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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의 비애

박종국에세이/왼손잡이비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12. 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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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의 비애


박 종 국


지독하게 왼손잡이였던 나는, 왼손잡이였다는 것만으로 내가 하고픈 것에서 멀찍이 비켜나야만 했다. 왼손잡이라는 그것 하나만으로 서툴다고 낙인 찍혀버렸기 때문이다. 구박도 많이 받았다. 지금은 어느 손을 쓰든 제재하려들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또래들마저 `왼쪽 잽이`라고 별명까지 붙여가며 놀려 댔다.


팽이치기나 자치기, 칼과 가위를 잡을 때, 낫으로 풀을 벨 때도 항상 주눅 들어 먼발치에 물러나 있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농번기에 모를 심을 때는 왼손잡이의 비애를 톡톡히 맛보아야했다. 단지 일꾼이 아니라 새참을 나르는 잔심부름꾼으로 만족해야했다.


왼손잡이에 대한 고정관념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해 사촌 동생이 일 좀 거들어 달라고 연락이 왔다. 그는 고향에서 비닐하우스를 하고 있다. 내달아 갔다. 대뜸 한 고랑을 맡기더니 고추를 따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탔다. 채 한 소쿠리를 따지도 않았는데 뒷덜미에 와락 야단이 떨어졌다. 일하는 방향이 틀려 되레 일손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일하는 요량을 보니 그러했다.


머쓱해 있는데 이번에는 고추를 골라 담으라고 했다. 역시 일이 서툴렀다. 아줌마들이 선별해 놓은 고추 꼭지와 방향을 다르게 놓았다고 면박을 주었다. 이래저래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손 탈탈 털고 나앉아있으니 심부름을 시켰다. 가게에 가서 냉수를 사와라, 점심 가지고 와라, 수건 가져와라, 종이 박스 가져와라…. 지청구를 받아도 담담히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또 한번은 오이를 따는데 도와주라고 연락이 왔기에 설마 그것쯤은 못하랴 싶어서 달려갔다. 상품 가치가 있는 것을 가위로 따라고 일러주었다. 왼손으로 가위질하는 게 힘들었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손바닥 대보고 싹둑 잘라 제법 많이 땄다. 그런데  동생 내외가 혀를 끌끌 찼다. 무엇이 잘못되었지 몰라 머쓱해있는데 길이만 맞추면 무엇하나는 것이었다. 위아래 굵기가 비슷해야 한다나. 입 뒀다 뭐 하느냐고 들들 볶아댔다. 보기 좋게 밀려났다. 일꾼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대면 웃었다.


그래도 더 이상 내치지 않고 다른 일을 시켰다. 산처럼 쌓아 놓은 ‘오이를 깨끗이 다듬어라’는 것이었다. 그것만은 쉬워 보였다. 편안하게 퍼질고 앉아 면 장갑 낀 채 송송하게 돋은 여린 가시 싹싹 비벼내고 끝자락에 붙은 노란 꽃잎마저 죄다 훑어버렸죠. 재미있었다. 열 상자 정도 가지런하게 정리했기에 칭찬 받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또다시 불호령이 떨어졌다. 애써 따놓은 오이를 다 망쳤다는 것이었다. 꽃잎 따고 가시 발라버린 오이는 상품으로 내다 팔지 못한다고. 화가 난 동생 일 안 도와줘도 되니까 내가 손질한 오이 들고 가라고 어깨를 들이밀었다.


 아, 그 황당함 말하여 무엇 하랴. 삼 개월 동안 비싼 기름 때가며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결실이 물거품으로 날아가 버렸으니…. 그저 할 말이 없었다. 대체 아이들 가르치는 일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


그렇지만 곰이 재주넘듯 제각각 제 할 일은 있나 보다. 어렸을 때부터 왼손잡이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지만, 선생으로 아이를 가르치는 데는 왼손잡이가 그렇게 원활할 수가 없다. 우선 아이들을 마주보며 오른쪽을 가리킬 때 저는 그냥 왼손으로 지칭하면 된다. 오른손잡이 선생님들은 그게 쉽지 않다.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선생님이 오른손을 든 채 오른손 하면 아이들은 왼손을 들고 따라한다.


교사는 언제나 아이들 쪽을 생각해서 얘기해야 한다. 칠판에 글을 쓸 때도 왼손잡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쓴다. 아이들에게 선생의 뒷모습을 보이며 서지 않는다. 운동장 수업 때나 율동을 가르칠 때도 너무 자연스럽다. 그냥 왼발만 내딛으면 아이들은 오른발부터 따라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더 이상 왼손잡이로서 비애를 느끼지 않고 있다. 교사로 사는 것이 운명적인가 보다.


통계적으로 보아 전 인구의 십분의 일은 왼손잡이다. 저희 반에도 세 명의 아이가 왼손잡이다. 그들 모두 또래 아이들과 어느 것 하나 뒤지는 게 없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면박을 주거나 닦달하는 것은 타고난 아이의 재능을 짓뭉개는 가혹한 일이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아이에게 평생 동안 아픔이 되고 주눅 들게 한다. 당장에 부족하고 미적거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어주고 느긋하게 기다릴 알아야 한다.


아이가 하고 싶다고 매달리는 일을 북돋워주어야 한다. 하는 요량을 보아 쓸데없는 짓이더라도 멋진 칭찬으로 지지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 같지만 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이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아무리 지독한 왼손잡이라도 제 구실하며 산다. 살면서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꿈은 날마다 바뀐다.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근데 녀석들, 두 손 다 꼽아도 모자랄 만큼 많은 일들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은 판·검사나 변호사, 의사, 사장되겠다거나, 대통령이나 정치가, 장군처럼 허황된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것들에 관심 많다.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게 으뜸이다.


그밖에도 가수나, 탤런트, 영화배우, 모델이 되고 싶은 아이들도 많다. 아나운서, 교사, 컴퓨터게임마니아도 좋아한다. 정보통신 미디어의 근접성이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무튼 하고픈 일이 다 다르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찮은 것이더라도 아이들의 바람을 함부로 겪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잣대로 아이들을 다그치면 도리어 반발력만 커진다. 그것은 안 된다는 부정적인 낭패감보다 무엇이든 해 보라는 허용적인 배려야말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이 된다. 또한 칭찬과 격려는 아이들의 무한한 가소성을 부추기는 힘이다. 한때 왼손잡이라고 핍박을 받았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왼손잡이의 비애를 느끼지 않고 선생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2010.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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