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우리'가 판치는 이유는
2011.05.15 이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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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쓴다.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학교' 등등. 심지어 '우리 각시' '우리 남편'이라는 말을 써도 어색하거나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각시나 남편이 분명 공유의 대상이 아닐진대 아무 거리낌이나 주저함 없이 '우리'라는 말을 천연스레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시대의 특징인 오늘에 와서도 우리는 왜 '나'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앞세우며 즐겨 쓰는 것일까.
지연·학연 등으로 겹겹이 울을 치는 세상
'우리'라는 말은 어떤 영역의 경계인 '우'와 그 안의 영역, 즉 땅인 '리'의 합성어이다. '우리'의 뜻은 일반적으로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킨다. 여럿이 모여 울력을 보태는 두레로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우리'는 모둠살이를 지탱하는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왔다. 우리는 그야말로 안을 편안하고 넉넉하게 하는 울타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혈연이나 지연으로 울타리를 치고, 학교 출신으로 울타리를 치고, 각종 모임이나 계, 동호회로 울타리를 친다. 사회단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야말로 겹겹이 울을 치고 살고 있다. 울타리가 없으면 불안해서 못 살 지경이다.
이러다 보니 그 폐해 또한 적지 않다. 비용과 시간의 낭비는 물론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는 이익이 서로 상반되는 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 규칙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통해 '나'를 집단의 일원으로 돌리면서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의미를 두루뭉술하게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나'라는 주체를 세우지 못하고 '우리'라는 인연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선거판에서 '우리'의 위력은 대단하다. 자기 정치관과 다른 생면부지의 인물이 나와도 온갖 인연에 걸려 묻지 않고 표를 찍고 있다. '우리'에 얽매인 표심을 아는지라 정치인들은 정치인대로 국가 전체의 미래 이익보다는 출신 지역에만 유리한 정책을 남발한다.
지난날 하나회나 이 정부의 영포회, 대통령의 출신고교가 다 해먹은 4대강 사업, 형님예산 등은 그 폐해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신공항 사태나 혁신도시의 공기업 이전 문제도 심각한 지역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이 나라 정치는 없는 감정도 생기게 하여 국민을 갈가리 찢어 놓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서민도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연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농사를 지어도 회사를 다녀도 장사를 해도 줄이 있어야 한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줄이 있으면 좋고, 교통사고를 내도 경찰에 줄이 있으면 일이 수월해진다.
'나'를 바로세우는 진정한 큰 울타리 필요
우리가 '우리'라는 울타리에 연연해 하며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청탁을 잘 들어줄 만한 권력과 지위에 있는 줄을 잡으면 큰 행운인 줄 안다. 청탁을 할 만한 줄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잘난 사람으로 대접 받는다. 그로 말미암아 평등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상대는 안중에 없다.
더욱이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들이 만리장성보다 더 견고한 계급주의 아성을 쌓아 놓고 만년을 누리며 살겠다고 주먹질 발길질을 해대고 있음에랴. 부자들은 부자들대로 권력은 권력대로 저희끼리 다 해먹는다는 불만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 이 불만은 우리끼리 못해 먹어 억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 전체가 '우리'의 그물에 얽혀 '나'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나'를 올바로 세울 수 있는 진정한 '우리'의 큰 울타리가 필요하다. 삶의 희망이 넘치고 너와 내가 평등하고 노동자의 자살, 약자들의 한숨이 없고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그런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
/이순수 (논설위원)
[아침을 열며] 이 시대에 '우리'가 판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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