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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이 장난 아니다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1. 4. 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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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의 글밭 2011-158


기름값이 장난 아니다


박종국


나는 아직도 1996년 4월에 출고된 에스페로를 몰고 있다. 차령 15년이다. 이미 33만 킬로미터 남짓 달으니 사람 같으면 노익장이다. 게다가 주인을 잘못 만나 엄청나게 혹사를 당하고 있다. 신차처럼 물 찬 제비는 아니어도 전국을 누비고 다녔던 탓이다. 그러다 보니 긁히고 들이받혀서 몸체 곳곳에 상처도 생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퇴물이라고 신경을 덜 썼더니 검버섯 피듯 거뭇거뭇 녹이 쓸었다. 이런 나를 두고 아내는 차 바꾸라고 닦달한다. 멀쩡한 차를 두고 새 차를 바꾸라니…. 사실 난 자동차를 마련하는데 거금을 투자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저 굴러다니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지금도 자동차를 ‘폼생폼사’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싶다.


근데 며칠 전 도로에서 차가 그냥 멈춰 버렸다. 시동을 걸어 봐도 덜거덕거릴 뿐 종내 앞으로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애를 끓다가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서 도움을 청했다. 알고 보니 기름 다 다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연했다. 계기판 기름 게이지에 경고 등이 켜지지 않은 탓이었다. 기름통 게이지가 거의 제자리에 되돌아온 것을 알고도 며칠을 더 탔던 것이다. 워낙에 날개 돋친 기름값에 기겁하여 선뜻 기름을 보충하지 못했다. 임시변통으로 인근 주유소에서 오천어치 기름을 사다 넣었더니 이 놈의 차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잘 달렸다. 그런데 기름 오천어치가 페트 병 절반도 안 찼다!


기름값이 장난이 아니다. 연일 고공행진을 거듭하더니 급기야 1999원을 내건 주유소가 태반이다. 기름값이 무섭다. 그렇다고 걸어 다닐 수는 없는 형편이다 보니 때 맞춰 주유소에 들린다. 겨우 3만 어치를 주유하고 나면 게이지 눈금 하나 달랑 가리킨다. 그러면 출퇴근 거리를 따져 삼사일밖에 몰지 못한다. 하여 아내와 출근 갈림길까지 동행을 하고 다닌다. 덕분에 그동안 난삽했던 내 운전 버릇도 많이 바뀌었다. 쾌속 질주하던 예전과 달리 겨우 80킬로미터 남짓 속도로 주행한지 오래다. 그랬더니 운행거리가 늘어났다. 한데도 도로를 쌩쌩 내빼는 차량들을 보면 예지간한 강심장이 아닌 사람들이다. 아니면 기름값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부자들이리라,


이십년 동안 고향 남지에서 비닐하우스로 고추와 오이를 재배하고 있는 사촌 동생이 있다. 요즘 그도 기름값에서 자유롭지 못해 볼멘소리가 높다. 죽어라 기름때서 오이를 가꾸어봤자 기름값 제하고 나면 이문 남는 게 없다고 한다. 죽 쑤어 개 주는 꼬락서니다. 그나마 싸게 주어지던 면세유도 대폭 줄어 애면글면 손을 놓지 못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남지는 비닐하우스 시설재배로 유명한 곳이다. 전국의 음식점치고 남지생산품인 고추오이를 밑반찬하지 않는 곳이 있을까. 그러나 남지 명품 오이고추 농사를 접어야 할 때가 머잖다. 단지 이유는 뿔 달린 기름값 때문이다.


지난 7일 국내 메이저 정류사인 SK에너지가 기름값을 리터당 백 원 할인한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정작 할인가격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반 주유소는 아직도 외부 가격표시판의 가격은 그대로 둔 채 결제 후 차감 방식으로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가격표시판의 가격만 보고 주유소에 들리기 싶잖다. 그러나 SK에너지와 달리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는 판매가(소비자 단계)가 아닌 공급가(주유소 단계)를 할인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일선 주유소들은 할인분을 반영한 판매가를 가격표시판에 공개하고 있다. 반면 SK에너지는 주유소 단계(공급가)가 아닌 소비자 단계(판매가)에서 할인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가격표시판에는 할인 전 가격이 표시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가격표시판에 보통휘발유 가격이 리터(ℓ)당 1900원이라고 적혀 있다면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는 그 가격을 그대로 받지만, SK에너지는 가격표시판에 표시된 1900원에서 100원을 할인한 1800원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가격 할인이라는 생색을 내기에는 이도 저도 혼란스럽다. 


사뭇 반겼던 기름값이 들쭉날쭉하며 혼선을 빚고 있다. 왜 이러나? 최근 들어 4대 정유사가 휘발유와 경유가격을 ℓ당 100원 인하키로 하면서 주유소마다 북새통이었다. 그런데 정유사들이 휘발유 가격을 100원 내린다고 선언하였지만 정작 주유소들의 판매가격은 30원 정도 내리는데 그치는 정도다. 그나마 주유소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오히려 혼선만 빚었다. 괜한 소비자만 우롱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일률적으로 인하된 가격을 적용하지 못하는 것은 사전조치가 미흡했고, 정유사의 공급과 주유소 판매의 시점 차이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린 가격인 줄로 알고 있던 소비자들의 비난이 빗발칠 수밖에. 더군다나 주유소들은 자신들이 손해를 입게 되는 상황만 하소연하고 있다. 게다가 미리 기름을 확보해놓은 주유소들은 할인 판매하게 손해가 막심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렇듯 정유사와 주유소간 서로 책임전가에 급급하면서 소비자들은 기름값 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실망과 분노로 뒤바꿨다. 기름가격 인하 혼선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SK에너지가 기름가격 인하에 나서면서 다른 업체들은 구체적인 방안도 없이 졸속으로 동참한 탓이다. 더구나 이들 정유사들은 정부에 의해 마지못해 기름가격을 내린 모양새는 소비자들에게 그다지 반향이 좋지 않다. 더더구나 주유소들은 이미 구입한 재고량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제값을 받고 팔겠다고 배짱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니 인상할 때 이윤을 곧바로 챙겼던 것과는 정반대의 심보다. 결국 정유사 생색내기와 주유소 배짱 사이에서 기름값 인하는 먹통이고 소비자들만 분통을 터뜨리는 꼴이 됐다.


결국 이번 인하는 반짝 효과도 없고 시장왜곡 현상만 초래했다. 무엇보다도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인하는 늑장인 것은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국제유가에 따라 변동되는 기름값은 더더구나 그렇다. 그렇다고 기름값 인하 혼선을 정유사와 주유소 간 문제로 치부해서 정부가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강력한 행정지도를 통해 혼선을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의 강경한 의지에도 소비자가 가격 할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다. 더 이상 반짝 유가 인하로 혼란만 초래했다는 불신이 커지기 전에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정유사들이 독과점하고 있는 유통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정부도 유류세 인하에 특단의 조처를 강구해야한다.


오늘도 내 고물차는 주유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대부분 주유소는 1900원대 기름값을 판매가격으로 내걸고 있을 거다. 그렇지만 좀더 산 곳을 찾아 몇몇 주유소를 기웃거려 볼 참이다. 기름값에 덩달아 만물이 다 오름세를 향하고 있음에도 유독 기름값만 더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 돈 몇 천원 아끼려다 되레 된똥을 맞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2011.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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