞에서는 농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셨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들이 안 볼 때는 시바스 리갈을 즐겨 마셨다는 것은 궁정동 술자리의 아가씨들이 더 잘 알거니와, 전두환 전 대통령은 2,200여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자 532억만 납부한 후 남은 재산이 28만원뿐이라고 오리발을 내밀었고 그의 친구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퇴임 후 공중 목욕탕에 가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목욕하는 보통사람이 되겠다”고 침 튀겼으나 숨겨 놓은 ‘검은 돈’을 놓고 동생과 지저분한 소송을 벌이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 되어 항간의 손가락질 받고 있음을 본다. 재임 중 정치자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었지만 ‘소통령’으로 불리던 아들 현철이 불법정치자금을 끌어 모은 게 까발려져 개망신을 당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민주화 운동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랫사람들이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오십보백보, 그간 정치 지도자들 대부분이 국민을 얼마나 잘 속여먹느냐는 경쟁을 벌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을 속이지 않는 척 속이려고 덤벼드는 이명박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는 위무위(爲無爲)가 아니라 위무위(僞無僞)? 이 대통령이 자녀교육과 세금포탈을 위해 위장전입과 위장취업을 일삼고도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인지 이 대통령이 불러다 쓰는 사람마다 위(僞)자 딱지가 안 붙은 사람이 없어 쓴웃음을 금할 수 없다. 새로 발탁한 국무총리, 법무장관, 검찰총장, 대법관 내정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위장전입 전과자들인 것도 한심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위장전입의 위자만 나와도 입에 거품을 물면서 “즉각 사퇴하라”고 고함을 지르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는 “자녀교육 때문에” “당시는 공공연한 관행” 등의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음에 너무 지저분해서 구역질이 다 나온다. 위장전입 그 자체보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이중인격이 더 혐오스럽다. 매우 지저분한 위무위(僞無僞)다.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