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의 글밭 2011-151]
단지 개 소 새끼는 문제도 아니다
박 종 국
날마다 버스로 출퇴근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날 모임 자리가 길어진 날은 으레 버스를 탄다. 퇴근을 하면서 차를 두고 갔던 까닭이다. 그렇잖았으면 송진까지는 아내 차로 카풀 한다. 그러나 오늘은 학교에 차를 두고 왔기에 영산까지 가서 부곡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내가 사는 곳은 경남 함안군 칠원면이고, 학교까지는 남지와 송진을 거쳐 영산을 지나 부곡이다. 부곡은 우리나라 최고의 유황온천이 있는 곳이다). 요양병원에 공익근무 중인 아들도 함께였다. 아내가 바삐 운전해 주어 영산 버스정류소에 도착했다. 부곡 가는 버스는 8시 35분에 있다. 버스가 출발하려면 20분이나 남았다.
늦어도 8시 40분까지는 학교에 도착해야하는데 별도리가 없다. 영산서 학교까지는 아무리 재촉을 해도 10분 정도는 소요된다. 그즈음이면 아이들과 아침독서활동을 할 시간이다. 엳아홉 어린아이들이라 담임의 부재는 곧바로 난장판에 이른다. 더구나 옆 반이 1학년이라 어지간한 북새통이 아닐 것이다. 조바심이 났다. 종종 거려보지만 버스는 도착할 기미가 없다. 비좁은 정류소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기름값 땜에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하릴없이 여기저기를 서성대다가 속이 부대껴서 약국에 들러 여명 한 캔을 마셨다. 알싸한 맛이 식도를 타고 내렸다. 새로 부인하신 선생님들 신고식 자리가 너무 길었던 탓에 정도를 넘어서 버린 예후다.
버스는 정확하게 제 시간에 도착했다. 근데 차 안이 텅텅 비었다. 고작 세 명의 손님이 탔을 뿐이었다. 운전기사 분은 혼잣말로 투덜댄다. 이래가지고는 기름값도 안 된다는 푸념이다. 정말 그렇다. 아무리 경유를 때도 덩치 큰 대형버스를 움직이려면 기름이 많이 든다. 영산 부곡까지 차비는 고작 1200원이다. 이십 리(9㎞) 남짓 되는 거리니까 분명한 적자다. 어디 농어촌을 운행하고 있는 버스들이 적자내지 않고 달리는 차가 있을까? 요즈음 웬만해서 시골노인네들도 버스를 타지 않는다. 그만큼 자가 흔해졌다는 얘기다. 암튼 근무지까지 잘 데려다주는 고맙기 그지없는 버스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헐레벌떡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막 교실에 들어서는데 난장판이다. 다른 반 선생님들은 다 일찍 출근해서 아침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 반 교실을 제외하고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우선 아이들을 진정시켜야했다. 얼마나 들까불었는지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다. 날마다 아침시간에 붙잡혔던 녀석들에게 담임 부재는 신명나는 해방구였다. 담임이 교실에 들어섰는데도 자기네들 하던 일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 놀이는 징검다리다. 나 역시 굳이 뜯어 말리고 싶지 않았다. 하여 조용히 내 책상에 앉아 하루 일과를 챙겨보았다. 그랬는데, 갑자기 아이들 목소리가 높았다.
“조용히 해라 시발 놈아! 니가 뭐 안다고 그러나?”
“알것다! 개새끼야! 니는 뭐 다 아나?”
“좆같은 새끼 지랄하고 있네. 꺼지라 새끼야!”
“자꾸 새끼 새끼 하지마라. 듣는 새끼 기분 나뿌다."
아니, 이게 뭔 말이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잠시 숨을 고르려고 눈을 감았다. 다시 떠보니 얼굴이 발개진 두 녀석이 씩씩거리고 있다. 방금이라도 서로 치고받을 기세다. 아이들을 조용히 불렀다. 그렇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둘 다 따로 성아 나서 고집을 피운다. 이럴 때 나는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 애써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십중팔구 제 풀에 꺾인다. 아이들에 있어 무관심이 가장 무서운 처벌이다.
오늘 아침 다소 불충했던 탓에 하루 일과를 흩트려버렸다. 지난 29년 동안 아무리 힘겨운 일이 있어도 아이들 앞에 서면 절로 즐거웠다. 그만큼 내게 있어서 아이들은 참 좋은 청량제였다. 근데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언젠가부터j 아이다운 아이보다 애늙은이가 많은 세상이 됐다. 그들은 거름 장치도 없이 삿된 어른들이 쓰는 말을 그대로 내뱉는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했다. 어른들이 무시로 사용하는 언어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흡습되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내 아이가 생각 없이 함부로 내뱉는 속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라. 이 아이들을 어찌 다독여야 할까. 단지 개 소 새끼는 문제가 아니다. 2011.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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