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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색되고 빛바래지는 요즘 민주당 사람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1. 25.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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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색되고 빛바래지는 요즘 민주당 사람들
[공희준의 일망타진] 김민석, 안희정, 정동영, 정세균이 함께 모인 풍경
 
공희준

월요일 오후, 노웅래 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다녀와야 했다. 노 전 의원이 야당의 거목으로 알려진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의 친아들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행사가 열린 곳이 여의도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마포여서였는지는 몰라도 전ㆍ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인들이 참석하였다. 이를 두고서 혹자는 전당대회 같다고, 또 다른 혹자는 대선출정식을 방불케 한다고 촌평하였다. 정치인에다가 지역구민들까지 합하면 천여 명이 들렀다는 주최 측 주장이 생판 과장은 아닌 듯 싶었다.
 
행사 덕분에 두 시간 가까이 지금의 민주당의 대략적인 당세와 수준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엿볼 수가 있었다. 연사로 등단한 유명 인사들은 여럿이었지만 문희상 국회부의장과 정대철 전 의원은 건너뛰겠다. 딱 다섯 명만 언급하련다. 최고위원인 김민석 전 의원과 안희정 씨. 민주당인 것도 아니고, 민주당이 아닌 것도 아닌 정동영 의원. 당대표 정세균 씨. 그리고 행사의 주인공인 노웅래 전 의원.
 
김민석 씨는 자신이 요즘 마음이 몹시 초조하고, 심리적으로 매우 쫓기는 상태에 있음을 굳이 내색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일이니까. 허나 단상에 올라간 그는 다짜고짜 마이크로 입부터 들이대는 것이었다. 사람이 몸 먼저 나간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그는 생생히 보여줬다. 보통은 마이크의 높이와 각도를 조절하고 나서 말을 시작하는데 김민석 씨는 그럴 틈도 없이 마이크를 향해 씹어 먹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욱 냉정하고 차분해져야 함을 그가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김민석 씨를 볼 때마다 무조건 일찍 출세한다고 좋은 건 아님을 곱씹게 된다.
 

▲ 노웅래 전 의원     © 노웅래 전 의원실 제공 (자료사진)


안희정 씨는 아무래도 정치인으로서 훈련이 영 덜 된 있는 인상이다. 나는 그가 연설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구경했다.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훈련이 덜 되었다고 지적하는 이유는 그가 현장 분위기나 청중의 온도를 유연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미리 준비한 거창한 화두를 우악스럽게 고집하는 기색이 역력한 탓이었다. 그는 참여정부의 실세라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지난 정권서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노무현이 마련해온 재료를 안희정이 열심히 요리하면 유시민 혼자서 배터지게 포식하는 형국이었기에.
 
정동영 의원은 매끄러운 연설솜씨를 여전히 과시했다. 노웅래 전 의원이 DY계로 분류된 터라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민주당이 관계된 행사에서 VIP 대접을 받았다. 자업자득이라고, 그가 현재처럼 민주당에서 찬밥신세가 된 데는 스스로의 잘못이 크다. 작년 7월에 치러진 민주당 전당대회서 추미애 대신 정세균을 밀어주는 치명적 오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정동영 씨는 친노, 반노, 비노 가릴 것 없이 대동단결해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자고 호소하였다.
 
한나라당이 정권 잡아도 나라 망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한 치들이 개혁세력의 주류와 진보진영의 대변자로 의연히 행세하는 풍토에서 그의 외침은 공허하게 들렸다. 민주당 안팎에는 한나라당과 손을 잡은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고 믿는 인물과 정파가 활개 치는 중이다. 정 의원은 축사 말미에 바로 옆 지역구의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청래 전 의원을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로부터도 끊임없이 십자포화를 맞으면서도 DY가 꿋꿋이 생존하고 있는 까닭을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대단히 진기한 경험이었다. 민주당에 기를 쓰고 들어가려는 정동영과 이판사판으로 DY의 복당을 저지하려고 애쓰는 정세균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굉장히 효과적으로 비교체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정동영 계보인 노웅래 씨의 출판기념회에 당대표로서 참석할 수밖에 없는 정세균 대표의 입장을 이해한다. 이른바 ‘출첵(출석체크)’이야말로 당대표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다.
 
솔직히 인정한다. 내가 정세균 씨를 무지무지하게 혐오하고 경멸함을.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감은 있었다. 그래도 당대표인데. 하지만 어제에 이르러서야 어째서 정세균 씨가 정동영 씨의 복당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방해하는지 인간적으로, 아니 ‘인간적으로만’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멕시코 사막으로 도피한 트로츠키의 머리를 자객을 시켜 도끼로 찍어버린 스탈린까지도 인간적으로 이해되었다. 왜냐? 누가 보더라도 잘난 쪽과 못난 쪽이 확연히 구별되었으므로.
 
축사를 하러 단상에 올라선 정세균 씨가 한 얘기 중에서 기억나는 메시지라곤 책값에 관한 내용뿐이다. 1만 8천 원쯤 받아야 하는 책을 1만 원에 파니까 많이들 사가시라는. 대표는 대표인데 민주당 대표가 아니라 노웅래 전 의원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대표가 왔다고 하면 딱 어울렸으리라. “저걸 당대표라고…” 하면서 속으로 혀를 끌끌 찼을 민주당의 당원들과 지지자들을 생각하니 나까지 덩달아서 속된 말로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주인공 자격으로 마지막으로 단상에 오른 노웅래 전 의원은 화려한 내ㆍ외빈의 면모와 성황을 이룬 행사에 무척 고무된 표정이었다. 그가 분비한 아드레날린으로 말미암아 행사장 전체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느낌마저 줄 정도로 노 전 의원은 흥분하고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런데 아드레날린도 적당히 흘려야 함을 우리는 이미 목도한 바 있다. 그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와의 경기서 선제골 넣고 퇴장당한 하석주 선수의 전철을 밟지 말기 바란다.

기사입력: 2009/11/25 [10:0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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