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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0. 2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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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함께 읽고 싶은 책] <뚱보 내 인생>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08.10.15 09:04 ㅣ최종 업데이트 08.10.15 09:04 박종국 (jongkuk600)

지금 우리 사회는 빼빼 마르고 잘 빠진 몸매를 선호하고 있다. S라인, 얼짱, 몸짱, 콜라병 몸매 등 굳이 주변을 챙겨보지 않아도 그런 예는 흔하디 흔하다. 수년 전 내 반 아이 중에 엄청 뚱뚱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 주위에는 친구가 없었다. 다들 살이 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아이를 싫어하는 티를 냈다.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로부터 외면 당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애가 살이 찐 이유를 들었을 때, 나 역시 그 아이에게 자잘하게 상처를 주었다는 게 미안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내가 담임으로서 그 아이를 따돌린 적은 없다. 하지만 반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에게는 두고두고 마음의 상처가 되었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아리다. 

 

<뚱보 내 인생>을 읽다보니 수년 전 그 일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이 책은 중학교 3학년 벵자멩의 이야기다. 그는 몸무게가 100㎏에 육박하는 체중을 가진 '뚱보'다. 그렇지만 '뚱보 벵자멩'은 같은 반 클레르라는 여자애를 무척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래서 클레르가 자신에게 잘 대해 주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오해를 하게 되고, 고백까지 하게 되지만 결국은 차이고 만다.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 『뚱보 내 인생』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뚱보 내 인생>은 청소년이 읽을만한 책이다. 과도한 다이어트와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뚱뚱한 몸을 비하하고,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이들이 오죽 많은가! 때문에 뚱보들에게 ‘자존의식’을 가지라고 권해주기 딱 좋은 소설이다.
ⓒ 바람의아들
뚱보

벵자멩은 클레르가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이유가 '자신이 뚱뚱하기 때문'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때문에 모든 의욕을 잃고, 그동안 공들였던 다이어트도 수포로 돌아간다.

 

물론 벵자멩은 다이어트보다는 요리하는 것 먹는 것 자체를 즐기는 아이였다. 하지만 사랑하는 클레르를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자신감을 가졌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고 보니 다이어트는 고사하고 모든 의욕을 상실하여 시간만 아깝게 흘렀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비록 몸은 뚱뚱해도 더 강점을 많이 가진 그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던 선생님마저 벵자멩에게 실망하게 된 것이다. 정말 '뚱보 벵자멩'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벵자멩의 꿈이 있다. 바로, 열 명 남짓 손님만 받아서 세 끼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멋진 식당 겸 호텔 주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나이에 비해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맛깔스럽게 해낼 수 있고, 그 기술을 살려 멋진 레스토랑을 갖고, 또 그다음에, 또 그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다. 벵자멩에게 맛있는 음식만큼 행복한 게 또 있을까? 그런데 같은 반 여학생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다이어트가 문제가 된 것이다. 여자애들은 대체로 뚱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에 뚱보로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산책을 할 때나 옷사러갈 때, 수영복을 입을 때나 반바지 체육복 입을 때, 그리고 좋아하는 이성친구가 생겼을 때 심리적 갈등 상태는 자못 심각하다. 그런데 이성친구 클레르를 좋아하게 되면서 감정적 갈등을 겪는 벵자멩은 다이어트와 폭식을 반복하게 되고, 점점 더 악순환에 빠지게 되어 마참내 학교생활마저 흔들리게 된다.  

 

세상에 뚱보로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결국 자신이 비만하다는 사실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느긋하게 여유 있는 마음으로 클레르와 '애인'이 아닌 '친구'로 관계를 개선하기로 결심하는 벵자맹, 그날 벵자멩은 태어나 처음으로 음식이 남은 접시를 밀어놓는다.

