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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돼지한테는 인간도리를 바라지 않는다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1. 1. 1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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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의 글밭 2011-28]


개돼지한테는 인간도리를 바라지 않는다


박 종 국


  세상이 온통 시끄럽습니다. 오직 강한 것만 좇아가다 결국엔 치유 불가능한 병마를 붙들고 애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로 흘겨 뜯어가며 더 나은 자리에 오르겠다고 아득바득대다 낭패를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사람 같잖은 사람이 없는 것인지 청와대 인선에 입맛이 싹 가십니다. 흙탕물에 빠져 사는 인간들은 자기 구린내를 잘 느끼지 못하나 봅니다. 입이 더렵혀질까 봐 더는 넌더리를 떨지 말아야겠습니다. 좋게 사는 데 남을 윽박지를 만큼의 강함을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손때 묻은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입니다. 각 꼭지마다 재미있게 사는 맛이 가득합니다.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는 스님의 변하지 않는 침묵과 무소유의 철저함이 존경스럽습니다. 순수한 정신으로 자연과 벗하면서 구도정진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선연합니다. 스님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지만 늘 한 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와 철학이 담겨있어 진정한 수도자로서의 스님을 마주 대하는 듯 합니다.


  읽다보니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네요. 옮겨봅니다.


  임종을 앞둔 늙은 스승이 마지막 가르침을 주기 위해 제자를 불렀습니다. 스승은 자기의 입을 벌려 제자에게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내 입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혀가 보입니다."

  "이는 보이지 않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다 빠지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다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아 있는 이유를 알겠느냐?"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렇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이것이 세상사는 지혜의 전부이니라. 이제 더 이상 너에게 가르쳐줄 것이 없구나. 명심하거라."


  살면서 숱하게 겪었던 일이건만 우리들은 다만 강한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단단하기로 따지자면 사람의 끝없는 욕망에 따를 재간이 없습니다. 집을 마련하거나 차를 살 때, 냉장고나 가전제품을 들여놓을 때, 먹을거리를 챙길 때도 작은 것, 부드러운 것보다 크고 때깔 좋은 것에 먼저 손이 갑니다. 크고 단단한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에 길들여진 까닭입니다. 정부 고위직에 임명된 사람들도 자의든 타의든 더 단단한 자리를 얻으려다 덜컥 덜미가 잡힌 겁니다. 제 자리에 만족했으면 그런 일이야 없었겠지요.   


일찍이 노자는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나앉아 있는 것이 물이고, 가장 착한 것 또한 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물은 일정불변의 고정된 모습이 없습니다.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습을 하고, 모난 그릇에 담기면 모난 모습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뜨거운 곳에서는 수증기가 되고, 차가운 곳에서는 얼음이 됩니다.


  이렇듯 물은 자기 고집이 없습니다. 강함을 앞세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그저 내면의 부드러움으로 남의 뜻을 따릅니다. 그러나 추녀 끝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바위를 뚫고, 평소에는 그토록 부드럽던 바람과 겸손하던 물도 어떤 힘을 받으면 그렇게 사납고 거셀 수가 없습니다. 물의 성정을 가진 이는 전체 국민입니다.


  결국 구린내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의를 표하는 그들의 작태에 저의기 불쾌해집니다. 그렇게 잡아떼듯 당당하다가 시답잖은 물증을 대자 그제야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 참 비굴합니다. 그만그만한 지위와 명예를 가졌는데 왜 당당하게 처신하지 못할까. 단지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이러도 되는 것인지요. 시정잡배들도 파렴치 협잡꾼도 마땅히 지켜야할 계율이 있습니다. 근데 그들은 언제나 ‘아니면 말고’라는 식입니다. 대체 국민을 어떻게 보고 하는 짓거리인지 화딱지가 납니다.


  아무리 개돼지에게 인간도리를 바라지 않는다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 보다 부드러워져야겠습니다. 사는 데 한결 너그러워지고, 온유함을 배워야겠습니다. 달콤한 맛에 길들여졌던 혀끝을 다독여야겠습니다. 맑은 물에 눈을 씻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귀를 후벼야겠습니다. 왜 자꾸만 그깟 일에 머리끝이 곤두서는지 모르겠습니다. 2011.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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