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다시 생각한다
2011년 05월 18일(수)
정의로운 국가가 요즘 시대의 화두로 등장했다.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저서가 인문학 책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판매부수를 기록하면서 정의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서로 다른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사회,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첫 번째’라고 말하고 있다.
곧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달리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그리고 진보주의자가 공존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나의 사상만이 존중받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사상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국가가 정의로운 국가일까? 부당한 특권과 권력의 남용을 용납하지 않는 나라, 선량한 시민의 억울함을 방관하거나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지 않는 나라, 개인의 자유가 샘물처럼 넘쳐흐르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나라가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 조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라를 지도자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지도자의 능력이 아니라 정의를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고 그 가치를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자각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지며,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타인과 공존하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국민만이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나 타인이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무엇보다 먼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독재정권 하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제약받았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억울함이 있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으며, 권력의 남용과 부당한 특권에도 눈 감아야 했다. 물론 표현과 집회, 결사의 자유는 박탈되었다.
1998년 2월, 우리는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해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되돌려받을 수 있었으나, 2008년 2월 그 권리의 일부를 상실하고 만다. 미네르바와 네티즌, 촛불집회에 참가자와 MBC PD, 용산 참사 등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물론 정의로운 국가라고 해서 국민이 모든 것을 똑같이 분배받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명시된 국민의 권력(국가의 정당한 강제력)은 경쟁의 원리에 의해서만 배분되며, 그 권력의 위임자를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로 선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곧 국민의 호감을 얻어야만 공권력을 배분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국민에게 주어진 권력을 위임받기 위한 경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하다. 엄청난 거짓말로 대중을 현혹할 수도 있고, 장밋빛 공약을 남발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을 과대포장하기도 한다. 마음은 잿밥에 있으면서 입으로는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사람도 많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많은 정치인이 국민의 권력을 배분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자신의 중요한 권리를 사탕발림이나 눈속임에 현혹되어 우리의 기본적 인권을 박탈당하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지역감정이나 국민의 분열을 획책하는 정치인에게 위임해서도 안 된다. 누가 진정으로 국민을 자유롭게 하고 국가를 정의롭게 할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최희동 전남대학교총동창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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