 

세상이 좋아지고 편해졌지만 비만 문제는 여전하다. 나 역시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마음먹으면 음식을 곧잘 만들어 내는 솜씨를 가졌지만, 결론은 뚱보다. <뚱보 내 인생>에 나오는 벵자멩이 뚱보로 살아가는 모습은 그래서 더 실감이 난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벵자멩 자신이 느끼는 뚱보의 삶을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경험상, 다이어트라는 것은 남이 시켜서 되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결심했다고 간단히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나름대로 긴 시간을 가지고 꾸준히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다. 하지만 '항상 적게 먹어야 돼!'라는 말이 내 머리 속을 짓누르고 있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뚱보라고 해서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몸이 날씬하다고 해서 행복할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불행하다면 그건 절반의 실패다. 그것은 부담 없이 먹어대는 것보다 못하다. 날씬하든 말랐든 뚱뚱하든 펑퍼짐하든 간에, 내가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내가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다면, 내 목표를 위해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 뚱보라는 질타로부터 한쪽 눈을 질끈 감아도 좋다.

 

<뚱보 내 인생>은 청소년이 읽을 만한 책이다. 과도한 다이어트와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뚱뚱한 몸을 비하하고,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이들이 오죽 많은가! 때문에 뚱보들에게 '자존의식'을 가지라고 권해주기 딱 좋은 소설이다. 절대 비아냥거림이 아니다. 지천명을 앞둔 나도 '몸이 뚱뚱하다'는 핀잔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한창 외모에 예민한 십대들이야 오죽할까.

 

<뚱보 내 인생>은 청소년이 읽을 만한 책

 

뿐만 아니라 뚱뚱한 아이들이 겪는 자잘한 일상을 벵자멩 자신의 입을 통해 자기인정에 이르는 벵자멩의 고민을 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이끌어낸 작가의 배려가 돋보인다. 이 책 속 이야기는 참 흥미진진하다. 10대들의 생활과 정서를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외모에 집착하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내 몸은 과연 나에게 무엇인가'를 차분히 생각해보게끔 하는 책이다. 이 책은 중학생 벵자멩이 뚱보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있다.

 

외모만 중시하는 요즘 세상에서 벵자멩의 이야기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신체적 특징으로 고민하는 사람들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할 것이 많을 것이다. 달짝지근한 ‘외모지향주의’에 빠져 있는 10대를 위한,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시대만큼 외모에 신경 쓰는 시대가 있을까? 뚱보나, 못생긴 사람은 TV의 드라마나 코미디, 쇼프로 등에서도 진실성과는 상관없이 늘 희화화된 인물로 나온다. 아주 못생긴 사람이나 아주 뚱뚱한 사람이 근사한 주인공역을 맡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든 것 같다. 그들은 대부분 늘 주인공의 주변인으로, 놀림감으로의 역할 밖에 맡을 수 없다.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늘씬하고 근사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 책은 뚱보가 주인공이다.

 

요즘 시대만큼 외모에 신경 쓰는 시대가 있을까

 

이런 현실에서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성찰해볼 수 있게 하는 책이 거의 없다는 것은 좀 유감스럽다. '몸'에 관련한 책들은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몸에 관련하여 진지한 사유를 이끌어 낼만한 책들이 드물다. <뚱보 내 인생>은 그런 점에서 반가운 책이다.

 

우울한 뚱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뚱보, 내 인생>의 주인공, 벵자멩에게 몸에 대한 마음의 우월성을 설파하는 일방적인 관념론은 설득력이 없다. 누가 뭐라 해도 벵자멩은 꾸역꾸역 먹는다. 잼 바른 식빵, 초콜릿, 버터, 치즈, 생크림 얹은 파이, 케첩을 듬뿍 뿌린 파스타,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튀김…. 이런 음식들이 벵자멩의 몸무게를 89㎏까지 늘려 놓는다. 자, 벵자멩을 누가 구해줄 수 있을까?

 

저자는 비만아의 현실을 유머나 위로로 얼버무리지 않고, 다이어트의 인간적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비만이 일으키는 건강과 사회적인 문제까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외모에 너무 집착하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내 몸은 과연 나에게 무엇인지를 차분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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